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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김창균 칼럼] 수명 다한 운동권 잔당의 ‘親日 타도’ 최후 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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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수탈한다던 매판자본론

‘한강 기적’ 성과 설명 못 해

文革 찬양한 ‘전환시대 논리’

2030 反中 정서와 동떨어져

‘80년대 反日’로 뭉친 野 1, 2당

출신 다른 광복회와 묘한 공조

조선일보

김창균 논설주간


조선일보

제79주년 광복절인 지난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광복회가 주최한 8.15 광복절 기념식에서 이종찬 광복회장(앞줄 왼쪽) 등 참석자들이 광복절 노래를 부르고 있다.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의 역사관을 둘러싼 갈등이 봉합되지 않으면서 광복회를 비롯한 독립운동단체연합은 이날 자체 광복절 기념식을 열었다. 광복회의 광복절 기념식 불참은 1965년 창립 이후 처음이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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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중학교 3학년 박현채는 빨치산에 투신했다가 2년 만에 하산했다. “민중을 위한 학문을 하라”는 부대장 당부에 따라 서울대에 진학해 경제학을 공부했다. 박씨의 빨치산 체험은 중학교 후배 소설가 조정래의 ‘태백산맥’에서 ‘소년 전사 조원제’ 활약상에 담겼다.

1980년 ‘서울의 봄’을 맞은 대학 캠퍼스에선 지하로 숨어들었던 이념 서클들이 일제히 양지로 나왔다. 이곳에서 신입생들은 의식화 세례를 받았다. 선배들이 준비한 주제별 커리큘럼에 따라 세미나가 열렸다. 경제 분야 교재는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이었다. 외국자본에 의존한 외연적 성장을 탈피해서 자기 완결적인 재생산 구조를 갖춰야 한다는 게 핵심 주제였다. 80학번인 필자도 선배들로부터 “박정희식 수출주도형 모델은 외국자본과 외국자본에 빌붙은 재벌 매판자본만 배 불리며 나라 경제를 수탈한다”면서 “민족의 이익을 대변하는 민족자본 중심의 경제구조로 바꿔야 한다”는 세뇌 교육을 주입받았다. 북한 김씨 왕조가 3대째 실험하며 선전해 온 ‘주체경제’와 맥락을 같이한다. 이 이론이 맞았다면 한국 경제는 지난 수십 년간 외자와 매판자본 좋은 일만 시키면서 거덜 났을 것이다.

한국 총생산은 1980년 이후 지난해까지 26배 불어나며 전 세계 10위권에 근접하고 있다. 같은 기간 1인당 소득도 64위에서 33위로 뛰어올랐다. 80년대 운동권들이 매판자본이라고 비난하고 혐오했던 재벌 기업들이 한국 경제를 견인한 결과다. 이병철·정주영·구인회·박태준 같은 산업계 거인들의 스토리가 유튜브에서 수십만, 수백만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20·30대들이 주로 본다고 한다. 서울대의 인기 강좌였던 ‘마르크스 경제학’은 20여 년 만에 폐강됐다. 수강생이 너무 적어서다. 80년대 운동권이 신봉했던 경제 이론은 대한민국이 이뤄 낸 기적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리영희저 ‘전환시대의 논리’는 80학번 새내기 대학생들이 세상을 보는 눈을 뒤집어 놓았다. 특히 중공(中共) 빨갱이라고 배워왔던 나라의 ‘진짜 모습’을 이 책을 통해 접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저자는 서문에서 “임금님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지 못했던 냉전시대의 낡은 시각을 타파하라”고 했고, 운동권들은 “현대사와 국제정치의 현실을 보는 시각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일으킨 역작”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리씨가 “인류 최초의 인간 의식 개조 혁명”이라고 추켜올렸던 문화혁명의 참혹한 진상이 뒤늦게 세상에 알려지면서 책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기 시작했다. 저자는 훗날 대담집을 통해 “열악했던 정보 접근 환경 때문에 전체 진실을 알지 못했다”는 자기 합리화를 내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리씨를 끝까지 “시대의 스승”이라고 떠받든 사람들도 있다. 대선에 출마하면서 젊은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으로 ‘전환시대의 논리’를 꼽았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문 전 대통령은 베이징대 연설에서 “중국은 높은 봉우리, 한국은 작은 나라”라고 부르면서 “중국몽이 인류 전체의 꿈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미국의 외교 전문 매체는 56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가장 높은 나라는 한국(81%)이라고 밝혔다. 한국 여론조사 기관 조사에서도 중국에 대한 호감도(23.9%)가 일본(29.0%)보다 낮았다. 우리 젊은 세대들은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으로부터 피해를 당했을 때 ‘중국당했다’는 표현을 쓴다고 한다. 이들이 문 전 대통령이 권하는 ‘전환시대의 논리’를 어떤 눈으로 읽을지 궁금하다.

시대착오적 의식화 논리가 수명을 다하면서 수세에 몰린 80년대 운동권 세력이 마지막으로 외치는 구호가 ‘친일(親日) 타도’다. “이승만이 친일 세력 청산을 못한 것이 대한민국 만악(萬惡)의 근원”이라는 ‘해방 전후사의 인식’의 관점을 국회 300석 중 190석을 점한 야권 1·2 정당이 공유하고 있다. “광복절을 친일 부활절로 만든 최악의 매국 정권”이라는 민주당 논평, “윤 대통령은 조선 총독부 10대 총독이자 왕초 밀정”이라는 조국혁신당 대표의 말은 40여 년 전 대학 캠퍼스에 나붙던 대자보의 인식 수준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전두환 군사 정권이 창당한 민정당에서 당직자를 지냈던 21대 광복회장에 이어 민정당 의원 출신 23대 광복회장이 좌파 운동권의 철 지난 반일(反日) 비즈니스와 장단을 맞추고 있는 모습이 묘한 부조화를 느끼게 한다.

[김창균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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