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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시위와 파업

전문의 번아웃에 간호사는 파업 선언…병원이 ‘응급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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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5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 보건의료노조 총파업 관련 현수막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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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이탈에 따른 의료공백 사태가 6개월을 넘어서면서 의료체계 곳곳에서 구멍이 나고 있다. 병원 응급실에선 인력 부족으로 ‘환자 뺑뺑이’가 늘고, 환자가 몰리는 추석 연휴엔 ‘셧다운 대란’ 우려까지 나온다. 여기에 간호사들까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파업으로 병원을 비울 가능성이 커졌다. 전공의가 빠진 자리를 메우던 전문의·간호사가 흔들리면서 의료 위기가 한층 가속화하는 양상이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쓰러진 40대 응급 환자가 병원 14곳을 돌다가 119구급차에서 숨을 거뒀다. 지난 15일 충북 진천에선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가 응급실을 찾지 못해 119구급차 안에서 아이를 낳았다. 소위 ‘응급실 뺑뺑이’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한다.

전공의 없이 6개월을 버티던 전문의도 ‘번아웃’(소진)으로 속속 응급실을 떠나기 시작하면서 응급실 위기가 확산하는 모양새다. 세종충남대병원은 이달부터 응급실을 축소 운영 중이다. 충북대병원은 지난 14일 전문의들이 병가 등으로 빠지면서 응급실 운영을 일시 중단해야 했다.

최근엔 서울 병원들도 응급실 종합상황판 사이트에 ‘환자 수용 불가’ 메시지를 올리는 일이 잦아졌다. 상계백병원은 지난 21일 담당 교수 휴무로 응급실 근무자가 ‘0’이 되면서 낮시간대 119 이송 환자를 받기 어렵다고 밝혔다. 경기 남부 지역의 권역응급센터인 아주대병원은 전문의 3명이 이달 사직하고 6명이 추가로 사직 의사를 밝혀 21명이 운영하던 응급실을 12명이 맡아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 아주대의료원 관계자는 “전문의가 예정대로 사직하면 일부 운영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응급실 빈자리를 채우려고 전문의 채용 공고를 몇 달간 내도 지원자가 없어 못 뽑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최근 자신의 SNS에 “나는 권역응급센터에서 혼자 근무한다. 구급차는 지역을 넘어 뺑뺑이를 돌고, 의료진의 번아웃은 일상이 됐다”면서 “얼마 전 젊은 환자의 팔다리가 터져나간 중증 외상 교통사고가 났지만, 서울·경기의 모든 병원에서 거절당했다고 했다. (처음엔 진료가) 불가능하다고 답했지만, 밤새 그를 살렸다”고 밝혔다.

일반 병원이 문을 닫는 추석 연휴엔 응급실 진료 차질이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통상 명절엔 경증 환자도 응급실로 몰리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전공의 이탈 이후 응급실 경증환자가 줄더니 최근에는 그 전보다 더 늘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8월 셋째 주 응급실 평균 내원 환자는 1만9784명으로 평시 대비 111%에 달했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추석 때는 응급실 근무자는 줄고 아픈 사람은 늘면서 난리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병원을 버티게 해준 진료지원(PA) 간호사 등도 현장을 떠날 상황에 놓였다.

간호사·의료기사 등이 속한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19~23일 61개 병원 사업장을 대상으로 쟁의행위 찬반 투표한 결과 찬성률 91.1%로 총파업이 가결됐다고 25일 밝혔다. 병원과 막판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면 29일 파업에 돌입하게 된다. 다만 ‘빅5’로 불리는 서울 대형병원 노조는 이번 쟁의에 포함되지 않았다.

보건의료노조는 의료공백에 따른 근로자 번아웃을 강조하며 ▶총액 대비 6.4% 임금 인상 ▶조속한 진료 정상화 ▶불법 의료 근절과 업무 범위 명확화 ▶주 4일제 시범사업 등을 요구한다. 각 병원(사용자)은 파업이 예고된 29일 전까지 노조와 합의를 시도할 예정이다.

노조는 파업하더라도 응급실·수술실·중환자실 등 환자 생명과 직결된 필수유지 인력을 남기겠다고 했지만, 전반적인 진료 차질은 불가피하다. 한 의료원 관계자는 “올해 적자가 계속 쌓이는 가운데, 피로가 누적된 간호사 등에 기대서 겨우 진료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 인력까지 병원을 떠나면 큰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는 25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회의에서 “파업이 시작되면 정상 진료 여부를 지자체와 함께 모니터링하고, 진료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응급센터 등의 24시간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하고,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공공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비상 진료를 실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의사에 이어 간호사 이탈이 현실화하고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위태롭게 유지해 온 의료체계가 흔들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의료공백이 지금보다 길어지면 응급·간호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구멍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 특히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비인기 필수의료 과목의 위기가 빨라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곧 발표할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등 의료개혁 방안 외에 필수의료를 살릴 특단의 대책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가장 부족하면서 필요성이 높은 중증 소아와 분만, 응급 분야에 집중적으로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의료개혁이 필요하다면 10조원(정부 계획)보다 더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종훈·남수현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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