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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토)

‘주택담보대출 옥죄기’가 서민들 전세 대출로 불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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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은행 이어 우리은행도 조건부 전세자금대출 중단

조선일보

일러스트=김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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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 전세 계약을 맺고 10월 입주할 예정인 윤모(41)씨는 전세자금대출을 받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신한은행이 26일부터 ‘갭투자(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것)’에 활용되는 조건부 전세자금대출을 중단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윤씨가 계약한 임대인은 갭투자자로, 윤씨에게 전세금을 받아 아파트 잔금을 치를 예정이다. 윤씨는 “잔금 한 달 전에나 전세대출을 신청할 수 있어 그전에 다른 시중은행도 조건부 전세대출을 막아버리면 전세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며 “이러다 계약이 어그러지면 계약금까지 고스란히 날릴까 걱정이 크다”고 했다.

금융 당국의 가계 대출 관리 강화 방침에 따라 시중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에 이어 전세자금대출까지 옥죄면서 가을 이사철을 앞둔 서민 실수요자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전세 대출 금리가 계속 오르는 데다, 신한은행이 조건부 전세대출도 중단하기로 하면서 아파트 전세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은행까지 조건부 전세대출 중단 조치에 가세하고 다른 시중 은행으로도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66주 연속 상승하고 있는 서울 아파트 전세 시장 불안이 더욱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로 투기성 가계 대출 증가세가 주춤할 수는 있겠지만, 정작 전세대출이 필요한 실수요자인 임차인의 불편이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조선일보

그래픽=김하경


◇높아지는 전세대출 문턱

신한은행은 이날부터 갭투자 같은 투기에 활용될 수 있는 조건부 전세자금대출을 취급하지 않기로 했다. 우선 대출 실행일에 임대인(매수자)의 소유권이 이전되는 조건의 전세대출이 중단된다. 주택을 매수하면서 새로운 전세 임차인을 구하고, 임차인이 받은 전세대출금으로 동시에 아파트 잔금까지 치르는 방식의 갭투자를 막겠다는 것이다.

대출 실행일에 선순위채권 말소 또는 감액 조건이 붙는 전세대출도 중단된다. 이전까지는 임차인이 입주하려는 주택에 선순위 대출이 있어도 집주인이 전세금을 받아 선순위 대출을 일부 또는 완전히 갚는 조건으로 임차인에게 전세대출을 내줬다. 그러나 앞으로는 세입자가 받은 전세 대출금으로 집주인의 주택담보대출을 갚는 것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한 유주택자인 임차인이 대출 실행일에 주택을 처분하는 조건으로 받는 전세대출도 중단된다. 신한은행은 “이런 조건들이 붙은 전세자금대출이 투기성 대출에 활용된다는 지적을 반영했다”며 “일부 전세대출을 줄여서라도 가계 대출 총량을 줄이겠다는 취지”라고 했다.

우리은행 역시 다음 달 2일부터 갭투자에 활용되는 조건부 전세대출을 중단하기로 했다. 앞으로 다른 시중은행도 비슷한 방식으로 전세대출을 제한할 가능성이 높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국 압박에 가계 대출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특정 은행이 가입을 막으면 다른 은행으로 대출이 쏠릴 수 있고, 금리 인상만으로는 대출을 조이는 데 한계가 있어 다른 은행으로도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조선일보

그래픽=김하경


◇전세 매물 급감에 서민 세입자 ‘불똥’

전문가들은 은행권의 전세대출 조이기로 애꿎은 서민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조건부 전세대출을 중단하면서 대출을 받아 들어갈 수 있는 전세 매물 자체가 줄어들고, ‘울며 겨자 먹기’로 반전세나 월세로 밀려 주거비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가뜩이나 전세 물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전세대출이 필요한 세입자 선택의 폭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갭투자 방지 효과보다 전세 공급이 줄어 임차인이 겪는 불편이 더 클 수 있다”고 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2만6680건으로 연초(3만5032건)와 비교해 23.8% 줄었다. 전세 수요가 공급보다 많아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66주 연속 상승하고 있다.

조건부 전세대출 중단의 정책 효과가 미미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올해 1~7월 서울의 갭투자 비율은 39.4%로 2021~2022년 부동산 상승기(50.1~50.7%)와 비교해 여전히 낮기 때문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시장은 갭투자자보다 실거주 수요가 월등히 많아 갭투자를 막는다고 해도 가계 대출 증가세나 집값 상승세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며 “전세대출이 까다로워지면서 세입자들이 반전세, 월세 등으로 밀려나 주거비 부담이 심화할 수 있다”고 했다.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자금대출

전세자금대출을 실행하는 날 세입자가 입주할 주택의 소유권이 파는 사람(매도인)에서 사는 사람(매수인)으로 넘어가는 조건의 대출을 뜻한다. 통상 갭투자를 하는 매수인은 매매 잔금일과 새롭게 구한 임차인의 전세자금대출 실행일을 같은 날로 맞춰 임차인에게 받은 보증금으로 매도인에게 잔금을 치른다. 조건부 전세대출이 금지되면 이 같은 방식의 갭투자가 불가능해진다.

[신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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