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14 (토)

[뉴스속 용어]‘상상적 경합’ 적용된 시청역 역주행 사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 행위로 복수의 죄가 생기는 경합

지난달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로 16명의 사상자를 낸 가해 차량운전자 차모씨(68)가 지난 20일 구속기소 된 가운데 차씨의 처벌 수위를 놓고 법조계 의견이 분분하다. 검찰은 차씨에게 ‘상상적 경합’ 관계에 따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했다. 현행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죄는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상상적 경합이 무엇인지 알려면, 우선 '경합범'에 대해 알아야 한다. 형법 제37조(경합범)는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여러 개의 죄 또는 금고 이상의 형에 처한 판결이 확정된 죄와 그 판결 확정 전에 범한 죄를 경합범으로 규정한다. 경합범은 ‘상상적 경합’과 ‘실체적 경합’으로 구분한다. 상상적 경합은 하나의 행위로 복수의 죄가 생기는 경합이다. 실체적 경합은 복수의 행위로 복수의 죄가 생기는 경합이다.
아시아경제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 가해 차량 운전자 차모씨 [사진출처=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무면허운전과 음주 운전을 예로 들어보자. 무면허 운전자가 경찰의 음주 운전 단속에 걸렸다. 그러면 1번의 운전 행위로 2가지 죄가 동시에 성립한다. 무면허운전죄와 음주운전죄다. 이때 두 죄는 ‘상상적 경합’ 관계에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 무면허 음주운전자가 단속 현장에서 음주 측정을 거부하다가 경찰에 입건된 뒤 음주 운전 사실이 밝혀졌다. 음주 측정 거부 행위는 앞선 운전 행위와는 별도의 독립된 행위다. 따라서 ‘음주 측정 거부죄’는 앞선 범죄들과는 ‘실체적 경합’ 관계에 있다.

경합범을 구별하는 이유는 형량을 결정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어서다. 개인이 하나의 행위 또는 복수의 행위로 동일한 법규를 여러 차례 위반하는 경우가 있고, 서로 다른 법규들을 따로따로 위반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형량은 범죄의 성립요건, 양형 기준, 그 법률위반 행위 간의 관계 등을 고려해 결정한다

상상적 경합은 형량 산출이 간단하다. 형법 제40조(상상적 경합)에 따라 ‘흡수주의’에 입각해 처벌한다. 흡수주의란 큰 형량이 작은 형량을 ‘흡수’하는 것이다. 복수의 죄 중에서 가장 무거운 죄에 대해 정한 형으로만 처벌한다. 앞서 예로 든 무면허 음주운전자는 무면허운전죄와 음주 운전 죄의 형량 가운데 더 형량이 무거운 쪽을 적용받는다. 결국 한 가지 결과에 대해서만 처벌받는 것이다.
아시아경제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사진출처=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반면 실체적 경합은 '가중주의'를 채택한다. 국내법의 경우 가장 무거운 죄에 대해 정한 형량을 1.5배 가중해 처벌한다. 앞서 음주 측정을 거부한 무면허 음주운전자에게 ▲무면허운전 징역 1년 ▲음주 운전 징역 3년 ▲음주 측정 거부 징역 2년의 실형이 각각 주어졌다고 가정하자. 이때는 징역 3년의 1.5배인 4년 6개월까지만 선고받을 수 있다. 그런데 가중주의는 형벌이 지나치게 무거워지지 않도록 막으려는 목적도 있다. 만약 한국이 ‘병과주의’를 채택했다면, 3가지 죄 형량을 모두 합산한 총 6년을 선고받을 수 있다.

미국은 병과주의 원칙을 따른다. 범죄자에게 수십 년을 넘어 수백 년의 무기징역급 형량의 판결이 나오는 이유다. 450억달러(약 61조원)의 피해를 일으킨 '가상 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주범인 권도형(33) 테라폼랩스 대표가 "한국에서 재판받고 싶다"는 입장을 거듭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호경 기자 hocanc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