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관 9m 앞까지 4개월간 땅굴 파
학교·도서관 등 도심 지역 도로 아래
자칫 지반 침하·붕괴 위험까지...

충남 천안시에서 송유관 속 기름을 훔치기 위해 기름도둑 일당이 4개월간 판 땅굴 모습. 대전경찰청 제공

4m 깊이 지하 송유관에 접근해 석유를 훔치려 한 기름도둑 일당이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이들은 4개월간 삽과 곡괭이를 이용해 땅굴을 파 송유관으로부터 9m 떨어진 지점까지 도달했으나, 기름을 훔치는 데는 실패했다.

대전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송유관 매설 지점까지 땅굴을 파고 들어가 석유를 훔치려 한 혐의(송유관안전관리법 위반)로 일당 9명을 검거해 이 중 6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3명은 불구속 송치했다고 4일 밝혔다.

이들은 2월 8일 충남 천안시 서북구 두정동에 위치한 2층짜리 창고 건물을 빌린 뒤 6월 20일까지 4개월가량 삽과 곡괭이로 창고 1층 아래 땅굴을 판 것으로 조사됐다. 동종 전과로 실형을 선고 받은 전력이 있는 50대 A씨가 교도소에서 출소하자마자 범행을 계획했다.

기술자 6명이 모여 송유관 기름을 훔치려 하는 영화 '파이프라인'의 줄거리처럼, A씨는 석유 절취시설 설치 기술자, 현장 관리책, 굴착 작업자, 운반책 등 공범을 모집했다. A씨와 함께 범행에 가담했던 기술자와 현장 관리책 2명은 과거 한국석유공사에서 수십 년간 근무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2015년 5월 개봉한 영화 '파이프라인' 포스터. 한국일보 자료사진

일당은 지하 4m 아래까지 땅굴을 파는 동안 임차한 창고에 허위 물류센터 간판을 내걸고, 땅굴로 이어지는 곳은 냉동 저장실 등으로 위장해 단속을 피하려고 했다. 이들이 파낸 땅굴의 크기는 가로 75㎝, 세로 90㎝로, 길이는 16.8m에 달했다. 송유관에서 9m 떨어진 곳까지 땅굴을 팠지만, 경찰에 범행이 발각돼 기름을 훔치는 데는 실패했다.

이들이 땅굴을 파낸 장소는 초·중학교, 도서관, 요양병원, 아파트 등이 있는 도심 한복판으로, 4차선 도로 바로 아래였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 현장이 주거시설이 밀집된 도심 지역으로 자칫 지반침하, 붕괴 위험도 있었다"면서 "현재는 유관기관 협조로 땅굴은 모두 원상복구된 상태"라고 밝혔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