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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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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의 입, 부동산 시장 최대 리스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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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온탕 대출규제 발언 혼란 키워

조선일보

그래픽=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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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4일 주택 실수요자에게 피해를 주는 대출 정책을 점검하겠다고 했다. 이 원장은 지난달 25일에는 “대출 금리 상승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 (은행에 대한)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할 것 같다”고 했었다. 이후 은행들은 경쟁적으로 대출 한도 축소와 유주택자 대출 제한 같은 조치를 쏟아냈다. 그런데 불과 10일 만에 이 원장의 메시지가 대출 규제 완화 쪽으로 바뀐 것이다. 금융 당국 실세인 이 원장의 말 한마디에 은행들이 가계 대출 정책을 바꾸는 상황이라, 이 원장 자체가 부동산 시장의 최대 위험 요인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선일보

그래픽=김성규


◇냉탕 온탕 오가는 대출규제 정책

이날 오전 이 원장은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신관에서 가계대출 실수요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정상적인 주택 거래에서 발생하는 대출 실수요까지 제약을 받아선 안 된다”며 “최근에 나온 (은행권) 대출 상품들의 내용에 대해 점검해 보겠다”고 했다. 최근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 한도와 만기를 축소하고, 1주택자의 수도권 전세대출을 제한하는 등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대출 실수요자의 피해가 커진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이 원장은 “가계부채 관리 속도가 늦어지더라도 실수요자들에게 부담을 줘선 안 된다”며 상황에 따라 가계 대출이 늘어나는 것도 용인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가계 대출 급증세를 막는 데 정책의 최우선 비중을 둬온 그간의 행보에서 한발 물러난 것이다.

그는 특히 “최근 은행들이 예상하지 못한 가계대출 급증 추이를 막기 위해 들쭉날쭉한 대책을 내고 있다”며 “1주택자는 무조건 (대출이) 안 된다는 등 구체적인 내용과 관련해서는 사전에 (금감원과) 공감대가 없었던 편에 가깝다”고 했다. 대출 실수요자 피해의 책임을 은행에 넘긴 셈이다.

은행권은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종잡을 수 없는 이 원장의 행보가 이번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에 걸쳐 은행권을 향해 “고금리 지속으로 서민의 이자 부담이 가중된다”며 이른바 ‘상생 금융’을 주문했다. 은행들은 일제히 대출 금리를 인하했다.

그러다가 지난 7월 임원회의에서 “성급한 금리 인하 기대와 국지적 주택 가격 반등에 편승한 대출 확대가 가계부채 문제를 다시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했다. 그의 발언 이후 은행권은 경쟁적으로 대출 금리를 인상했다. 주요 은행들이 한 달 사이 20번에 가까운 금리 인상에 나서자 지난달 25일에는 금리 인상이 아닌 다른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주문했고, 이제 다시 ‘속도 조절’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대부분 은행들이 당국 메시지에 따라 움직인 것인데, 이제 와 (이 원장이) 공감대가 없었다고 하니 다소 당황스럽다”고 했다.

◇불안한 재건축 실수요자들

오락가락하는 정책에 실수요자들은 애를 태운다. 혼란을 가중하는 대표적인 제한이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이다.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이 당장 실거주할 형편이 안 될 때, 집을 전세 주고 받은 전세금으로 아파트 잔금을 납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때 임차인이 은행에서 받아왔던 대출이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이다. 하지만 일부 은행이 소유권 이전과 동시에 이뤄지는 이 같은 조건부 전세대출이 갭투자(전세 낀 주택매입)에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아예 막아버렸다.

이 때문에 11월 말 입주를 앞둔 둔춘주공아파트 재건축단지(올림픽파크 포레온)에도 비상이 걸렸다. 1만2000가구가 넘어 상당한 전세 매물이 나올 텐데, 전세 세입자를 못 구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다. 이 아파트를 분양받은 이모(47)씨는 “옵션까지 합쳐 잔금이 3억원 넘게 남았는데, 갑자기 은행들이 전세대출을 안 해 준다니 황당해 잠도 안 온다”고 했다.

은행들의 대출 정책도 제각각이라 혼란스럽다. 우리은행은 조건부 전세대출을 완전히 막기로 했다. KB국민은행은 일단 10월 말까지만 막겠다며 여지를 뒀다. NH농협은행은 집주인이 그간 분양 중도금을 완납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주택에 대한 전세대출은 해 주기로 했다. 신한은행은 기존 주택에 대한 조건부 전세대출은 막되, 신규 분양주택은 조건부 전세대출을 해 주기로 했다. 하나은행은 아직 조건부 전세대출 제한 계획이 없는 상태다. 전세대출 실수요자들이 은행을 떠돌 수밖에 없고, 언제 은행들이 대출 정책을 더 강화할지 몰라 불안해해야 한다.

금융 당국 내부에서도 이 원장의 행보가 섣부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금융 당국 관계자는 “당국자들 사이에서도 ‘실수요자’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 견해가 분분하다”며 “입주를 목표로 한 갭투자도 실수요로 볼 여지가 있고, 1주택자의 전세대출도 실수요인 경우가 있는데, 이 원장이 은행권에 너무 애매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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