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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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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만든 17세기 일본 ‘쇼군’, 에미상 18관왕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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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부 시대 권력다툼 그려

단일 작품으로 최다 수상

조선일보

17세기 일본 막부 시대를 무대로 한 드라마 ‘쇼군’의 한 장면. 주인공 요시이 도라나가가 검을 들고 적에게 맞서고 있다. 이 드라마는 미 OTT인 ‘디즈니+’를 통해 공개됐고 지난 15일 에미상에서 단일 작품 역대 최다인 18개 부문을 수상했다./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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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스앤젤레스 피콕 극장에서 지난 15일 열린 권위 있는 방송상 에미상(賞) 시상식의 주인공은 드라마 ‘쇼군(将軍·장군)’이었다. 17세기 일본 막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는 출연진과 대사가 일본인·일본어이지만 미국 회사가 제작했고 지난 2월 미국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디즈니+’를 통해 공개됐다. 월트디즈니 산하 케이블 채널 FX가 제작한 드라마는 에미상에서 단일 작품으로 역대 최다인 18개 부문을 수상했다. 작품·감독·남우주연·여우주연 등 주요 부문도 모두 휩쓸었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대사 대부분이 일본어인 작품이 미국에서 이처럼 많은 트로피를 거머쥐는 건 이례적”이라고 보도했다. 쇼군의 약진은 일본어로 된 일본 이야기가 미국 자본으로 제작되는 최근의 트렌드를 반영한 결과란 분석이 나온다.

쇼군은 17세기 일본 최고 권력인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 자리를 놓고 막부 지도부 간에 벌어진 정치·무력 갈등을 담았다. 이러한 갈등을 태평양을 표류하다 우연히 일본에 정착한 영국인 항해사 ‘존 블랙손’의 시점으로 그렸다. 1975년 출판된 미 작가 제임스 클라벨(1921~1994)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데, 1980년 미 NBC가 드라마로도 제작했다. 미국·일본 자본이 함께 들어간 당시 드라마는 대사 대부분이 영어였고, 일본어가 나올 땐 ‘블랙손의 관점’이라는 이유로 자막도 달지 않아 미국 시청자는 일본어 대사를 ‘음향 효과’처럼 들어야 했다. 이후 일본에선 TV 아사히가 영어 대사 부분에 일본어 자막을 달아 방영했다.

조선일보

지난 15일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 시상식인 에미상에서 18관왕을 차지한 드라마 '쇼군' 포스터. 17세기 일본 막부 시대를 무대로 했다. /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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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원작 소설과 드라마는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일본 막부 시대를 무대로 하면서도 이야기의 초점이 영국인 항해사에 지나치게 치우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무라이 등 일본 막부 문화를 오리엔탈리즘(서양이 편견을 갖고 동양을 깎아내리는 것)의 시선으로 다소 과장해 묘사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반면 올해 나온 드라마는 영국인 항해사를 연기한 배우 코스모 자비스를 제외하면 주·조연과 단역 등 역할 대부분을 일본인이 맡았고, 내용 전개도 막부 인사들을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현지 매체들은 보도했다. 대사는 70% 이상이 일본어고, 영어 자막으로도 볼 수 있다.

주인공 요시이 도라나가를 연기한 사나다 히로유키(64)가 제작에도 관여했는데, 그는 ‘일본인이 봐도 이상하지 않은 일본을 그리자’라는 원칙에 집중했다고 한다. 의상·소품·대사 하나하나를 검토하며 위화감이 들면 즉각 수정하는 식이었다. 사나다는 지난달 요미우리신문에 “일본에 대한 ‘오해의 시대’를 끝내고 싶었다”고 했다. 이날 일본인 최초로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받은 그는 “이번 작품은 동쪽(동양)과 서쪽(서양)이 벽을 넘어 서로를 존중하는 꿈같은 프로젝트였다. 세계와 진정으로 소통하는 일본 시대극을 만들어 기쁘다”고 했다.

조선일보

지난해 11월 넷플릭스가 공개한 8부작 애니메이션 ‘푸른 눈의 사무라이’ 포스터.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백인 혼혈 사무라이의 여정을 그린 이 작품은 미국인이 각본을 쓰고 넷플릭스가 제작했다. 이 같은 일본풍의 서양 콘텐츠 유행을 두고 ‘19세기 중반 서양 미술계에 유행했던 자포니즘(Japonism)의 부활’이란 분석이 나온다.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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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에미상에선 쇼군뿐 아닌 일본 막부 시대를 무대로 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푸른 눈의 사무라이(지난해 11월 공개)’가 최우수 애니메이션상을 받았다. 17세기 일본을 배경으로 했고, 일본어 대사를 기본으로 했다는 점이 쇼군과 비슷하다. 이 애니메이션 역시 미국 제작팀이 만들었고 줄거리도 미국인이 썼다. 공연 문화 성지인 영국 런던 ‘질리언 린 극장’에서 내년 4월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가 연극으로 만들어져 선보일 예정이고, 미 할리우드에서 1982~1990년 연재된 일본 SF 만화 ‘아키라’ 실사판 제작이 최근 결정되는 등 영미권 자본의 일본 콘텐츠 제작은 늘어나는 추세다. NHK 등 일본 언론은 “서양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다양성이 강점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022년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에미상에서 감독상·남우주연상 등을 수상했던 것을 언급하며 “올해 쇼군의 흥행은 한국 드라마들의 약진이 토양이 됐다”고 전했다. 에미상엔 원래 미국 TV에서 방영된 작품만이 후보에 오를 수 있었지만, 넷플릭스·디즈니+ 등 OTT 확산 이후로는 TV에 나오지 않았더라도 미 업체가 제작에 관여했으면 후보 자격을 충족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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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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