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대학교 전경. 경향신문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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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학교 교수가 수업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가족에 의해 팔려간 증거는 있어도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다는 증거는 별로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교수는 일본이 한반도 식민지배에 대해 수십번 사과했는데도 한국인들은 사과를 안 한다고 주장한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이 교수의 주장을 두고 ‘사실을 왜곡하고 위안부 피해자들을 모욕했다’고 규탄하는 대자보가 학내에 붙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20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한신대 사회학과 A교수는 지난 12일 ‘사회조사방법1’ 수업에서 “사실 위안부가 강제 징용됐다는 증거는 별로 없다”며 “팔려 갔다는 것은 있어도, 팔려갔다는 게 지네(자기네) 아버지나 삼촌이 다 팔아 처먹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먹고 살기 힘드니까 자기들이 다 선불로 받았다”며 “그 기록까지 다 있는데 무슨 위안부가 강제로냐?”라고 했다.
A교수는 가족이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갔다면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텐데 그런 사건이 보도된 적이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이어갔다. 그는 “위안부는 대부분 2년 계약제”였다며 “돈을 벌어서 갔다가 돌아오고, 그 기록들이 지금 다 남아 있다”고 했다.
A교수는 일제의 한반도 강점이 불가피했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그는 “미국, 영국, 프랑스, 그리고 스페인, 포르투갈, 일본이 다 식민지를 만들지 않았냐”며 “그 당시 식민지 대상이 되는 국가는 기본적으로 스스로 국가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나라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 사람들이 사과를 35번이나 했는데 안 한다고”라고 했다.
“A교수 발언은 역사 왜곡이자 2차 가해”···수강생의 대자보
19일 경기 오산시 한신대 게시판에 “사회학과 A교수의 역사왜곡과 일본군 ‘위안부’ 2차 가해를 규탄한다”는 대자보가 붙어있다. 이 글은 ‘사회조사방법1 수업 수강생’ 명의로 쓰여졌다. 독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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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A교수의 발언에 반발했다. 19일 한신대 교정에는 ‘사회조사방법1 수업 수강생’ 명의의 대자보가 붙었다. 이 학생은 대자보에서 “A교수가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왜곡하고 있으며, 이는 피해자들에 대한 엄연한 2차 가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A교수의 사과와 대학 차원의 징계를 요구했다.
이 학생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위안부가 된 과정은 개인마다 다른데도,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피해자들의 남성 가족에 의해 팔려 간 사례만 부각하며 강제 징용된 증거가 별로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지적했다. 이어 “여성들을 조직적으로 성노예화시켜 착취한 것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핵심이고, 이 문제에서 일본의 책임은 지워질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일본이 이미 사과했다는 발언에 대해선 “우리가 사과를 진정성 있다고 여기지 않는 이유는 전범을 신으로 모시고, 매년 총리가 신사에 참배를 하러 가며, 미래 세대들에게 자신들의 잘못을 가르치지 않는 등 행동 때문”이라고 했다.
이 대자보는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의 한신대 자유게시판에도 게재됐다. 한 학생은 2021년부터 A교수의 수업을 들었다면서 “이런 발언하실 때마다 전공필수 과목이라 답답해도 넘기고 있었는데, 이렇게 규탄서를 써주셔서 감사하다”는 익명 댓글을 남겼다. A교수의 문제 발언이 일회성이 아니었음을 추정케 하는 내용이었다.
A교수 “근거는 ‘반일종족주의’ 책”···“공론화가 오히려 2차 가해”
민족문제연구소와 일본 ‘위안부’연구회가 2019년 10월1일 서울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공동 주최한‘역사부정을 논박한다’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반일종족주의>를 두고 토론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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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교수는 경향신문과 통화하면서 “사회문제를 다루는 수업에서 자료들을 많이 얘기하긴 했다”면서 발언 내용을 시인했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 징용 근거가 별로 없다’고 한 주장의 근거를 묻자 “<반일종족주의> 책에 많이 나와 있다”고 답했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등이 2019년 출간한 <반일종족주의>는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및 강제동원의 강제성을 부정하고 식민지 근대화론을 옹호하는 주장을 담고 있다. A교수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기자의 이어진 질문에 “실제로 간 사람들이 모르고 갔을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저항의 기록이 안 보이면 누군가 대신 돈을 받고 팔았거나 모른 것일 것”이라고 했다.
A교수는 자신의 발언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는 비판을 부정했다. 오히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이 피해자의 상처를 헤집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피해자들이)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 그걸 묻어버리고 자연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던 사람들인데, 국민들이 정치적으로 할머니들의 상처를 헤집고 있다고 본다”고 했다.
A교수는 일본군 성노예제 공론화가 상처를 헤집는 일이라면서 강의실에서 이 사안을 언급한 이유를 묻자 “양쪽의 입장을 고루 들어야 하는데, 한쪽으로 논의가 경직되는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2000년대 초반까진 학교에서 모든 논의가 자유로웠는데 점점 학생들이 환경·여성·반일 등 모든 것에 있어서 확고한 하나의 입장만 가지고 들어온다”며 “대학이 이미 정치적으로 함몰돼서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A교수는 비판사회학회장을 역임한 중견 학자로서 서울대에서 학부와 석·박사를 모두 마쳤으며 주요 전공 분야는 방법론, 정치사회학이다.
전문가들 “학자가 일본 우익 주장에 편승”
제12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인 지난달 14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 소녀상이 경찰 펜스에 둘러싸여 있다. 김창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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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교수의 발언에 대해 전형적인 일본 우익의 주장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20년 넘게 일본군 성노예제 연구를 해온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A교수의 주장은 강제로 끌려갔다는 피해자 증언과 상충할 뿐 아니라,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핵심을 흐리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일본군이 위안소를 관리하는 등 위안부 문제에 관여했고, 일본이라는 국가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라며 “인신매매가 있었다거나 강제 연행이 없었다는 식의 주장은 일본 우익이 문제를 비본질적인 것으로 치환시키려고 오래 전부터 써온 방식”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가 2년 계약제였다는 A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도 “정작 아무도 계약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계약제였더라도 본인의 의사를 반한 계약은 무효이고, 일본군이 관리하는 위안소에서 피해자들이 성 노역을 강요당했다는 논점을 흐리는 어법에 불과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한국과 국제사회의 법적 상식을 부정하는 일본 우익의 주장에 매몰된 강의를 학생들에게 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말했다.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지원 단체인 정의기억연대의 이나영 이사장은 A교수의 발언이 명백한 피해자에 대한 모욕이라고 했다. 이 이사장은 “할머니들의 증언에도 딸을 판 사람이나 인신매매를 당한 사람이 나오지만, 기본적으로 (일본 정부가) 위안소 제도를 기획하고 피해자를 성적으로 착취한 구조가 근원적 문제”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A교수가 이러한 일본군 성노예제의 체계적인 구조 자체를 부정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이 이사장은 ‘양쪽의 입장을 모두 들어야 한다’는 A교수의 주장에 대해선 “일본 정부의 불법 행위를 인정한 고등법원 판결이 나왔는데도 가해자 얘기를 들어봐야 한다는 논리를 펴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지난해 서울고등법원은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일본군 위안부 동원 과정에서 일본 정부의 불법 행위가 인정된다며 청구를 인용했다.
한신대 관계자는 학내에서 제기된 A교수 징계 요구에 대해 “사실관계 파악 중에 있는 사안으로, 드릴 수 있는 말이 없다”고 밝혔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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