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의 한 음식점에 3대 배달 플랫폼 의 스티커가 붙어있다. 중개수수료가 9.7~9.8%까지 오르면서 자영업자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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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 마주 앉은 두 평행선은 지독할 정도로 나란했다. 상생협의체라는 이름 아래 모인 배달 플랫폼(이하 배달앱)과 자영업자 중심의 배달앱 입점업체 대표들은 서로를 향해 단 1도도 구부러지지 않았다. 벌써 다섯 번째인 그날 회의에서도 진척은 없었다.
지난 7월 이 협의체가 생긴 건 배달앱에 대한 자영업자의 불만이 극에 달해서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배달의민족(이하 배민), 쿠팡이츠, 요기요 등 배달앱은 출범 초기에만 해도 저렴한 이용료를 바탕으로 자영업자의 손발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생태계를 구축하고 지배하는 절대자가 되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서울 관악구 대학동 음식점 콩심의 제상표(45)씨가 한탄했다.
박경민 기자 |
“배달 매출의 40%가 배달 업체와 배달비로 나가요. 2만원 팔면 입금되는 게 1만1000원인데 재료비, 인건비, 운영비까지 빼면 하나 팔아봐야 몇백원이나 남겠어요?”
피자 가게를 운영하는 황성철(가명·60)씨도 말을 보탰다. “배달앱이 30%를 갖고 가서 어쩔 수 없이 음식값에 배달비를 녹여 넣어요. 우리도 싫어요. 실속 없이 매출액만 올라가서 수수료랑 세금이 덩달아 뛰거든.”
과장이 아니다. 사업 초기 건당 1000원이던 배민과 쿠팡이츠의 배달 중개수수료는 매출액의 9.8%로 급등한 상태다. 2만5000원어치 음식을 주문하면 중개수수료 2450원에 배달비 2900원(업주 부담 시), 결제정산이용료 750원, 부가가치세 610원까지 총 6710원이 빠져나간다. 전체 음식 가격의 26.8%다.
사실상 독과점 시장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격을 수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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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더 내야 가게이름 더 노출…출혈경쟁 부추기는 배달앱
배달앱 간편결제 수수료율도 최대 2~3%로, 신용카드 수수료율(0.5~1.5%)보다 갑절이나 높다.
자영업자 간 경쟁을 부추기는 구조의 배달앱 광고도 원성의 대상이다. 대표적인 게 이른바 ‘깃발 꽂기’로 불리는 배민의 정액제 광고서비스 울트라콜이다. 깃발(광고) 한 개당 월 8만8000원(부가세 포함)을 내면 가게 소재지가 아닌 곳의 소비자에게도 가게가 노출된다. 돈을 많이 내면 낼수록 노출 지역이 넓어진다. 우리가게클릭 서비스는 고객이 클릭만 하고 주문을 하지 않아도 광고비가 나간다. 그 대신 가게 이름을 더 많이 노출해 준다. 광고 금액을 높게 설정할수록 노출 기회도 늘어난다.
결국 광고비를 더 많이 내야 더 많이 주목받을 수 있는 구조다. 그렇다고 해서 매출과의 연관 관계가 검증된 건 아니다. 자영업자 김성배(가명·46)씨는 “깃발을 11개(96만8000원)나 꽂고 영업했는데 효과가 거의 없었다. 추가 매출액이 깃발값에도 못 미쳤다”고 말했다.
박경민 기자 |
부산물인 ‘리뷰 스트레스’와 ‘배달거지’도 골머리다. 김씨는 “황당한 환불 요구가 접수돼도 배달앱에서는 무조건 환불해 주래요. 진상 고객 주문을 사전 차단하고 싶어도 시스템상 안 된대요. 그럴 거면 도대체 수수료는 왜 받아가는 거예요?”라고 반문했다. 그는 “리뷰와 광고로 소상공인에게 싸움을 붙여놓고 배달앱은 탁자 위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 상태”라며 울분을 토했다.
불완전 서비스에 대한 불만도 있었다. 황성철씨는 “알뜰 배달은 2000원 싸다고 해서 했는데 나중에 보니 우리 가게에 배달팁 할인 쿠폰을 붙여놔서 100만원이나 손해봤다”며 “항의했더니 ‘문자메시지로 안내했다’고 발뺌하더라”고 주장했다.
네이버·카카오 같은 거대 온라인 플랫폼도 ‘묻지 마’식 광고비 출혈 경쟁에 자영업자를 내몰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네이버 플레이스 광고는 입찰식으로 운영된다. 예컨대 건당 50원을 설정해 두면 하루 100번 클릭이 있었을 때 5000원을 광고비로 내는 방식이다. 금액을 높게 설정할수록 검색 상위에 노출될 가능성도 함께 커진다. 네이버 파워링크 광고는 1일 최대 과금액 제한 장치도 없다.
김영옥 기자 |
광고비 산정 구조도 투명하지 않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꽃집을 운영하던 김형태(가명·40)씨는 올 초부터 네이버에 온라인 광고를 했다가 ‘광고비 폭탄’을 맞았다. “광고비가 어느 순간 너무 많이 나와서 매출액을 추월했어요. 더 답답한 건 도대체 광고비가 어떤 기준으로 산정된 건지 알 방법이 없다는 거예요.” 결국 가게를 접은 그는 “온라인 광고만 안 했더라도 가게를 조금은 더 오래 할 수 있었을 텐데 후회가 크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허점을 노린 광고·마케팅 사기도 극성이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정진영(가명·45)씨는 “어느 날 우리 지역 배달앱 매니저가 오더니 ‘광고비 일부를 환급해 주겠다’고 제안해 광고했다”며 “그런데 몇 달 뒤 환급이 끊겨서 연락해 보니 다른 사람이 전화를 받더라”고 말했다. 온라인 플랫폼 광고 역시 대행사를 자처하는 이들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플랫폼 측도 이런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단속은 어려운 실정이다. 네이버 측에서는 “가입 단계에서부터 사기 주의 고지를 하고 있다. 비공식 마케팅업체로 피해를 봤다면 24시간 신고센터에 연락해 도움을 요청하라”고 말했다. 배민 측도 “환급을 미끼로 한 광고 영업은 본사가 아니라 협력사에서 벌어진 불공정 행위”라며 “금지 행위인 만큼 적발 시 불이익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들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하면서 정부는 급하게 지난 7월 상생협의체를 만들었지만,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이대로라면 10월까지 수수료 조정 합의안 등을 도출한다는 목표의 달성은 불투명해 보인다. 속절없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자영업자의 불만은 계속 커지고 있다.
폐업의 핵심 사유로 배달앱 수수료를 꼽은 전직 자영업자 박정수(가명·51)씨에게 “자영업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에 요구하고 싶은 게 있느냐”고 물었더니 1초도 안 돼 즉답이 돌아왔다.
“배민 망하게 해주세요. 배민 망하는 거 꼭 보고 싶어요.”
■ EU처럼 ‘플랫폼 갑질 차단법’ 절실…프랜차이즈 점주단체도 법적 보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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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문제는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 할까. 급선무는 수수료 조정이지만 현행법에는 그걸 강제할 조항이 없다. 지난 정부에서는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을 제정해 플랫폼들을 단속하려 했지만, 재계의 반대와 정치권의 논란에 부닥쳐 사실상 폐기됐다. 정부는 현재 공정거래법과 대규모 유통업법 개정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 경우 배민 등 대부분의 배달앱 업체들이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윤정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독과점이 심해져 시장의 자율성만을 존중하는 정책은 이제 효과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선진국은 강제 조항을 속속 마련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주요 플랫폼 업체의 ‘갑질’을 차단하는 내용의 디지털시장법(DMA)과 디지털서비스법(DSA)을 제정해 이미 시행에 들어갔으며, 일본도 비슷한 내용의 플랫폼 규제법을 시행중이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은 점주 단체의 목소리를 키우기 위한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지금도 점주들이 단체를 결성해 본사에 협의를 요청할 수는 있다. 하지만 요청에 불응하는 본사를 제재할 규정은 없어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 때문에 본사가 점주 단체의 거래조건 협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게 점주 측 입장이다. 정종열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자문위원장은 “적절한 견제는 건강한 동반 성장으로 이어지는 만큼, 일단 양측이 자리에 앉아 마주 보는 데까지는 법이 강제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본사 수익구조의 중심을 로열티 쪽으로 이동시켜 물품 구매 강요 등 행위를 근절할 필요가 있으며, 정보 공개의 수준을 향상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 ‘한국의 아킬레스건’ 자영업…51명의 슬픈 현실을 듣다
665만 자영업자가 벼랑 끝에 섰다. 소득의 추락, 과잉 경쟁과 과잉 노동, 원가 급등과 부채 급증이 그들을 옥죄고 있다. 자영업 문제는 한국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저출산·고령화·인구·복지·빈부격차·지방소멸 등 우리가 직면한 모든 논란거리가 자영업 문제에 결부돼 있다. 지체의 늪에 빠진 한국이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 반드시 털어야 할 난제다.
중앙일보는 창간 59주년을 맞아 자영업 문제 해결을 위한 장기 기획 보도를 시작한다. 먼저 두 달간 발품 팔아 만난 자영업자 51명의 목소리를 토대로 5일에 걸쳐 그들의 비참한 현실을 날것 그대로 보도한다.
후속 보도를 통해서는 숨은 문제들을 발굴하고 국내외 정책들을 점검하면서 해법과 대안을 도출할 계획이다. 정치권과 정부의 각성을 끌어낼 수 있도록 독자와 국민의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특별취재팀=박진석·조현숙·하준호·전민구 기자, 사진 김현동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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