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여성폭력방지포럼 ‘교제폭력 및 여성폭력 복합피해 현황과 지원 사각지대 해소 방안’ 토론회에서 발제자들이 발표하고 있다. 탁지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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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사귀던 남자친구와 동거하다 헤어졌다. 헤어지잔 말에 전 남자친구는 A씨에게 칼을 들이대며 위협했다. A씨는 경찰 신고 과정에서 가해자가 전자발찌를 찼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일로 A씨는 트라우마와 공포감을 겪어 자살 충동까지 심해졌다. 상담소는 A씨를 정신건강센터에 연계했다.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 기관과 정신건강센터가 협력해 A씨를 지원했다.
이 사건은 27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여성인권진흥원(진흥원) 여성폭력방지포럼 ‘교제폭력 및 여성폭력 복합피해 현황과 지원 사각지대 해소 방안’ 토론회에서 여성폭력의 ‘복합피해’를 보여주는 예시로 제시됐다. A씨는 교제폭력뿐 아니라 스토킹을 당했고 그로 인한 정신적 트라우마까지 최소 세 가지 유형의 피해를 함께 겪었다. 학계에선 복합피해를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스토킹, 성 학대 등 서로 다른 여성폭력 유형이 중첩돼 발생하는 경우로 정의한다.
한민경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복합피해 특성에 기반해 여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한 교수는 “교제폭력 피해자의 경우 93.6%가 스토킹 또는 성적 괴롭힘을 동시에 겪는다”며 “여성폭력 피해의 근본적인 원인은 ‘학대, 협박, 강요, 침입, 위협, 강제’로 공통적이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다른 유형의 폭력을 이전에도 경험했거나 앞으로도 피해 상황에서 벗어나기 힘들 수 있다”고 했다.
한 교수는 “피해자들은 폭력과 관련된 직접적·신체적·가시적 피해 양상 말고도 빈곤, 질병(정신질환), 이주 등 다양한 형태의 취약성에 놓여 있다”며 “복합피해 상황은 폭력의 직접적 피해만 볼 게 아니라 피해자가 놓여 있는 상황 전반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진흥원은 여성긴급전화 1366센터를 중심으로 여성폭력 피해자 통합지원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다만 서울·경기·대전·울산·부산 등 5개 광역시·도에서만 이뤄지고 있다. 진흥원에 따르면 지난 7월31일 기준 통합지원을 받은 피해자는 102명, 심리·의료·법률·주거 등 피해 지원 건수는 421건이다.
한 교수는 “복합피해 지원 방향으로 통합 지원을 설정했다면 전국에서 가능하도록 전국 단위 확대 시행이 조기에 검토될 필요가 있었다”며 “피해자 102명의 사례 분석과 피해 지원 방식의 공유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경하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복합피해를 개별법에 따라 분리해 지원하기보다 교제폭력, 가정폭력으로서의 성범죄, 스토킹 범죄에 대한 통합적 이해 및 지원이 필요하다”며 “통합지원 종사자들의 역량 강화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 이사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근거해 발행한 여성폭력통계에 여성혐오 범죄가 누락돼 있어 여성혐오 범죄 피해자가 여성폭력 피해자로서 법제적 지원과 보호를 받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이사는 “‘여성혐오 범죄 피해는 기타로 분류되는 폭력이기 때문에 내가 지원하지 않는다고 마음 먹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게 굉장히 무섭다’는 한 성폭력상담소 소장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며 “여성혐오 범죄를 적극적으로 여성폭력에 포섭해 피해 지원을 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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