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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윤 정부의 연금개혁안, 여성 반하는 방안만 모았나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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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해 1월10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서 한 노인이 폐지를 담은 수레를 끌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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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진 |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대표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안이 점차 구체화하고 있다. 하지만 개혁안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국민의 노후 보장을 흔드는 개악이라는 것에 확신을 갖게 된다. 심지어 여성의 노인빈곤율이 심각하게 나타나는 한국에서 정부의 연금개혁안이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국민연금의 수준을 높이고 사각지대 해소에 정부가 적극 나서서 여성의 연금 수급권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은 실종되고, 여성에 대한 혜택인 것마냥 출산 크레딧 확대 하나로 퉁치려는 얄팍한 술수만 보인다.



국민연금공단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24년 현재 성별 연금 급여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는 점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여성 노인들은 개인 최소 생활비는커녕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용돈이라는 말조차 사치스러운 수준의 급여로 불안한 노후를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가부장제라는 전통적 가족제도라는 토양이 구조로 존재하는 가운데, 남성은 생계부양자로서, 여성은 자녀 양육 등 가정 내 돌봄을 책임지는 자로서 분리된 성 역할 구조는 여전히 강고하다. 이러한 사회적 토양에서 국민연금에 대한 여성의 독자적 수급권은 결과적으로 매우 보장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꾸준히 증가해왔지만 이것이 여성의 연금 수급권 향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여전히 여성에게 돌봄의 책임이 더 무겁게 지워지기 때문이다. 20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남성을 능가하고, 임금에 있어서도 평등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출산과 양육이 이루어지는 순간부터다. 출산과 양육을 하는 30대 초반,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급격히 하락한다. 그 후 자녀가 어느 정도 성장할 무렵, 여성들은 노동시장에 재진입하게 된다.



윤석열 정부는 여성들의 경제활동 경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30대 여성은 경력단절로 인해 국민연금 가입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돌봄 서비스를 확대하고, 남성의 배우자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장려하는 등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것이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기에는 부족하다.



코로나19 감염병 위기에서 여성이 노동시장과 가족 내 어떤 지위에 놓였는지 다시 돌아보자. 팬데믹 동안 보육·교육시설을 이용하기 어려워지면서 많은 여성이 직장을 그만두고 가정으로 복귀해야만 했다. 현재 30~40대 여성들은 이 기간 그리고 그 이후의 경력단절로 인해 성별 임금 격차뿐만 아니라 연금 가입 기간의 격차까지 떠안게 되었다. 세대 간 형평을 명분으로 세대 간 보험료 인상 속도를 차등화하겠다고 했으나, 이 경우 앞으로 여성들이 국민연금에 더 많이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자동안정화 장치의 문제점은 더욱 심각하다. 가입자율 감소와 평균 기대여명 증가에 따라 자동적으로 연금 수급연령을 늦추거나 연금액을 삭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입 기간이 짧은 수급자는 연금 급여가 낮을 수밖에 없는데, 자동안정화 장치는 이들의 낮은 연금을 더욱 낮게 만든다. 사실상 ‘자동 삭감 장치’인 이 제도는 남성들보다 여성들에게 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 자명하다. 국민연금이 노동시장의 구조적 차별을 반영한다는 것은 오랜 시간 국민연금에 대한 비판의 이유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각계각층에서는 노동시장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들을 요구해왔다.



윤석열 정부는 이러한 요구에 반하는 방안들만을 뽑았다고 해도 무방할 개악안을 내놓았다. 국민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의 노후 빈곤 문제를 경시하는 것을 개혁안이라 할 수 있는가. 국민의 존엄한 노후 보장을 위한 정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국민의 의견이라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오랜 기간에 걸쳐 논의한 공론화 결과는 무시한 채 국민 모두의 노후를 흔드는 개악안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 공론화 과정에 참여한 시민들은 고령화 사회에서 각 세대가, 그리고 각 계층이 공존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국민연금은 세대 간 연대와 계층 간 재분배라는 가치 위에 세워진 제도다. 정부가 마음대로 국민의 노후를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길 권리는 없다. 여성 노인 10명 가운데 6명이 빈곤에 처해있는 나라에서 정부의 개혁안이 과연 빈곤한 여성의 삶을 한 번이라도 고려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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