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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 (목)

[봤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서 무협지의 향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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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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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오리지널 시리즈를 성공시켰던 넷플릭스지만 유독 힘을 못썼던 장르가 바로 예능이었어. 신세계로부터, 범인은 바로 너, 미스터리 수사단 등 내로라하는 출연자들과 연출자들을 내세웠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지.

그나마 피지컬100이 넷플릭스가 선보인 예능 중에 가장 성공한 작품인데, 이마저도 호불호가 많이 갈렸고 해외에서의 반응도 미지근했지. 이에 비해 예능을 앞세운 티빙은 상대적으로 승승장구하는 모습이었고.

넷플릭스 예능은 별로라는 이야기를, 이제는 하기 어려울 것 같아. 최근 가장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콘텐츠 '흑백요리사'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중이야.

40대 워킹맘 기자인 '라떼워킹맘'이 밤을 새고 보는 콘텐츠는, 성공하거든. 그런데 이 '흑백요리사'는 정말 한순간도 졸지 않았고, 넘기지도 않고 오랜만에 정주행을 한 콘텐츠였어.

요리 프로그램, 한물 갔다고 하던데...

한때 요리 프로그램의 홍수 속에 살았던 때가 있었지. 마스터 셰프 코리아를 비롯해 냉장고를 부탁해, 쿡가대표 등 셀 수 없는 요리 프로그램이 우리를 찾아왔었어.

채널만 돌리면 나왔던 셰프들은 자취를 감췄고, 한동안은 정통 요리 프로그램보다는 연예인들이 음식을 해서 판매하는 예능이 봇물을 이뤘어. 이제 정통 요리 프로그램은 성공할 수 없다는 인식이 방송가에서 팽배했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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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예능을 성공시키지 못했던 넷플릭스가 정통 요리 프로그램을 그것도 이미지가 너무나 많이 소모된 백종원을 내서워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실 너무나 식상했거든.

또다시 우리가 모두 아는 셰프들이 나와서, 대결하는 재미없는 포맷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이 성공 못하는 이유는 이렇게 감이 없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다소 극단적인 생각마저 들었어.

미친 섭외력

그런데 출연하는 셰프가 하나 둘 드러나면서 그저그런 프로그램이 아닐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기 시작했어. 우선 미국에서 너무나 유명한 에드워드 리가 출연한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지. 심사위원을 하는게 아니라 출연자로 나선다니, 너무 놀랍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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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마스터셰프 코리아 시즌2 우승자인 최강록, 중식의 아버지 여경래, 대한민국 16개 조리 명장 안유성 등 최근 예능에서 보기 어려운, 너무나 기대되는 셰프들이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고 있더라고.

솔직히 이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재미가 없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게다가 한국 최초의 미슐랭 쓰리스타로 유명한 안성재 셰프가 심사위원이라니, 뭔가 다른 느낌이겠다는 기대감이 들더라고.

MZ세대를 노린 흑수저 셰프들

그런데 넷플릭스는 정말 영리한 것 같아. 만약 저런 명인들만 출연시켰다면 아마 생각보다 재미없는 프로그램이 나왔을지도 몰라. 아니면 나처럼 '라떼는~'을 외치는 40대 이상의 시청자들만 시청했을수도 있고.

넷플릭스는 흑수저 셰프 80인도 출연시켰는데 MZ세대들이 줄서서 먹는 식당 오너들이나 유튜버 크리에이터 등 최근 '핫'한 셰프까지 출연시킨거야.

전 연령대를 아우를 수 있는 요리 프로그램은 흔치 않은데 흑백요리사의 영리한 섭외 전략은 시작 전부터 이미 프로그램의 성공을 조심스럽게 점칠 수 있는 요인이 아니었나 싶어.

무협지를 보는 느낌의 흑백요리사

'라떼워킹맘'은 40대다보니 어렸을 때 무협지를 자주 봤어. 지금의 MZ세대들은 무협지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40대 이상은 아마도 무협지를 많이 읽었을거라 생각해.

그런데, '라떼워킹맘'은 흑백요리사를 볼 때마다 어렸을 때 자주 봤던 무협지가 생각나. 엘리트 코스를 밟은 한 무사와 재야의 고수지만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무사가 멋지게 한판 대결을 펼치는 그런 무협지 말이야.

게다가 마치 대본이 있는 것처럼 승부가 너무나 재미있게 펼쳐져. 진짜 제작진이 천제인건지, 아니면 넷플릭스 예능이 계속 망하는걸 보고만 있지 못한 하늘이 도운건지 모르겠지만 무협지보다 더 멋진 승부들이 펼쳐지고 있거든.

요리에 담긴 인생

'라떼워킹맘'이 갑자기 무협지가 떠오른 순간은 한식 대첩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영숙 셰프와 장사천재라 불리는 조사장이 우둔살을 재료로 대결했을 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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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모양의 음식을 내놓은 사람과, 달랑 국물 하나에 고기 몇점 얹은 기본적인 곰탕. 누가 봐도 비주얼은 화려한 모양의 음식이 우승할 것 같지만 맛 하나만으로 소박한 곰탕이 우승을 했지.

그런데 '라떼워킹맘'은 이 장면에서 그냥 인생을 느꼈어. 이때 심사위원들이 눈을 가리고 음식을 먹은 뒤 평가를 했단 말이야. 내면을 다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리고 내면을 알아보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이야.

외모지상주의가 판치는 요즘 세상에서 이 장면은 많은 의미를 줬다고 생각해. 우리가 내면을 가꾸는 일을 게을리 하면 안된다는 것을, 이 장면 하나로 느낄 수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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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리더의 중요성, 팀워크가 가져오는 엄청난 결과, 불만만 터트리는 사람들의 최후, 실력 없이 남을 평가만 하는 사람들의 허상 등 우리의 인생사를 요리 예능에서 보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꺼야.

게다가 10편에서는 8명의 요리사들의 인생을 요리를 통해 들을 수 있었는데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감동적이었던 것 같아. 'T'인 '라떼워킹맘'은 콘텐츠를 볼 때 잘 울지 않거든. 그런데 몇몇 셰프의 인생과 그들의 음식을 보며 눈물이 살짝 나더라고.

요리는 우리에게 많은 감정을 불러 일으켜. 흑백요리사 콘텐츠 안에는 무협지같이 너무나 멋있는 이야기도, 인생을 이야기하는 잔잔한 감동도, 멋진 요리 하나만으로 느껴지는 엄청난 예술도 느낄 수 있어.

이제 흑백요리사는 두개의 에피소드만 남아있어. 사실 누가 우승했는지는 이상하리만큼 크게 관심이 없어. 그저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을 뿐이야. 재미있는 무협지의 결말을 보고 싶은 것처럼.

이소라 기자 sora@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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