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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이원홍의 스포트라이트]축구협회는 궤변과 ‘버티기 쇼’ 그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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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왼쪽에서 두 번째)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가운데) 및 이임생 기술총괄이사(오른쪽)가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협회 현안질의에 출석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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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변 전람회.’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 감사 내용을 놓고 대한축구협회가 반박한 내용들을 보며 떠올린 표현이다.

동아일보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문체부 감사 결과를 요약하면 위르겐 클린스만,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에서 협회는 모두 규정과 절차를 위반했다. 클린스만 감독 선임 때는 협회가 감독 추천 기능을 담당하는 전력강화위원회를 무력화했으며 감독 추천 권한이 없는 정몽규 회장이 최종 2차 면접을 보는가 하면 이사회 승인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홍 감독 선임 때는 제대로 권한을 위임받지 않은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불공정하고 불투명한 방식으로 면접을 진행했다.

협회는 감사 내용을 대부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반박 내용을 보면 협회의 온갖 규정을 가져다 꿰맞추며 이미 벌어진 사실들의 진위를 흐리려 하는 데다 시간이 없고 급박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상황 논리들을 동원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궤변들의 나열이라는 생각이 든다.

클린스만 감독 선임 때 협회는 전력강화위원회가 구성되기도 전에 감독 후보자 명단을 작성하고 접촉에 들어갔다. 이후 뒤늦게 위원회가 꾸려졌으나 1차 회의에서 위원들의 전권을 전력강화위원장에게 위임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위원들은 클린스만 선임을 주도한 마이클 뮐러 위원장으로부터 결과만 통보받게 됐는데도 협회는 이것이 위원회 무력화가 아니라고 우긴다. 위원들에게 권한을 위임받아 일을 진행했으니 문제없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위원들을 들러리 세울 바에는 위원회는 왜 만들었나. 또 정 회장이 면접을 본 것은 최종 선발에 영향을 주려는 게 아니고 향후 지원해 줄 내용을 듣기 위해서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 내용은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고 하는데, 기록도 없이 이런 주장을 하면 믿을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나. 또 이 이사의 권한 위임이 논란이 되자 이 논란이 불거지는 계기가 된 소위 11차 전력강화위원회 회의는 아무런 권한이 없는 임시회의일 뿐이라면서 이 이사의 권한은 이미 10차 회의가 마무리된 뒤 정해진 것이라고 말을 바꿔 항변하고 있다. 이때 이 이사의 권한은 회장이 관계 직원들과 회의를 통해 부여한 것으로 협회는 설명하는데, 그 근거로 협회의 긴급 사안에 대해 회장이 처리할 수 있다는 규정을 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하면 회장이 모든 업무에 관여할 수 있는 ‘만능 키’를 쥐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홍 감독 면접에 대해서는 이 이사가 한밤중에 찾아가 질문지도 없이 읍소에 가깝게 감독직을 수락해 달라고 요청하는 모양새가 됐는데도, 협회는 정상적인 면접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누가 봐도 면접이 아니라 부탁하는 인상을 주는 걸 놓고도 정상 면접이라고 강변하니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는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표현이 떠오를 뿐이다.

설령 협회의 주장처럼 모든 과정이 규정을 준수하며 진행되었다 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이 세밀하지 못하고 졸속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협회가 감독 후보들을 추리는 과정에서 어떤 기준이 적용됐는지, 단지 몇 가지의 인상 비평 외에 어떤 전문적인 평가가 적용됐는지는 이번 감사에도 여전히 불분명하다.

이번 논란 과정에서는 협회가 위촉한 일부 전력강화위원의 무책임한 일면도 보였다. 협회가 공개한 10차 회의록 내용 중에는 위원들이 여론이 악화될 것을 예상하면서도 홍 감독 선임을 강행하면서 “협회가 명분을 제시해 주고, (홍 감독) 본인이 얻어먹을 욕은 본인이 먹어야 된다는 생각을 함”이라는 내용이 있다. 홍 감독이 어떤 욕을 먹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타인의 입장에 대한 배려가 없는 데다 협회가 명분을 제시해 주면 팬심을 쉽게 움직일 수 있으리라는 오만함이 느껴진다.

이런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협회가 속속들이 외부 비판에 대한 불감증 및 자기중심적 논리에 젖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협회의 가장 큰 존립 근거이자 성장 동력이 팬들의 지지와 응원인데도 팬들을 쉽게 여기고, 거센 팬들의 분노 앞에서도 전혀 바뀔 줄을 모른다. 누구 하나 책임지지도 않고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협회가 조금이라도 신뢰를 회복하려면 지금이라도 집행부 총사퇴 등 대대적인 개혁에 나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강제 퇴진 운동 속에 모두가 불명예 속으로 떨어질 수 있다.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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