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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월)

북유럽 육아휴직 ‘아빠 할당제’…급여는 정부·기업 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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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은 ‘복지 천국’으로 불린다. 출산과 육아 관련 가족정책에서도 세계적인 모범 국가로 꼽힌다. 이들 국가의 가족 친화적 정책과 직장 문화, 사회 인식은 한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사회적 논의를 거쳐 합의를 이뤄낸 결과다. 육아휴직 등 가족정책은 기업·노동자·국가 등 어느 한쪽이 경제적으로 ‘손해 보는’ 정책이 아닌 ‘사회적 투자’로 여겨진다.





노동력 부족에서 시작된 가족정책





가족정책의 출발과 확대는 ‘노동력 부족’과 깊은 연관이 있다. 리비아 올라 스톡홀름대 인구학 교수는 스웨덴의 가족정책도 “1960년대 경제 발전 시기 노동력이 부족해지면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스웨덴은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그리스, 이탈리아 등 남유럽에서 이민자를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외국에서 노동력을 수입하는 것보다 여성을 노동시장에 동참시키는 것이 더 나은 해결책”이란 목소리가 나오면서 여성 고용이 촉진되기 시작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올라가자 출산율은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동시에 가정과 일을 양립시킬 수 있는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그러자 스웨덴은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인 1974년 세계 최초로 ‘성 중립적’ 육아휴직 제도를 도입하고, 남녀 모두 여섯달의 육아휴직을 쓸 수 있도록 했다. 육아휴직 도입 초기 소득대체율(휴직 전 소득 대비 휴직 급여 비중)은 90%에 이르렀다. 이후 1980년대 들어 육아휴직 기간이 열두달까지 늘어나는 등 가족정책이 확대됐다. 이에 힘입어 합계출산율은 반등하기 시작해 1990년 2.14까지 올라갔다.



부모 둘 다 쓸 수 있는 육아휴직을 도입했지만, 제도 초기 남성 사용률은 높지 않았다. 1995년 부부 합산으로 쓸 수 있는 육아휴직 기간을 정하고, 이 중 한달씩은 특정 성별만 쓸 수 있도록 했다. 사실상 남성도 30일은 육아휴직에 들어가도록 만든 것이다. 이를 계기로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부모가 합쳐 480일의 육아휴직이 주어지고, 한 성별이 최소 90일 이상 사용하도록 했다. 전체 480일 중 390일은 사회보험으로 기존 소득의 약 77.6%를 보전해주고, 나머지 90일은 하루에 180크로나(2만3천원)가량을 지급한다. 올라 교수는 “남성도 육아휴직을 쓰기 때문에 고용주 입장에선 남성과 여성이 육아휴직을 사용할 가능성이 같아지면서 육아를 이유로 여성을 차별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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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는 여성이 출산 전 쓸 수 있는 4주간의 휴가와 부모 각자에게 24주씩 주어지는 휴직 기간을 합쳐 총 52주의 육아휴직을 보장한다. 육아휴직 기간은 부모가 서로에게 양도할 수 있지만, 2022년 8월부터 각각 11주는 양도할 수 없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따라서 아이를 둔 가정에서 남성이 11주의 육아휴직을 쓰지 않는다면 손해인 셈이다.



고용 형태와 사업장, 노조와의 단체협약 등에 따라 다르지만 덴마크는 휴직 전 소득의 80∼100%를 육아휴직 기간 지급한다. 덴마크도 최근 노동력 부족을 겪고 있어 기업이 인재 유치를 위해 경쟁적으로 관대한 가족 복지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이에 따라 소득 100%를 보전받으면서 유연하게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회사도 적지 않다.





“기업의 역할 중요…가족정책은 미래에 대한 투자”





제도를 아무리 촘촘하게 잘 짜더라도 실제로 사용하기 어려운 회사 분위기라면 무용지물이다. 한국이 그렇다. 우리나라는 육아휴직 기간 등 제도는 잘 설계돼 있지만 실제 사용률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안에서 하위권이다.



한국의 한국경영자총협회나 한국경제인협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덴마크 경영자단체 디에이(DA)와 노동조합총연맹인 에프에이치(FH)는 양쪽 다 기업이 직원들에게 가족 친화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전혀 없다.



이들의 관점으로 보면 가족정책 확대가 기업에 ‘손해’가 아니다. 경영자단체 디에이의 수석고문을 맡은 레아 페울리케 쇠렌센은 “덴마크에서 첫 아이를 낳는 평균 연령은 29∼30살이다. 이 시기는 직원의 경력에서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회사와 고용주가 경력을 유지해주지 못하고 무시한다면 오히려 전 연령대에서 적절한 인재를 고루 유지하지 못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적절한 육아휴직과 단축근무 등으로 직원들의 자녀 돌봄을 지원하지 않는다면 이들의 경력이 끊기게 되고, 회사는 다음에 더 우수한 인재가 될 수 있었던 직원을 잃게 돼 회사의 경쟁력도 떨어질 수 있다는 취지다. 이어 그는 “직장에 만족하는 직원들이 더 좋은 성과를 낸다. 좋은 직원을 원한다면 직원들이 행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에프에이치의 평등 정책 컨설턴트를 맡은 피 브레센도 “기업이 직장 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큰 책임이 따른다”며 “회사가 육아휴직을 장려하고, 경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덴마크는 육아휴직 급여 부담을 정부와 기업이 일정 부분 나눠 진다. 기업은 육아휴직 급여를 위한 기금을 만들어 전일제 직원 한명당 연간 207유로(약 30만6천원)를 납부하고 있다. 기업이 부담하는 급여의 절반은 이 기금에서 나온다. 즉, 직원 한명이 육아휴직을 갈 때마다 기업이 직원에게 줘야 하는 급여로 고심할 필요가 없단 뜻이다. 덴마크가 육아휴직 급여를 최대 100%까지 맞춰 줄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스웨덴도 휴직 전 소득의 80%까지 보장하는 육아휴직 급여를 기업과 노조의 단체협약으로 90% 이상 보장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는 기업이 많다. 올라 교수는 “이는 고용주만의 부담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책임”이라며 “사람과 미래 세대에 대한 투자로 봐야 한다. 세금을 통해 부모와 자녀를 지원하는 혜택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스톡홀름·코펜하겐/손지민 기자 sj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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