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16 (수)

[단독] 한강의 유일한 시집, 내년 3월 유럽에 첫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2016년 3월 열린 프랑스 파리도서전에서 진행된 ‘한국 여성작가의 목소리’ 행사에 참여한 한강(왼쪽에서 두번째) 작가와 최미경(맨 오른쪽) 번역가. 당시 오정희(가운데)·김애란(오른쪽에서 두번째) 작가도 참여했다. 연합뉴스


한강 작가의 유일한 시집이 노벨 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내년 3월 서구권에 첫선을 보일 예정이다. 그간 소설은 다수 소개됐으나, 시집은 일본어(2021) 외 번역된 적이 없다. 한강 소설의 “강렬한 시적 언어”를 치켜세운 스웨덴 한림원(노벨 문학분과위)도 한강의 진짜 시는 정작 본 적 없는 셈이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2013)는 한강 작가가 시로 먼저 등단하고서 20년 만에 낸 첫 시집이다. 시집이 이미 서구에 번역돼 있었다면 어땠을까. 한림원이 꼽은 한강 작가의 주요 작품 목록에 필시 포함됐을 거라는 게 시집 번역가 최미경(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교수)의 의견이다. 그는 한겨레에 “(시집이야말로) 한강 작가를 잘 표현하는 작품”이라고 했다. 2021년 8월 대산 번역지원 대상 선정 이후 시를 새 언어로 다듬어 온 최 번역가가 내년 출간 일정으로 시집에 붙인 제목은 ‘내 서랍에 넣은 저녁’(Soirs rangés dans mon tiroir)이다.



번역된 시를 받아 본 프랑스 출판사 그라세는 “시는 잘 출간하지 않는데 (한강의 시라서) 예외적으로 출판하겠다”(2023년 1월)면서도 ‘2025년 출간’을 잠정했을 뿐이다. 노벨 문학상 발표 직후인 10일 저녁(한국시각), 최 번역가에게 연락한 그라세의 용건은 이렇게 바뀌었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너무 기쁩니다. 시집 출판을 앞당기겠습니다. 바로 편집 작업에 들어가고자 해요. 노벨상 작가의 작품 번역을 맡아줘 감사합니다.”



14~15일 번역가 최미경과 이메일과 전화로 나눈 일문일답이다.



한겨레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인 최미경 번역가.


―한강 작가와 인사는 나누셨나요?



“축하 메일만 드렸습니다. 시집 번역본이 예정보다 빨리 출간될 거라고도 알려드렸고요. 언젠가 한국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을 거라 생각은 했는데, 그 순간이 일찍 와서 정말 기쁩니다. 역대 어떤 작가보다 값집니다.”



―심사위원들이 한강의 ‘시적 언어’를 봤을망정, 시를 본 적은 없겠습니다.



“한강 작가에겐 시적 작품과 역사·개인적 고통을 승화시키는 글쓰기의 작품 두 가지 경향이 있습니다. 그중 전 시적 작품을 좋아합니다. 작가의 소설보다 시가 더 와 닿는 게 많습니다. 프랑스는 소설 선호도가 강해 시를 소개하기에 조금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도 시적 글쓰기가 작가의 중요한 특성이라 꼭 소개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서구권에 한강의 작품을 최초로 소개한 번역가이기도 하다. 2011년 번역 기획한 앤솔로지 ‘한국 여성문학 단편선’에 한강의 단편 ‘해질녘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등을 포함하면서다. 이 작품은 노벨상 누리집 속 한강 이력에 언급돼 있다. 2014년 두번째 소개된 ‘한국문학 단편선’을 두고 2008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르 클레지오(84·프랑스)는 현지 일간지 ‘르 피가로’에 특별 기고해 “한강을 비롯한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단편집을 서둘러 읽을 것을 권”하기도 했다. 최 번역가는 특히 “단편선 중 한강의 ‘아홉 개의 이야기’는 자체로 시”라고 말한다.



최 번역가는 프랑스에서 현대문학과 통번역 박사학위를 각기 취득한 한-불 문학번역 전문가로, 2004년 페미나상에 입후보한 황석영 작가, 한국인 최초로 갈리마르사의 ‘폴리오’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된 이승우 작가의 불역 작품 대부분을 맡았다. 소설과 달리 그를 매료시킨 한강의 시는 암막 속 “시의 음악성, 한글의 서정성”까지 ‘활상’(미끄러지듯 비행)시켜야 했다. 출발어와 도착어의 은밀하고 살갑고, 그러나 날카로운 대화랄까.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장노엘 쥬테가 감수자로서 함께 공역하는 과정과 닮았다.



―시와 소설 번역은 다를 수밖에 없겠습니다.



“한국 시의 서사 방식과 달리 서구 시는 화자 중심입니다. 수동적으로 언어적 대응체를 만들기 위한 번역이 아닌, 더 과감하고 창의적 방식이 채택되면 좋겠어요. 한국 문학의 염원이 이뤄졌지만, 문학도, 번역도 계속돼야 합니다. 한국엔 훌륭한 작가가 많습니다. 단, 번역을 거치지 않고 한국 문학은 전달되지 않지요.”



―시집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개인적으로 작가의 시집, 시적 작품을 더 선호하는데, 그중에서도 ‘날개’야말로 작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작품 쓰기 전의 감정, 발전시키는 과정이 어땠을까 가늠돼 크게 감동했어요. 그 감수성을 전달할 수 있는 시적 글쓰기가 저의 번역이 되도록 시도했습니다.”



“그 고속도로의 번호는 모른다/ 아이오와에서 시카고로 가는 큰길 가장자리에/ 새 한 마리가 죽어 있다/ 바람이 불 때/ 거대한 차가 천둥 소리를 내며 지나칠 때/ 잎사귀 같은 날개가 조용히 펄럭인다/ 십 마일쯤 더 가서/ 내가 탄 버스가 비에 젖기 시작한다// 그 날개가 젖는다”(‘날개’)



시집은 한강의 이전과 이후 소설에 대한 각주나 전조가 되곤 한다. 서랍에 넣어둔, 투명한 고통의 ‘저녁’은 어떻게 소설에서 펼쳐지는가. 최 번역가는 “시집이 어쩌면 소설적 글쓰기를 더 잘 조명할 것”이라고 말한다. 한강 작가는 “시의 상태에 가까워져 소설 전체를 생생한 감각으로 훑고 지나”간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하여, 한강의 노벨 문학상은 맞되, 한강의 시를 뺀 노벨 문학상은 틀렸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행운을 높이는 오늘의 운세, 타로, 메뉴 추천 [확인하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