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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 (월)

수리할 권리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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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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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세번째 토요일인 19일은 ‘국제 수리의 날’이었다. 전기·전자 제품을 쉽게 수리할 수 있는 세계를 지향하는 국제 연합체인 ‘열린수리연맹’이 수리할 권리(Right to Repair)에 대한 인식 증진을 목적으로 2017년 지정한 날이다.



수리할 권리는 소비자가 필요한 경우 제품을 직접 수리하거나 제조업체가 아닌 제3의 업체에 수리를 맡길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다. 그러나 이 권리는 자신이 제공하는 수리 서비스만 사용하라는 제조업체의 요구, 수리 자체가 어렵도록 한 설계, 수리에 필요한 도구와 부품의 공급 제한 등과 같은 여러 제약 요소 때문에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제조업체들은 판매를 늘리기 위해 제품을 설계할 때 이른바 ‘계획적 노후화’라는 전략을 적용하기도 한다. 특정 부분에 내구성이 약한 소재를 사용해 수명이 줄어들게 하거나, 고장이 났을 때 수리하는 것을 어렵고 비싸게 만들어 소비자들이 더 일찍 새 제품을 찾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런 전략은 1920년대 지이(GE), 필립스 등 전구 제조업체들이 1천시간 이상의 장수명 전구를 만들 수 있는데도 수명이 1천시간을 넘지 않게 만들어 매출을 늘린 것이 드러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는 결국 폐기물을 늘려 환경오염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선진국에서는 소비자들에게 수리할 권리를 보장해 전자제품을 버리고 다시 사기보다 수리해 쓰는 것을 촉진하려는 입법화가 활발히 전개됐다. 특히 유럽연합은 2020년 수리할 권리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순환경제행동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올해 5월에는 ‘수리할 권리 지침’(R2RD)을 채택했다.



이 지침에는 제조업체들이 제3자가 수리한 이력이 있다는 이유로 소비자들의 수리 요청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까지 들어 있다.



국내에서는 2022년 12월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 전면 개정 때 순환경제사회 전환을 촉진할 기본 원칙의 하나로 ‘수리’라는 개념이 처음 들어갔다. 이 개념을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최근 입법 예고된 시행령을 보면, 제조업체에 제품을 설계할 때 수리 용이성을 고려하고, 소비자에게 자가 수리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라는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하지만 이런 규정 준수가 제조업체에 법상 권고사항일 뿐이어서 실효성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의무사항으로 강화하는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수 편집부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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