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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 (월)

아이는 혼자 크지 않는다…엄마·아이 ‘행복한 공적 돌봄’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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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2018년 스웨덴 스톡홀름 시내의 한 카페 앞에서 유모차를 끌고 나온 아빠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연수기자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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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하 출생률, TFR)로 세계에서 가장 낮다. 출생률은 자살률, 산재 사망률, 노인 빈곤율 등과 함께 한국 사회를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가장 불편한 지표 가운데 하나다. 출생률 순위를 갖고서 애를 낳고 키우기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회라 말할 수 없지만, 그러기에 좋은 사회가 아님은 분명하다.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주로 맡은 연령대를 대상으로 한겨레가 여론조사 전문업체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조사(지난달 10~13일, 전국 19~44살 성인 남녀 1천명)에서도 무려 87.6%가 우리나라는 ‘애 낳고 키우기 힘든 사회’라고 답했다. 여성은 그 비율이 91%가 넘는다.



애 낳고 키우기 힘든 사회는 부모나 아이, 아니 공동체 많은 구성원이 살기에도 팍팍한 곳이다. 같은 조사에서 ‘우리 사회가 살기 좋지 않다’는 응답이 65.6%로 나타난 데서도 알 수 있다.



20대 후반 여성 김아무개씨는 20일 한겨레에 혹 결혼은 하더라도 애 낳을 계획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주변 친구들도 다 마찬가지 생각이라고 한다. 몇살 위의 사촌 언니도 결혼은 했지만 출산 계획은 없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애를 어떻게 낳나?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애를 키울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한다면, 그때 가서 생각해볼 것 같다.” 김씨의 말은 나라에서 다 해주면 애 낳겠다는 뜻이 아니라, 현재 자신의 삶마저 불안하고 불확실하니 새로운 생명까지 책임질 엄두도 낼 수 없다는 쪽에 방점이 찍혀 있다.



우리가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처럼 ‘살기 좋지 않은’ 사회는 출산 의향을 낮추고 실제 초저출생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성찰 없이 단순히 출생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출산 장려 정책’ 수준의 접근이 성공할 수 없음을 말해준다.



오는 24일 ‘저출생 축소사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주제로 열리는 제15회 아시아미래포럼(주최 한겨레)은 그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다. 이날 연사와 토론자로 참석하는 전문가들로부터 어떻게 해야 미래 세대를 길러내기에 좋은 사회가 될지 미리 들어봤다.



“한국은 엄마와 자녀가 모두 불행하다. 엄마가 일해도 엄마와 아이 둘 다 행복할 수 있다면 여성이 출산을 기피할 이유가 준다. 그런데 워킹맘(일하는 엄마)은 ‘나쁜 엄마’라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워킹맘의 자녀는 불쌍하다는 편견이 있다. 질 낮은 장시간 돌봄이 주된 원인이다.”



백경흔 이화여대 여성학과 강사는 이렇게 말하면서 ‘아동 돌봄 제도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주문했다. 그는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시장의 적극적 차별 시정 조치도 필요하지만, 아동 돌봄을 엄마가 직접 못하니 대신 돌봐주는 서비스라는 접근법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시민인 아동의 ‘돌봄권’을 보장”하는 게 필요하다고 봤다.



그 모범 사례로 덴마크를 꼽았다. 이 나라는 아동 돌봄을 전문적인 일자리(페다고그)로 제도화해 운영한다. 아이를 믿고 맡긴 채 부모가 일할 수 있는 양질의 공적 아동 돌봄 체계는 덴마크를 아이와 엄마, 둘 다 행복한 나라로 만들었다. 덴마크에서는 15살 미만 자녀를 한명 이상 둔 유자녀 여성 고용률이 81.7%(그중 열에 아홉이 전일제, 한국은 56.2%)에 이르는 것도 이런 공적 돌봄 체계의 뒷받침이 있어서 가능하다.



또한 직장에서도 성별 임금 격차가 5.6%(한국은 31.2%)에 불과할 만큼 차별이 적다. 실제 거의 모든 노동자가 주당 37시간 안으로 일하면서 주중 오후 3시30분쯤 퇴근한다. 일을 마친 뒤 돌봄 기관에서 부모 가운데 어느 하나가 아이를 데리고 귀가할 수 있는 시간대이자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조건이다. 이런 환경에서 덴마크의 출생률도 선진국 가운데 비교적으로 높은 1.72(2021년 기준)를 기록할 수 있었다.



한겨레

육아 친구를 짝짓기(매칭)해주는 앱 ‘육아크루’를 통해 만나게 된 서울시 송파구의 엄마들. 사진 육아크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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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실에서는 먼 이야기다. 지난달 한겨레 조사에서 ‘일과 삶의 균형이 잘 이뤄지는 편’이라는 응답은 전체의 30.8%에 그쳤다.



송다영 인천대 교수(사회복지학)도 저출생 해법으로 무엇보다 일과 가족이 양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여성들은 출산과 양육으로 자신들의 경력이 단절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혼자서 ‘독박 육아’를 해야 하는 상황도 더는 감내하지 않으려 한다. 육아휴직이나 유연근무제 등이 일상화되는 것이 중요하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노동시장에서 성별 임금 격차가 줄어야 한다. 그래야 일하는 사람이 성별과 관계없이 누구나 일·가족 양립 제도를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다.”



실제 다른 선진국 여성들만큼이나 한국의 여성들도 출산 뒤 계속해서 일하고 싶어 한다. 여성의 83.4%(위 한겨레 조사)가 ‘아이를 낳고 난 후에도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답했다. 하지만 일·가족 양립이 어려운 환경에서 출산 뒤 거의 절반 가까이가 한동안 직장에 복귀하지 못한다. 이러한 현실은 여성들로 하여금 출산을 기피하게 만든다.



물론 공적 돌봄 체계를 잘 갖춰서 일·가정 양립을 위한 형식적 조건을 갖춘다 하더라도 가정에서 남성의 참여가 없다면 돌봄은 오롯이 여성의 몫이 된다. 이 때문에 신경아 한림대 교수(사회학)는 남성의 돌봄 참여를 강조했다. 그는 저출생 해법을 묻는 말에 여성의 고용률을 높이고 성별 임금 격차를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성의 돌봄(육아) 참여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와 남성의 돌봄 참여 확대를 맞물려 돌아가는 두개의 ‘톱니바퀴’로 비유했다.



특히 일터에서 출산과 육아로 인한 ‘모성 페널티(불이익)’를 해소해야 출산에 대한 여성의 부정적 인식을 바꿔나갈 수 있다고 봤다. 결국 가정과 노동시장, 양쪽에서 성평등 수준이 지금보다 더 높아져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정작 지난 6월19일 ‘인구 국가비상사태’ 선언과 함께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에 성평등 목표와 비전이 실종됐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구체적인 성평등 정책과제 제시 없이 일과 가정의 양립, 양육, 주거 등 3대 핵심 분야 지원 대책만을 나열했다는 것이다.



성평등 관점이 빠진 저출생 대책은 ‘반쪽짜리’다. 여성이 우리 사회에서 느끼는 압박감과 불안감은 남성보다 훨씬 크다. 이는 상대적으로 남성보다 낮은 출산과 결혼 의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겨레 조사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16.9%포인트나 적은 48.5%만이 출산 의향을 보였다. 정책을 만들 때 이런 성별(젠더) 격차를 고려하지 않고선 제대로 효과를 낼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김현미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주문했다. “한국의 저출생 위기는 양육과 돌봄 노동을 여성의 일로만 치부하고 낮게 평가해온 ‘돌봄 가치의 전반적 위기’이기도 하다. 모든 개인은 성별에 상관없이 노동자-돌봄자-참여적 시민이라는 다중적 정체성과 역할을 가진다는 점에서 평등한 존재임을 강조하는 사회 변화가 필요하다.” 이어 그는 현 정부가 내놓은 저출생 대책의 한계도 짚었다. “정책 대상에서 많은 비정규 노동자를 배제하고, 출산과 양육의 책임을 결혼한 여성에게 묻는다.”



그는 또 사회 변화를 위한 인식과 문화를 넘어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국에서 가족 돌봄자에 대한 직장 내 차별(FRD) 금지가 도입된 것처럼 한국에서도 노동시장에서 임신한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아이를 양육하거나 연로한 부모나 가족을 돌보는 근로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나 해고, 괴롭힘을 막는 법안이 도입되어야 한다.”



일과 가정의 양립, 직장과 가정에서 성평등 확대와 함께 기본적으로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청년의 일자리 안정성도 저출생 해법에 중요한 요소로 꼽혔다. 최혜지 서울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젊은 세대가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저출생의 주요한 원인”이라며 사회보호 강화와 함께 노동 불안정성을 축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낸 정현백 성균관대 명예교수도 마찬가지로 일자리의 안정성을 강조했다.



저출생 현상의 계급성에 주목해, 이를 고려한 아동 돌봄의 공공성 강화를 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 중상층의 출산율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이들의 정치적 목소리와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정책 또한 이 그룹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저소득층의 출산율은 아주 낮고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이 계층의 출산율 하락 추세가 전반적인 하락을 추동한다. 육아와 보육 비용이 이 그룹에서 낮은 출산율의 가장 큰 원인이다. 그만큼 공공 보육시설 확대의 유인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그가 제안한 획기적인 공공 보육 확대가 인프라 구축이라고 한다면, 백경흔 이화여대 강사가 말한 아동의 돌봄권 보장 아래 전문적인 돌봄 일자리의 제도화는 인프라를 채우는 내용과 방향이라 할 수 있다.



류이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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