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흔드는 폭염 후폭풍
“가을이 제철인데 전어 물량이 없어요.”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에서 20년째 도매업을 하는 이모씨는 전어 물량이 지난해보다 3분의 1로 줄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작년만 해도 전어 도매가격(활어 기준)이 1㎏에 1만원대였는데 지금은 3만~4만원까지 치솟았다”며 “구하기도 어렵고 가격 때문에 판매도 쉽지 않아 형식적으로 갖다 놓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올여름 발생한 기록적인 폭염 여파가 가을 밥상물가를 흔들고 있다. 고수온에 수산물 수급에 비상이 걸리면서 수산물 가격이 급등하는 ‘피시플레이션(fish+inflation)’이 나타나고 있다. 제주도에선 폭염으로 인해 노지 감귤 작황 피해가 대거 발생하면서 올겨울 감귤 대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0일 수협노량진수산에 따르면 전어·꽃게 등 가을 제철 식재료 가격이 급등했다. 10월 2주차(7~12일) 기준 전어(1㎏) 평균 도매가격은 1만7600원으로 1년 전(6200원)보다 183.9% 올랐다. 9~10월이 철인 수꽃게(1㎏)는 2만1600원으로 전년(7800원) 대비 176.9% 상승했다.
일부 대형마트는 전어회 판매를 포기했다. 롯데마트는 전어값 폭등을 이유로 올해 전어회를 팔지 않기로 했다. 전산상 판매 여부가 확인되는 2015년 이후 1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이마트는 전어 판매량을 절반으로 줄였고, 홈플러스는 구이용만 판매한다.
수산물 가격이 오른 건 어획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전어는 14~27도 수온대에서 서식하는데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8월 평균 해수면 온도는 28.3도를 기록할 정도로 달아올랐다. 국립수산과학원 집계에 따르면 올 8월 전어 어획량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13% 감소한 896t에 그쳤다.
꽃게도 마찬가지다. 앞서 국립수산과학원은 서해 연안의 이례적인 고수온 영향으로 어장이 작년보다 넓게 분산돼 조업 효율이 떨어져 가을 꽃게 어획량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수협중앙회에 따르면 지난달 꽃게 위판량은 2707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152t보다 약 47.5% 감소했다.
과일도 여전히 폭염 후폭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과·배 가격은 다소 진정됐지만, 감귤 농사에 비상이 걸렸다. 10월부터 하우스 감귤 철이 끝나고 노지(밭에서 키운 감귤) 감귤 철이 시작되는데 폭염에 감귤 열매가 터지는 ‘열과 피해’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제주 서귀포시에서 2대째 감귤 농사를 짓는 오명석(44)씨는 “8~9월 날씨가 너무 덥다 보니 귤이 터져서 수확량이 지난해보다 40% 줄었다. 날이 선선해야 색이 노랗게 드는데 무더위가 이어져 동남아 귤처럼 초록색이라 상품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문대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제주 지역 노지 감귤 열과 피해율은 23.3%에 달한다. 지난해 8.2%의 2.8배다. 7~9월 제주 폭염일수가 21.4일로 전년(6.6일) 대비 14.8일 많았고 열대야도 63.3일로 25.8일 증가한 여파로 풀이된다. 유통업계에선 연말까지 감귤 가격이 전년 대비 20∼30% 비쌀 것으로 전망한다.
전문가들은 이상 기온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기후플레이션’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바다 수온이 오르면서 국민 횟감인 광어 생산량은 ▶2022년 3635t ▶2023년 3499t ▶올해 3400t(추정)으로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지난달에는 고수온을 견디지 못해 폐사한 어린 광어가 급증하면서 250g 미만 광어 생산량이 작년 같은 달보다 35.6% 줄었다. 우럭도 대량 폐사 영향으로 작년 동기(1010t)보다 적은 1000t가량 생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종=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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