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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 (화)

30년 지나도 깊은 슬픔… “참사에도 안전 불감증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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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 붕괴 30주기 합동 위령제

조선일보

21일 오전 서울 성동구 성수대교 위령탑 앞에서 성수대교 붕괴 사고 30주기 합동 위령제가 열렸다. 유족 등이 묵념하고 있다. /전기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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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40분쯤 서울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잇는 성수대교의 북단 다섯째와 여섯째 교각 사이 상판 50여 m가 갑자기 내려앉으면서 다리를 지나던 서울 5사8909 한성운수 16번 시내버스 등 차량 6대가 20여 m 아래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등교 중이던 무학여중·고 학생 9명을 비롯 32명이 희생됐다.

가족을 잃은 슬픔은 30년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21일 오전 11시 성수대교 북단 나들목 인근 위령비에서 참사 30주기 합동 위령제가 열렸다. 유가족 대표 김학윤(57)씨는 추모사에서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남동생, 여동생들은 평상시와 다름없는 출근과 등교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희생자 32명 이름이 호명될 때, 40여 명 청중석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춥고 어두운 땅 밑에 누워/ 하얗게 사위어가는 당신이/ 지금은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당신이// 살아있는 이들보다/ 더 깊고 맑은/ 영혼의 말을 건네주십니다.” 무학여고 학생회장 김민윤(17)양은 이해인 수녀의 ‘가신 이에게’를 낭독했다. 김양이 “무학여중·고 선배님을 포함한 모든 희생자와 가족들께 추모의 마음을 담아 이 시를 드립니다”라고 하자 당시 김양 또래였던 자녀·언니·동생을 잃은 유가족들은 또 한 번 오열했다.

부실 공사와 당국의 방치가 빚은 성수대교 참사가 30년 전 한국 사회에 준 충격은 엄청났다. 본지는 1994년 10월 22일 자에서 “나라가 이 지경… 서울이 부끄럽다”라는 제목으로 참사를 보도했다. 사고 당일 저녁 관선(官選) 서울시장이 경질됐고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명했다. 그럼에도 안전 불감증이라는 유령은 한국 사회를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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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21일성수대교가 붕괴된 모습. 이 사고로 시내버스 등 차량 6대가 추락해 무학여중·고 학생 9명 등 32명이 숨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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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윤씨는 추모사에서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1997년 대한항공 801편 추락사고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2014년 세월호 침몰 등을 열거하며 “온 국민이 안전 요원이 따로 없고 우리 모두가 안전 요원이라는 생각으로 안전 불감증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다시는 대한민국에서 이 같은 비극적 참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유가족들의 단 한 가지 소원”이라고 했다.

유가족들은 30년 전 이날을 떠올리며 작별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가족을 그리워했다. 김양수(64) 성수대교 붕괴 사고 유가족회장은 사고 당시 막냇동생 광수씨를 잃었다. 광수씨는 당시 회계사 1차 시험에 합격하고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한 뒤 마지막 출근을 하다가 참변을 당했다. 1994년 10월 22일에 만나자던 형제의 약속은 영원히 이루지 못할 꿈이 됐다.

김학윤씨는 세 살 터울 형 김중식씨를 잃었다. 중식씨는 사당동에서 성수동으로 출근하기 위해 한성운수 16번 버스를 타고 성수대교를 지나는 중이었다. 학윤씨는 여전히 형의 사진을 들고 다니고 있다. 최진영(57)씨는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 최정환씨를 잃었다. 진영씨는 강남에서 성북구 안암동으로 매일 성수대교를 타고 출근하던 아버지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병원 영안실을 뒤지며 ‘제발 아니어라’ ‘아닐 거야’라고 했던 그때가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참사 3년 뒤인 1997년 10월 21일 서울시가 희생자 명복을 빌기 위해 성수대교 북단 나들목에 위령비를 세웠다. ‘분하고 원통할셔. 비명에 가신 이들 애닯다. 부실했던 양심 탓이로다’ 등 문구가 새겨졌다. 2013년엔 부끄러운 기억을 보존하자는 취지로 서울 미래 유산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자동차 전용 도로인 강변북로 사이 외딴섬이나 다름없는 곳에 사실상 방치돼 있어 대중교통이나 도보로는 접근하기가 어렵다. 주차장에 차량을 두고 접근할 수 있지만 이 과정에서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다. 그간 인근 서울숲으로 위령비를 옮겨 성수대교 참사를 기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서울숲을 운영하는 서울시 동부공원여가센터 등이 난색을 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위령제에 참석한 박주경 한국시설안전협회 명예회장은 “성수대교 위령탑이 미래 세대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도록 접근을 용이하게 하거나 이전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고 했다.

[김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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