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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 (화)

“지역·공공의료 열악함 공감대 바탕해 의사증원 풀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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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백남순 경기도의료원 포천병원 병원장이 14일 오후 경기 포천시 신읍동 포천병원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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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료개혁에 반발해 사직서를 집단 제출한 지 20일로 8개월을 넘겼다. 의대 2천명 증원(내년 1509명) 등을 두고 정부와 의료계는 여전히 큰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대신 환자와 시민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의료 공백이 하염없이 길어지는 상황에서 의료계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을 만나 의-정 갈등을 풀고 의료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방안을 들어봤다.





지난 14일 오후 2시 경기도의료원 포천병원은 진료를 받으려는 30여 명의 환자들로 북적였다. 대부분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들이다. 포천병원은 이들이 아픈 몸을 이끌고 다른 지역의 병원을 헤매지 않도록 포천의 지역·공공 의료를 책임지고 있다. 8개월째 지속되는 의-정 갈등의 여파는 지방의료원까지 덮쳤다. 백남순 포천병원장은 “정부가 지역의료와 공공병원 문제라도 해결하자 제안하는 것”만이 의-정 갈등을 풀 수 있는 열쇠라고 말했다. 지역·공공 의료의 열악한 환경은 의사와 정부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백 원장은 전문의 수련 후 장학금을 받은 기간만큼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에서 근무하는 ‘공중보건장학생’으로 포천병원과 인연을 맺었다. 포천병원에 근무한 지는 21년, 원장이 된 지는 6년이다. 다음은 백 원장과의 일문일답.



―의료 공백이 발생한 지난 8개월 동안 지방의료원의 상황은 어땠나?



“지방의료원은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수련병원이 아니기 때문에 큰 상관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생각보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이 많이 불안해한다. 실제로 떠난 의사도 2명 있다. 우리 같은 2차 병원은 환자의 질병이 어느 수준을 넘어가면 더 큰 병원으로 빨리 이송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중증질환자를 빨리 전원받아 해결해줄 수 있는, 뒤에서 버텨주는 큰 병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버텨주는 역할을 하던 병원들이 지금 붕괴되고 있다.”



―의료 공백 사태의 출발점이 된 의대 ‘2천명 증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솔직하게 처음에는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굉장히 찬성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밀어붙이기 식의, 대화와 소통을 단절하고 한 치의 물러섬이 없는 방식의 의료 행정은 어느 누가 봐도 동의할 수 없을 거다. 행정을 이렇게 전쟁처럼 하면 안 된다. 또한 늘어난 의사들이 어디서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지금은 ‘고령화가 됐으니 필요하다’ 이런 설명밖에 없다. 늘어난 의사들이 성형만 한다면 왜 더 필요하겠나. 늘어난 인력에 대한 계획이 빠져 있다.”



―정부가 ‘의대 증원’ 외에도 여러 의료개혁을 발표했다. 이를 전반적으로 평가한다면?



“현 정부 정책은 지역의료와 공공병원을 말장난처럼 끼워넣기 하는 수준이고, 대부분은 큰 상급종합병원을 키우는 쪽에 맞춰져 있다. 권역책임의료기관에 인프라와 인력을 주고 권한까지 위임하겠단 내용이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의 핵심인데, 지역 상급종합병원 의사를 더 늘리는 게 지역의료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 지역 공공병원에 의사 인력이 들어가야 대학병원으로 환자도 보내고, 대학병원에 과도하게 환자가 쏠리지도 않는다. 지역 공공병원이 바로 서야 지역의 대학병원도 바로 선다. 그게 지역의 필수 의료 강화다.”



―의료개혁에 포함된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상급종합병원의 외래진료는 축소해야 한다. 지금 인턴·레지던트는 실제 시술보단 시술 설명 등 거기에 필요한 행정업무를 하고 있다. ‘수술 끝나고 상처 드레싱(해주세요)’, ‘밤에 문제 있으면 해열제 주세요’. 이런 게 업무의 90%다. 외래만 없어져도 대학병원에서 인턴은 필요없다. 상급종합병원의 인턴제도를 폐지하고, 대신 인턴 인력은 지역 병원에서 트레이닝하자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나왔다. 지역에서 먼저 진료하고, 해결이 불가능한 환자들을 받아주는 것이 상급종합병원의 외래 기능이어야 한다. 경증 수술을 축소하는 동시에 지역에서 보내는 중증환자를 맡는 것이 상급종합병원의 역할이다. 이런 전제조건으로 정부에서 지원을 하는 건 찬성이다.”



―정부가 수가 인상 등 의료계 숙원을 담은 당근도 내놨다. 그럼에도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을 정도로 ‘2천명 증원’이 중요한 문제인가?



“의대 증원으로 밥그릇이 뺏길 수도 있다는 전공의들의 우려에 공감한다. 특히 필수의료를 전공하는 배경엔 필수의료가 ‘블루칩’이라는 이유도 있다. 전공하려는 사람이 적어 힘들지만 버티면, 몇년 뒤엔 내 가치가 올라갈 것이란 기대감이다. 그 기대감이 깨졌기 때문에 필수의료 종사자들이 이탈했다고 본다.”



―‘의사 수’는 부족하지 않고 ‘배분’이 문제라는 주장도 있는데?



“의사 인력을 재분배하겠다고 하면 증원보다 더 큰 문제가 될 거다. 말처럼 쉽지 않다. 의사가 부족한 곳은 지방이다. 지방에서도 의원급이 아니라 중간 규모 이상의 병원에 의사 수가 부족하다. 연봉을 올려 의사를 구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개원을 막는 건 헌법적인 문제가 있다. 포천병원엔 재활의학과 의사가 없다. 포천에도 없고 연천, 동두천, 가평, 철원까지 없다. 그래서 수도권의 상급종합병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받아 2명을 1년간 파견받기로 했다. 파견오기로 한 사람들과 계약을 맺으려 하니 다들 그만두더라. 다 사직하고 개원가로 갔다. 의사들도 생명과 직결된 의료, 특히 지역의 공공병원에 의사 인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그곳에 가는 걸 동의 못 하는거다. 다들 가기 싫어하는 곳에 의사를 보내려면 지원도 필요하지만 숫자도 늘어야 한다.”



―그럼 의-정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지역의료와 공공병원 문제라도 해결해보자고 제안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병원이 산부인과 분만실을 운영하는데, 1년 365일 의사 혼자서 맡고 있다. 이번 추석 연휴에도 분만을 2건 받았다. 이렇게 365일 병원에 붙어 있어야 하는 의사를 보면 ‘정말 의사가 모자라긴 모자라는구나’ 이런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 지역·공공 의료를 위한 최소한의 의사 풀(pool)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풀어야 한다. 지역은 의사 구인난이 너무 심각하다.”



손지민 기자 sj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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