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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 (화)

가난에도 향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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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임락경 목사. 사진 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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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설날 널뛰기하면서 부른 노래다. 80세 생일을 맞이한다. 그냥 기쁜 날이다. 내 할아버지는 33세에 돌아가셨다 한다. 아버지가 아홉 살 되던 해란다. 밑으로 내 고모님인 여동생 두 분을 두고 가셨다. 아버님은 수시로 말씀하셨다. 아홉 살 때 쟁기질을 하셨는데, 쟁기를 지고 가실 힘이 없으셔서 큰집 머슴이 져다주셔서 쟁기질을 하셨다고 하신다. 나는 16세 때 쟁기질을 했다.



할머니는 77세에 돌아가셨다. 그 당시 오래 사신 나이셨다. 내 어머님은 64세에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77세까지 사셨다. 그 당시 마을에서 제일 오래 사셨다. 형님께서는 65세에 가셨고, 누님 두 분도 90세 넘도록 사셨고, 지난해(2023년) 형수씨는 87세에 가셨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고모님 두 분 가운데 작은고모님이 겨우 97세에 돌아가시고, 큰고모님은 104세에 돌아가셨다.



생일 이야기하련다. 내가 어릴 적에는 3×7일 잔치, 100일 잔치, 돌잔치 있었으나 가난해서 해주셨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기억이 날 때는 생일이라는 것 모르고 지났다. 집안 형편이 가난해서 할머니 생일도 아버지 생일도 못 차렸다. 내 생일 날은 아버지께서 “오늘 락경 생일이니 꾸지람을 하거나 혹 때릴 일이 있어도 생일이니까 때리지 말라”는 말씀이 내 생일이었다. 어느 때인지 생일날 어머니께 “생일이니까 부치기 한 장만 부쳐주세요” 말씀드렸더니, “기름 냄새가 나면 기름 냄새가 퍼져 맡는 집까지 나누어 먹어야 한다. 우리가 그럴 형편이 안 되니 이틀만 참아라. 열나흗날 집집마다 부칠 때 같이 부치자” 하셨다. 그날이 음력 8월 12일 추석 3일 전이었다.



군대 가기 전 동광원에서 지냈다. 폐결핵 환자들과 미국에서 원조물자로 온 강냉이죽을 먹고 지냈다. 군에 가기 전날까지 강냉이 먹다가 군에 가서 드디어 보리쌀 섞인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군에서 병장 때 처음으로 생일상을 맞이했다. 제대 후 또다시 폐결핵 환자들과 생활했고, 70년대에는 실직자들이 우리집을 차지하면서 살았다. 1984년이었다. 신발 살 돈이 없어 구멍 난 구두를 석 달을 신고 다녔다. 구두가 구멍이 나니 양말을 신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양말은 가지고 다녔다. 예의를 갖출 장소에서는 양말을 신어야 한다. 어쩌다 돈 만원이 생겼다. 이 돈으로 구두를 사 신을 수 있었다. 그날이 내 생일이었다. 구두를 사는데, 아침에 사는 것보다는 저녁에 사는 편이 더 이익이다. 저녁 때 구두를 사면 신발이 떨어질 때 하루를 더 신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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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사랑방교회. 사진 정읍사랑방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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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자취생활하고 있는 여공 집을 찾아갔다. “어떡하나, 돈도 없고 쌀도 없는데?” “오늘이 내 생일이다.” “그런데 어떡하지요? 식은 밥 한 그릇 있는데…. 콩나물 200원어치만 사면 되는데….” 나더러 200원 있으면 주라는 뜻이다. 나에게 1만원이 있으나 안 주고 있으니 이웃집에서 라면 한 개를 빌려온다. 물 많이 붓고 끓여서 한 그릇씩 나누고 식은 밥 반으로 나누어 먹으면서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축하받으면서 생일을 보냈다. 그리고 떠날 때 거금 1만원을 빌려주고 후에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는 기억을 못한다. 아무튼 며칠을 굶지 않고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구멍 난 구두를 1개월 더 신고 다녔다. 나중에 구두를 어떻게 샀느냐고? 구멍 난 구두라서 양말을 신을 수가 없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 어른들 만나면 신고 다녔다. 그러나 동료 목사들이나 후배들 있을 때는 그냥 맨발로 구두 신고 다녔다. 총회 목사들 모임에서 총회장께서 “목사가 되면 복장도 갖추어야지 심지어 우리 교단에 맨발로 다니는 목사가 있다더라” 하시면서 나를 주시해 보신다. 나는 다른 동료 목사들을 둘러본다. 누가 일러바쳤는지 안색으로 찾아내야 한다. 얼마 후 총회 수련회 때 내가 설교할 기회가 있었다. 설교 제목은 ‘다른 신을 두지 말라’였다. 구멍 난 구두, 양말 못 신은 이유, 구두 살 값이 있었는데 굶고 있는 여공에게 주고 또다시 맨발의 연속이었던 사연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임 목사 양말 신고 다녀!” 했으면 내가 구멍 난 구두 보여주었을 텐데, 왜 비겁하게 총회장에게 먼저 일러바쳤느냐 하면서 짐작이 가는 목사를 보니 역시 얼굴색이 변하면서 고개를 숙인다. 그 수련회 장소에 돈 많은 과부 전도사가 있었다. 남편이 죽고 유품이 아까워 쓰레기장에 버릴 수는 없고 아껴두었으나 필요는 없고, 오늘 설교를 듣다 보니 “이처럼 소중하게 신을 수 있는 목사님이 계시니 기쁜 마음으로 드리겠다”고 하면서 나를 집으로 데려갔다. 나는 구두 세 켤레를 얻어와 다른 장로들과 나누어 신었다. 이 같은 문제를 눈이 내리기 전에 다 해결했다.



며칠 전 캐나다에 있는 막내딸이 내 신발 크기를 물어온다. 문자로 가르쳐주었다. 지금은 내 신발이 여러 켤레다. 이처럼 비참하고 우습고 슬프고 기뻤던 생일을 환갑 때 한 번 크게 차렸다. 70세 생일은 일곱 번 나누어 차렸다. 올해 80세 생일은 강원도와 전라도서 더 크게 차렸다. 죽기 전에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모두 만났다.



임락경(전북 정읍·강원 화천 사랑방교회 목사)



***이 시리즈는 전남 순천 사랑어린마을공동체 촌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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