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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 (화)

북한 'GP 폭파' 제대로 검증 못했는데…文정부 "불능화"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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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 남북 군사합의 후속 조치로 실시된 북한의 감시초소(GP) 철거 검증이 부실하게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철거된 10개 GP의 지하시설 전체에 ‘불능화 추정’ 또는 ‘식별제한’을 기재한 당시 검증단 보고서가 공개되면서다. 북한의 비협조적 태도에 검증단이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리며 이 같은 내용을 보고했음에도 당시 문재인 정부는 불능화가 달성됐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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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0일 북한이 시범철수 대상 GP 폭파 장면에 나선 모습. 지하갱도를 따라 산등성이 80m 길이 구간 폭파가 목격됐다. [국방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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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국회 국방위원회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실이 입수한 '북한 파괴 GP 검증 보고서'에 따르면 10개 GP 지하시설 중 불능화 ‘추정’이 붙은 시설과 북한이 존재 자체를 부인한 ‘식별 제한’ 시설은 각각 6개와 4개로 파악됐다. 2018년 12월 합동참모본부가 작성한 해당 보고서는 이날 국방부가 비밀해제하면서 일반에 공개됐다. 당시 군 당국은 10개 북한 철거 GP에 각각 7명씩, 모두 77명을 투입해 불능화 여부를 검증했다.

보고서는 지상시설의 경우 일부 지역에 접근이 거부됐지만, 10개 GP 모두 “全(전) 시설 폭파·철거”라고 판단했다. 육안으로 폭파 또는 매몰을 목격할 수 있어 “기능발휘 제한”이라는 판단이 가능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하시설을 놓고서는 “철거 흔적 확인 제한”이라거나 “의구심 해소에 제한” 등 서술이 대부분이었다. 불능화로 추정된 6개 GP 지하시설 중 외부에서 식별이 불가능했던 GP는 4개였다. 북한이 “지하시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4개 GP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8개 GP의 지하시설은 검증단이 제대로 목격도 못하고 돌아온 셈이다.

북한은 검증 과정에서 검증단이 위장된 미상의 지하공간을 발견해 지적하자, 해당 지점을 샘물이라고 했다가 지하 물탱크라고 번복하기도 했다. 검증단은 당시 북한군의 비협조적 행태에 대해 "둘러대기 급급"했다고 기록했다.

지하시설 검증의 중요성은 북한 GP의 특성에서 비롯한다. 북한에서 민경초소로 불리는 GP는 단순한 감시탑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약 100m 정도 길이의 공간이 숨겨져 있다. 군 당국자는 “지상시설은 소형 초소 개념에 불과하다”며 “지하시설이 사실상 북한 GP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1950년대부터 북 전역 진지를 지하갱도 중심으로 구축하면서 GP 지하화 작업도 벌였다. 감시탑에서 약 10m 아래 1.2m 높이의 갱도 입구를 2~3중 철문으로 설치하고, 여러 개의 방에 생활관, 교환실, 탄약고 등을 배치하는 방식이었다. 각 방을 나누는 콘크리트 벽의 두께가 최대 50㎝에 달하는 데다 갱도 구조가 미로처럼 돼있다고 한다.

북한 GP를 공격의 선봉이자 최초의 방어선 역할을 모두 수행하는 기지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이 때문에 철거 검증이 이뤄지기 전부터 군 안팎에선 지하시설이 완전히 철거되지 않는 한 진정한 GP 철수로 보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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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경진·심정보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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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안구에 대해서도 10개 GP 중 7곳에서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파괴 여부를 확인하지 못한 총안구는 7개 GP에서 모두 31개에 달한다.

그럼에도 군 당국은 2018년 12월 17일 언론브리핑을 통해 “국방부와 합참은 이번에 시범 철수한 북측의 (파괴) GP가 감시초소로서의 임무 수행이 불가능한 것으로 평가한다”며 “불능화가 달성됐다고 판단했다”고 발표했다. 다만 확인이 제한된 총안구에 대해선 “총안구가 접근이 불가능한 미확인 지뢰지대에 있거나, 시범철수 대상 GP가 아닌 인근 GP 관할이라는 북한군의 설명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군 관계자는 “총안구로 통하는 지하 갱도 또는 참호가 끊어져 있거나, 해당 총안구가 GP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에 불능화 상태에 가깝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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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지난해 11월 24일 북한이 동부전선 최전방 소초(GP)에서 감시소를 복원하는 정황을 지상 촬영 장비와 열상감시장비(TOD) 등으로 포착했다고 27일 밝혔다.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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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북한이 지난해 11월 9·19 군사합의 파기 발표 후 철거 GP 복원 작업을 짧은 기간 내 완료할 수 있었던 것도 지하시설과 총안구를 남겨놨기에 가능했던 일로 보인다.

유 의원은 “당시 북한 GP는 지하시설이 파괴되지 않았기 때문에 2∼3개월 만에 신속히 복구될 수 있었다”며 “우리 측 GP는 당시 지하시설까지 모두 파괴돼 혈세 1500억원을 투입해 2033년에야 복구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가 검증단 보고를 사실상 묵살하고 불능화 발표에 이르게 된 경위 등 부실 검증 의혹 전반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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