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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 (수)

[경제포커스] 모리스 창이 신혼여행 때 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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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전 TSMC 모리스 창 회장

신생 엔비디아 젠슨 황 직접 방문

“꼼꼼함, 과감함, 신뢰, 큰 포부”

TSMC의 위기도 그렇게 넘겼다

세계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장악하고 있는 TSMC의 창업자 모리스 창과 엔비디아의 CEO(최고경영자) 젠슨 황은 같이 있을 때 마치 부자지간 같다. 중국계(창은 중국, 황은 대만 태생)에 사업적으로 끈끈한 관계인 걸 감안해도, 황이 모리스 창을 아버지처럼 대하듯 하는 것은 비즈니스 세계에선 낯선 모습이다. 엔비디아가 TSMC의 고객사인데도 그렇다. 두 사람과 관련된 글들을 찾아 읽다 보면, 그럴 만하게 된 일화들을 알게 된다.

2001년 황은 자신의 캘리포니아 사무실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잠깐 사무실에 들러도 되겠냐”는 모리스 창의 전화였다. 당시 TSMC는 이미 전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시장 1위 기업이었고, 창업 10년도 안 된 엔비디아는 겨우 게임용 그래픽처리장치(GPU)로 이름을 조금씩 알릴 때였다. 이전에 만난 적은 있지만, 각별한 사이는 아니었다.

모리스 창은 어느 금요일 오후 다른 직원 없이 혼자 사무실에 나타났다. 모리스 창은 황에게 사업은 잘되는지, 필요한 웨이퍼(반도체 원판)는 몇 장인지 세세히 묻고 자신의 검은색 노트에 적었다. 황은 긴장한 나머지 자신이 말한 숫자들이 맞는지 확인할 정도였다. 당시 모리스 창이 재혼한 아내와 신혼여행 중이었다는 것을 황은 나중에 알았다. 엔비디아가 없어서 못 판다는 ‘AI 가속기’의 생산을 TSMC에 맡긴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론이었다. 2007년 10월 모리스 창과 황이 캘리포니아 컴퓨터역사박물관에서 가진 대담에서 밝힌 내용이다.

모리스 창이 공을 들인 초창기 기업은 엔비디아만이 아니다. 퀄컴이나 브로드컴 같은 회사들도 사업 초기부터 TSMC에 칩 생산을 맡겼다. 이런 기업들이 TSMC의 성장에 밑바탕이 됐다. 2000년대 초 퀄컴이 TSMC에 첨단 칩을 맡긴 것은 TSMC가 파운드리 분야에서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경영자로서 모리스 창의 저력은 위기 속에서 더 빛을 발했다. 그는 2005년 일흔넷의 나이로 TSMC의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지면서 TSMC는 전례 없는 타격을 받았다. 고객사들도 하나둘 떠났다. 2009년 모리스 창은 구원 투수로 투입됐다. CEO로 복귀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경영난으로 회사를 떠난 연구·개발(R&D) 인력을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이들의 복귀를 요청하며 모리스 창은 직접 사과문까지 발표했다. 20억달러(약 2조7600억원)였던 TSMC의 투자액도 90억달러(약 12조4000억원)로 늘렸다. 몸집을 줄이던 경쟁사들과는 정반대 결정이었다. 모리스 창은 복귀 후 생산 현장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직원 한 명 한 명에게 질문을 던지고 개선점을 찾았다. 그는 “개별 직원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지 고민했다”고 회상했다.

TSMC가 ‘반도체의 제왕’이 된 것은 그런 위기를 극복한 결과물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스마트폰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릴 때, 선제적 투자로 이 시장을 선점했다. 2016년 아이폰의 주문을 따낼 때도 모리스 창은 직접 미국으로 날아가 팀 쿡 애플 CEO와 담판을 지었다. TSMC나 모리스 창뿐 아니라 위기 이후 더 단단해진 기업의 사례들을 알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지난해 모리스 창 특집 기사에 위기 극복의 해법을 짐작할 수 있는 문구가 있다. “모리스 창은 사업을 할 때 꼼꼼하고, 타협하지 않으며, 동료들을 신뢰했다. 그리고 맞다고 생각되면 큰 포부를 갖고 과감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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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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