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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 (수)

[김한수의 오마이갓]삶의 희망 되살린 ‘1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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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강원 평창 산마루공동체의 십자가. /이주연 목사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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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는 아직도 돈 10만원에 죽고 살 처지에 놓인 분들이 있습니다.”

한 달 전쯤 산마루교회 이주연 목사님은 이런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을 카톡으로 보내왔습니다. 사진 속엔 요즘 보기 힘든, 손으로 쓴 편지 한 통이었습니다. 편지는 노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한 남성이 보낸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이 보내준 사진은 두 장 짜리 편지 중 두 번째 장이었습니다. 편지엔 “덕분에 따뜻한 밥을 부모님께 챙겨드릴 수 있었습니다. 찬밥, 식은 밥 말고 따뜻한 밥을 짓고 몇 개 없는 찬이지만 둘러앉아 부모님 드시는 모습만 봐도 안심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사연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어서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못된 생각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너무 힘들면 사람이 그리 되더군요. 무책임하게 저 혼자 편해지겠다고. 죄송합니다. 어리석었습니다. 깊고 어두운 터널이었는데 목사님 덕분에 빛을 보았습니다. 단번에 나아지지는 않겠지만 노력해보겠습니다. 또 주저앉을 수도 있겠지만 해보겠습니다.”

‘10만원’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못된 생각’…. 이 목사님이 도와주셔서 뭔가 희망을 찾은 분의 편지 내용이었습니다. 뭔가 사연이 더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 목사님은 페이스북에 <소망의 편지 한 통>이라는 제목으로 이런 사연을 소개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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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목사에게 도움을 받은 분이 보내온 편지. /이주연 목사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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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골(산마루공동체가 자리한 강원 평창의 지명)에 밤새 내린 비로 골짜기는 물이 불어나고 물소리가 하늘을 향해 굉음을 냅니다. 이런 날에도 구름 흐르는 산언덕까지 우체부가 편지를 배달했습니다. 열어보니 소망이 향처럼 피어납니다. 아주아주 작은 도움을 전했는데 큰 소망의 소식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목사님에게는 때때로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지원을 부탁하는 편지가 온다고 합니다. 이 목사님은 조선일보에 ‘산모퉁이 돌고 나니’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지요. 이 목사님 글을 읽고 때때로 도움을 청하는 편지가 온답니다. 그런데 부담스럽고 조심스러운 마음이라고 합니다. 충분히 도와줄 수도 없고 도움을 주고자 해도 의구심이 드는 경우가 있어서이지요.

이 목사님은 서울 공덕동에서 서울역 노숙인 등을 돕는 산마루교회를 담임하고, 2019년부터 강원 평창의 항아리골에서 돌짝밭을 개간해 콩을 비롯한 작물을 키우며 노숙인자활공동체를 일구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수많은 ‘배신’ ‘실망’을 겪었습니다. ‘절대 다시는 술 마시지 않겠다’는 노숙자들의 약속은 번번이 깨졌고, ‘자활하겠다’ 다짐하고 종잣돈을 받아가선 연락이 끊긴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이 목사님도 많은 상처를 받았던 것이죠. 그래서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받아도 선뜻 마음을 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목사는 “그런데 이번에 큰 힘이 되는 답신에 감사와 소망을 얻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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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평창 산마루공동체의 대형 나무십자가 앞에 선 이주연 목사. 이 십자가를 시작으로 이 목사는 5만평 광야를 기도와 노동 공동체로 일구고 있다.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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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편지를 보낸 이는 ‘고령의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남성’이라고 했답니다. 몸을 다치는 바람에 일을 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합니다. 그는 편지에서 “지나온 삶을 돌아보았을 때 세상이 너무 차갑게만 보여 과연 누가 도와주기나 할까? 그런 심정으로 도움을 구했습니다. 원래 상처 많고 아픈 사람들일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게 두렵고, 숨고, 움츠러 들더라구요”라고 썼습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목사님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후 통장에 ‘이주연 구제금’이라고 적혀 있었답니다. 그는 그날 “집으로 돌아와 정말 많이도 울었다”고 했답니다. 이 목사님이 보낸 금액은 10만원. 어떤 이에겐 많은 금액이 아닐지 몰라도 편지를 보낸 분에겐 너무나 소중한 금액이었던 것 같습니다.

편지엔 “그 전까지는 안 좋은 생각도 많이 나고, 하루하루가 힘들었는데 도움을 받은 뒤부터는 마음을 달리 먹었습니다. 10만원이라는 작은 돈도 아니고, 도움의 따뜻한 손길을 내어주심에 꼭 살아보자고 마음 먹었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는 또 편지에서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언젠가는 제가 받은 온기를 다른 누군가에게 나눠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목사님이 나눈 온기가 항상 올바르게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누군가는, 꼭 누군가는 목사님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는 걸 기억해주세요.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이 목사님은 페이스북 글을 이렇게 마무리했습니다.

“이땅에 아직도 10만원, 20만원에 죽고 살 길을 결정하는 이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게 사랑의 힘이 되어 주시는 분들의 기도와 후원에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주여, 지극히 작은 영혼에게 큰 사랑과 소망으로 늘 함께하소서!”

사랑과 온기의 릴레이입니다. 이주연 목사님은 올연말 ‘산모퉁이 돌고 나니’ 에세이 연재글을 모아 책으로 펴낼 예정입니다. 이 편지처럼 따뜻한 사연들이 즐비할 것입니다.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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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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