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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 (수)

방치된 퇴역 경주마 18마리, 사체와 함께 발견…옆엔 전기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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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18일 충남 공주의 한 불법 축사에서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굶주린 채 방치된 말 10여 마리가 발견됐다.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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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에 동물 사체, 잔혹한 장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마·승마 등에 이용됐던 말들이 충남 공주의 한 불법 축사에 방치되거나 처참하게 사망한 현장이 드러나 동물단체들이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동물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 동물자유연대 등은 23일 오전 서울 광화문 이순신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장 조사를 통해) 지난 18일 공주시 불법 농장에서 두 달 동안 방치된 뒤 사망한 말 8마리 사체를 발견했다. 말 사체가 나뒹굴던 참혹한 현장에는 여전히 말 18마리가 야위고 곳곳에 상처를 입은 채 방치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말 복지 수립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를 결성해 이 사안에 대응하겠다고도 밝혔다.



단체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지난 8월부터 공주의 불법 축사에 경마·승마 등에 이용됐던 말 23마리가 방치됐다. 그사이 말 8마리가 폐사해 지난해 동물단체의 현장 조사 당시 살아있는 말은 15마리뿐이었다. 현장에서는 부패한 말의 사체와 뼈, 꼬리 등 신체 부위, 불법도살 흔적으로 추정되는 전기 쇠톱 등이 발견됐다. 살아있는 말들은 사체와 오물이 널브러진 현장에 방치돼 있었다.



동물단체들의 문제제기 이후에도 농장 소유주는 말 3마리를 어디선가 더 데려와 현재 현장에는 말 18마리가 있다. 비글구조네트워크는 해당 농장주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공주경찰서에 고발했다. 이 농장주의 말 학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에도 ‘말 불법 도살’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2022년 8월에는 충남 부여의 한 폐축사에 경주 퇴역마 등 말 4마리를 방치해 2마리가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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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충남 공주의 한 불법 축사에서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굶주린 채 방치된 말 10여 마리가 발견됐다.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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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는 사망한 뒤 방치돼 부패한 말의 사체 8구가 발견됐다.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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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설에 남아있는 말들의 마이크로칩을 조회해본 결과, 말들은 나이가 5~23살이며 경주마로 주로 이용되는 품종인 ‘더러브렛’과 ‘한라마’ 등이 여러 마리 포함돼 있었다. 지난해 서울 경찰기마대에서 퇴역한 말 2마리 또한 이곳으로 옮겨졌으나 지난주 방문 당시 현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18마리 가운데 16마리의 정보를 정부가 운영 중인 ‘말 산업 정보 포털’에서 조회할 수 있었는데 기록 오류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16마리 가운데 15마리는 포털 상 소유주·소재지 정보가 실제와 달랐고, 살아있는 3마리는 이미 폐사처리 되어 있었다.



국내에서는 해마다 2000여 마리의 경주마가 새로 태어나고, 1400여 마리 말이 경마에서 은퇴한다. 말의 평균 수명은 25~35살이지만, 경주마는 4~5살에 선수 생활에서 은퇴한다. 이후 40% 정도는 번식이나 승용마로 활용되지만, 대부분은 안락사 되거나 도축돼 반려동물용 사료로 활용된다. 문제는 퇴역마들의 이력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서 이번처럼 불법 축사에 방치되거나 불법도축 된다.



범대위는 이번 사건이 동물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말들의 처지를 잘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굶주리다 사망한 말뿐 아니라 국내에 있는 모든 말들이 어디서 어떻게 죽어도 모를 만큼 퇴역마들은 우리 사회 방임 속에 방치되고 있다”며 “우리나라 법은 인간의 필요 때문에 이용당했던 동물들에게 최소한의 보호·관리의 의무조차 정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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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동물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 동물자유연대 등은 이날 오전 서울 광화문 이순신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말 복지 수립 범국민대책위원회’를 결성한다고 밝혔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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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2022년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고꾸라진 뒤 사망한 퇴역 경주마 ‘까미 사건’ 이후 경마·기관에서 일했던 말들을 위한 보호·복지체계를 마련할 것을 촉구해왔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를 해결할 법이나 제도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21대 국회에서 이를 보완할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된 바 있으나 회기가 종료되며 법안이 자동 폐기됐다. 지난 2월에는 농림축산식품부와 마사회가 ‘말 복지증진 추진 협의체’를 구성했지만, 유의미한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정진아 동물자유연대 사회변화팀장은 “지금도 해당 시설에 십여 마리의 말들이 방치되고 있음에도 관계 기관인 한국마사회와 농림축산식품부, 공주시 모두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면서 “공주시는 학대 현장에 남아있는 말들을 ‘피학대 동물’로 보호 조치하고, 담당 기관들은 학대 방지 및 말 보호방안 수립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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