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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교회는 어쩌다 ‘트럼프교’가 돼버렸나[책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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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20년 1월3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트럼프를 위한 복음주의자 연합’ 출범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기 전에 기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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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목사 아들인 저자
교회와 극우 정치의 결탁을 해부

1980년 카터 재선 막기 위해
로널드 레이건 투표에 ‘올인’
이후부터 복음주의자는
‘공화당 찍는 백인’과 동의어로

“악과 맞서 싸우는” 복음주의자
이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데 대한
수치심·불편한 감정을 정당화

저자는 말한다
“기독교적 가치 지킨다는 명분으로
결국 기독교적 가치를 포기한 것”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주기도문의 마지막 구절이다. 성경은 세속의 권세를 탐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좇으라고 가르쳐왔다. 그러나 미국 시사지 애틀랜틱의 기자 팀 앨버타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 복음주의 교회는 거꾸로 가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 대신 도널드 트럼프를 섬긴다.

트럼프가 누군가. “트럼프는 2016년 선거에서 장애인을 조롱하고, 외국인 혐오를 만천하에 드러내며 이민자를 비방하고, 정적에게 폭력을 행사하도록 지지자들을 부추기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한마디로 음탕한 데다 뉘우칠 줄도 모르는 비열한 악당이었다.” 트럼프는 성경 속 예수가 모범적으로 형상화한 기독교 윤리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백인 복음주의 유권자의 81%는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했다.

도덕적 가치를 중시하는 복음주의 교회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나라 권력 영광>은 전작에서 공화당의 역사를 파헤친 앨버타가 복음주의 교회와 극우 정치의 결탁을 해부한 책이다.

경향신문

나라 권력 영광
팀 앨버타 지음 | 이은진 옮김
비아토르 | 724쪽 | 3만4200원

저자는 보수적 색채가 강한 지역에서 복음주의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 자신도 오랜 기독교 신자다. 그런 그가 복음주의 교회의 타락에 대한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2019년 7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망을 겪으면서다. 장례식장에서 저자는 트럼프를 비난하는 책을 썼다는 이유로 자신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교우들과 대면했다. 아버지의 오랜 친구 한 명은 트럼프를 비판하는 행위는 “하나님과 국가에 대한 반역”이라면서 제대로 된 저널리스트라면 트럼프 행정부를 방해하는 그림자 정부의 실체를 폭로하라고 질책했다. 그림자 정부가 미국을 주무르고 있다는 것은 전형적인 극우 음모론자들의 사고방식이다.

저자에 따르면 개신교 신자들이 유럽 대륙의 종교 탄압을 피해 아메리카 식민지에 정착한 이래 1970년대까지 ‘복음주의’는 특별한 정치색을 띤 용어가 아니었다. 1979년 제리 팔웰 목사가 설립한 기독교 단체 모럴머조리티(Moral Majority)가 부상하면서 복음주의는 정치 운동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모럴머조리티는 베트남전 반대 시위와 흑인 민권 운동을 거치며 확산된 진보적 사회 분위기에 맞서 동성애와 낙태 반대 운동을 벌였다.

애초 팔웰은 교회가 정치 활동에 개입하는 것을 꺼렸으나 보수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 공동 설립자 폴 웨이리치를 만나면서 입장을 바꿨다. 정치권의 보수주의자들은 1980년 대선에서 지미 카터의 재선을 막기 위해 보수 성향 기독교인들의 표가 필요했다. 기독교 대학에 인종차별적 관행을 중단할 것을 압박해온 카터 정부가 불만이었던 팔웰은 보수주의자들과 손잡았다. 그 결과 ‘복음주의자’는 ‘공화당 후보에게 투표하는 백인 보수주의자’와 동의어가 됐다.

로널드 레이건이 복음주의자들과의 선거연합을 통해 집권에 성공하면서 공화당의 주류도 교체됐다. “공화당의 현대사를 이끌어온 교육받고, 부유하며, 사회적으로 온전하고, 문화적으로 진보적인 경향이 갑자기 예고 없이 더 이상 주류가 아니게 되었다. 앞으로 공화당에서 인정을 받으려면 낙태 문제를 경제 문제만큼 중요하게 다루어야 했다.”

트럼프는 레이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진적이고 과격한 정치인이다. 그런 트럼프를 복음주의자들이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저자는 “성경에는 중대한 결함이 있는 위대한 지도자들의 예사가 가득하므로 트럼프를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을 위한 불완전한 도구로 제시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다”고 설명한다.

복음주의자들은 극우 정치인과의 동맹을 악과 싸우기 위한 불가피한 타협으로 포장한다. 댈러스 제일침례교회 담임 목사 로버트 제프리스는 저자와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소금이 되라고 예수께서 명령하셨으니, 우리는 악에 맞서 싸우고 악을 억제해야 합니다.” 제프리스 목사에게 악과 맞서 싸우는 행위는 “무엇보다 트럼프를 지지하고 홍보하고 보호하는 것을 의미했다”.

2011년 공공종교연구소 설문조사에서는 “사생활에서 부도덕한 행동을 한 정치인도 공직에서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백인 복음주의자 중 30%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2016년 11월에는 백인 복음주의자들 중 72%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저자는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미국에서 기독교의 가치가 공격받고 있으며 기독교인들이 악의 세력에 포위돼 있다는 공포감이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재임하는 동안 백인 복음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가치와 신념이 위협받고 있으며 사회적·문화적 변화가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이 같은 위기감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데 대한 일말의 수치심과 불편한 감정을 정당화하는 심리적 기제로 작동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트럼프가 복음주의 운동의 “선택적 도덕성, 윤리적 일관성 부족, 노골적 위선”을 표면 위로 끌어올렸을 뿐이라고 말한다.

교회와 정치의 유착은 결국 교회의 신뢰도 하락이라는 자해적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2023년 8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예비 선거 유권자의 44퍼센트만이 종교 지도자의 말을 신뢰한다고 답했으며, 트럼프 지지자들 가운데는 그 수치가 42퍼센트에 불과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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