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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토)

“내 집인데 어때” 베란다·화장실서 ‘뻑뻑’…간접흡연 민원 왜 줄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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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층간소음 피해 민원
2019년 5.3만건→2023년 11만건 폭증
간접흡연 피해로 강력범죄 늘고있지만,
흡연행위 금지할 방법 전무


매일경제

공동주택 간접 흡연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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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중구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A씨는)는 화장실과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집안으로 들어오는 담배 냄새로 피해를 보고 있다. 관리사무소에 알렸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안내 방송 밖에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서울 동대문구 한 빌라에 거주하는 B씨(43)도 1년 전 아래층으로 이사 온 이웃이 화장실에서 피우는 담배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아랫집에 내려가 항의했지만 “조심해서 피겠다”는 답변 뿐, 이후에도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최소한의 행복 추구와 자유를 외치는 흡연자와 간접흡연으로 고통 받는 혐연자 간 논쟁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공간이 아파트, 빌라 등 공동주택이다.

공동주택에서의 층간흡연·간접흡연 갈등 규모는 층간소음 민원에 버금간다. 그러나 공동주택 특성상 개인 공간에서의 소음에 관해 직접 제재가 힘들듯 집안에서의 흡연행위를 금지할 마땅한 방법이 현재로선 없는 실정이다.

층간소음·간접흡연으로 인한 피해 미원이 갈수록 급증하고 있어 이와 관련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공동주택 입주민이 층간소음·간접흡연 피해를 호소한 민원은 총 39만8355건으로 집계됐다. 특히 2023년 한 해 동안에만 총 11만1959건이 접수돼 하루 평균 300건 이상의 민원이 발생했다.

올해 7월까지의 통계에서도 이미 6만2715건의 민원이 접수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민원의 사실관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5년간 수행된 조사만 27만7855건에 달했다.

지난 5년간 각 공동주택 관리주체가 층간소음·간접흡연 관련 사실조사를 수행한 건수는 2019년 3만6801건, 2020년 6만8661건, 2021년 5만3962건, 2022년 5만4360건, 2023년 6만4071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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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파트 입주민이 ‘거동 불편한 부친의 실내 흡연을 이해해 달라’며 쓴 메모 [사진 =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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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공동주택 주민이 이웃에게 ‘아버지의 실내 흡연을 이해해 달라’는 내용의 쪽지를 받았다는 사연이 온라인에 공개돼 논란이 된 바 있다.

지난달 30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한 아파트 주민이라고 밝힌 A씨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 B씨가 실내 흡연을 양해해 달라더라”고 적으면서 B씨에게 받은 손글씨 메모를 찍은 사진을 게재했다.

메모에서 97세 아버님을 모시고 살고 있다는 B씨는 “아버님이 거동이 불편하셔서 외출을 못 하시는 관계로 부득이하게 실내에서 흡연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웃에 폐를 끼쳐 죄송하다”면서도 “내 부모님이라면 어떨까 하는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 넓은 마음으로 양해 부탁드린다”고 끝맺었다.

해당 메모를 본 누리꾼 대부분은 비판을 쏟아냈다. “역지사지라는 건 내 상황만큼 남의 입장도 이해하는 것”, “거동 불편한 어르신으로 인해 영유아를 둔 가정이 피해를 보면 그것도 감수해야 하나”, “휠체어 태워 모시고 밖에 나가서 흡연하면 된다” 등의 반응을 남겼다.

반대로 쪽지 작성자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누리꾼은 “97세에 거동 불편하고 이사 갈 수 있는 사정이 안 될 수 있으니 이해는 해 줘야 한다”, “담배를 못 피우게 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한으로 남을 것”이라는 댓글도 달렸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민홍철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공동주택에서 발생한 층간소음 및 간접흡연 민원 건수와 권고 발부 건수가 매년 늘고 있다”면서 “국토부에서 제도적 장치 마련을 위해 노력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웃 간의 배려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잘 정착되는 것도 층간소음과 간접흡연을 줄이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아파트 흡연 갈등 해결책 없나
2004년 헌법재판소는 금연구역 지정에 관한 국민건강증진법시행규칙 제7조 위헌확인 판결(2004.8.26.자 2003헌마457)에서 사생활의 자유를 토대로 한 ‘흡연권’보다 생명권에까지 연결되는 ‘혐연권’이 상위의 기본권이라고 판시했다. 흡연권은 혐연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 인정되어야 하며 이를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는 필수 금연구역 이외에도 흡연으로 인한 피해 방지를 위해 필요한 경우 다수인이 모이는 일정한 장소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 2022년 6월 기준 서울시에는 실내·외 29만3734개소의 금연구역이 지정돼 있다.

문제는 공동주택에서 간접흡연과 관련해서는 이를 강제할 방법이 사실이 없다.

민건강증진법 제9조 5항에는 거주 세대 과반이 찬성하면 공동주택의 복도·계단·지하주차장 등을 금연구역(금연아파트)으로 지정 신청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위반 시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공용부분에 한정된 제재이므로 세대 내 흡연을 금지할 수는 없다.

공동주택관리법 제20조와 제20조의2에 따르면 입주자는 발코니·화장실 등 세대 내 흡연으로 다른 입주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간접흡연으로 피해를 본 입주자가 관리주체에 피해 사실을 알리면 관리주체는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세대 내 필요한 조사를 할 수 있고 흡연자에게 일정한 장소에서의 흡연 중단을 ‘요청’할 수 있다.

즉 금연에 대한 강제성이 없고 관리사무소는 입주자의 세대 내 사생활에 대한 조사나 제재, 세대 간 갈등의 개입이나 중재를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현실이므로 실효성이 작을 수 밖에 없다.

실제 지난 5년 간 공동주택 단지에서 이뤄진 사실조사 사례 가운데 관리 주체가 실제 피해를 일으킨 입주민 등에게 층간소음 발생 중단·소음차단 조치·특정 장소에서의 흡연 금지 등을 권고한 건수는 총 20만6422건으로, 전체 조사 건수 대비 74%에 그쳤다.

이밖에 공동주택 분쟁조정을 신청하거나 민사소송에 의한 손해배상 청구를 고려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실내 흡연 자체에 대한 금지나 방지책이 될 수 없다. 피해를 호소하는 개인 차원에서 입증을 포함한 모든 절차를 스스로 감내해야 한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이 같은 실내 흡연, 그로 인한 피해가 잇따르자 층간 흡연은 이웃 간 폭력과 살인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2022년 6월 인천 부평구의 한 빌라에 사는 C씨는 소음과 담배 냄새로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웃 주민 B씨를 흉기로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또 같은 해 10월에는 수원시 영통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층간 흡연으로 갈등을 빚은 주민들이 서로 폭행해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업자에 의한 임대 비율이 높아 국내 공동주택 현황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일찍부터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주거용 건물 전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는 법이나 조례를 시행했다.

법조계에서는 간접흡연으로 인한 이웃 간 갈등이 범죄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흡연과 혐연의 실효 경계에 관한 사회의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법에 반영하는 입법자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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