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코리아, 의정갈등 해법을 말하다] 보건의료 분과 위원 6인 긴급진단
중앙일보 리셋코리아 회의가 27일 서울 중구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강정화 소비자연맹 회장, 서명옥 국민의힘 의원, 이윤성 서울대의대 명예교수,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진우 대한의학회장,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 김성룡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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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 발표 이후 9개월째 의·정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 1만여 명과 의대생 2만여 명이 병원과 학교를 떠났고, 의료 공백은 갈수록 커간다. 이대로면 한국의 필수의료 명맥이 끊길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퍼진다. 정치권에서 제안한 여·야·의·정 협의체는 한 달 넘게 표류하고 있다. 국내 최고의 의료 정책 전문가 6인으로 구성된 중앙일보 리셋코리아 보건의료 분과가 27일 머리를 맞댔다. 이날 회의는 이윤성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전 의학회장)가 위원장을 맡아 진행했다.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회장,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예방의학과 전문의), 서명옥 국민의힘 의원(영상의학과 전문의),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이진우 대한의학회장(연세대 의대 정형외과 교수)이 참여했다. 위원들은 “정부는 성의 있게 대화 의지를 보이고, 의료계는 전공의·의대생을 적극 설득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서명옥=책임 있는 여당 의원으로서 의료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 또 선배 의사로서 그간의 불합리한 의료 체계를 방기한 책임감을 느낀다. 정부의 책임도 있겠지만, 저를 포함한 우리 기성세대 의사들의 잘못도 적지 않다고 본다. 몇십 년 전부터 의사 수를 계속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는데, 의료계가 우리나라 현 의료 체계에서 필수의료 등 분야별 의사가 몇 명이 필요한지 자체적으로 추계하고 연구해 두었어야 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와 협의하고 정책을 만들어야 했다. 이러한 노력 없이 정부에서 의사 증원한다고 할 때마다 투쟁을 벌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현 상황에서 전공의와 의대생이 큰 손해를 보고 있다. 의사라는 길을 택하는 이유는 환자 생명을 살린다는 직업적인 소명감, 전문직으로서 경제적인 안정감이라고 본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젊은 의사, 예비 의사는 이 둘 다 잃었다고 느끼고 있다. 정부의 2000명 증원 과정에서 숫자를 떠나, 과정의 합리성이 충분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현재 이 문제를 푸는 방법이 매우 어렵지만, 젊은 의사들의 상실감을 회복시켜주는 것이 실마리가 될 것이다.
▶이윤성=어떻게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있을까.
▶서명옥=정부가 전공의 등 의료진에 신뢰감 줄 수 있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김윤=의대생·전공의들이 분명 많은 피해를 봤다. 그러나 환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피해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해야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제가 의료 공백으로 인해 환자 피해를 분석해보니 2~5월 넉 달간 1700명의 초과 사망자가 발생했다. 당장 드러나지 않는 암 환자의 치료 지연 사망까지 고려하면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이에 대한 언급 없이 의대생·전공의들의 피해만 강조하면 국민 공감을 얻기 어렵다. 이 사안에 참여한 모든 주체, 정부·여당·야당·의료계가 기존 주장이나 행동을 다 같이 성찰해야 한다. 저는 여·야·의·정 협의체에 가능한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참여해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게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신영석=우리 사회가 건강보험을 운영하면서 대부분의 (의료 서비스)공급을 하는 민간 부문에 이익을 창출할 기회를 제공했다. 비급여·실손보험 등이 개입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보상의 높낮이가 맞지 않게 됐다. 의사도 생활인이기에 상대적으로 높게 보상받는 부분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20여 년 의료 체계가 왜곡됐으니 의대 증원 문제가 아니었어도 조만간 터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두 가지 길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전공의·의대생이 초기에 주장했던 7개 요구 사항 중에서 증원 원점 검토 외에 나머지는 대부분 이미 수용했다. 앞으로 계속 설득하되 내년 초까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플랜 B를 고민해야 한다. 지금 의료현장이 그나마 돌아가는 건 남아 있는 의사의 헌신 덕분인데, 이분들이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지 걱정된다.
▶이윤성=설득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저 ‘돌아와라’고만 할 수는 없다.
차준홍 기자 |
▶신영석=전공의 입장에서 보면 정부 정책에 불만이 있는 상황이지만, 복귀와 ‘계속 투쟁’ 중 미래 경력을 생각하면 복귀하는 게 베스트(최선)일 것이다. 의료계 선배가 후배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득에 나서줬으면 좋겠다. 대한의학회의 여·야·의·정 대화 참여 결정에 감사드린다. 의료계에서 어른 위치에 있는 단체가 제 역할을 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윤성=일각에서는 “너희들이 뭔데 우리의 뜻을 반영한다고 하냐”고 말한다.
▶서명옥=미래를 생각하면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언제, 어떤 시점에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울 것 같다.
▶강정화=현재 전공의의 공통된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전공의는 증원 철회를 요구하는데, 국민은 원점에서 논의해서 증원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올 경우 전공의가 받아들일 것인지 걱정한다. 또 전공의가 이대로 일반의사의 길을 택한다 해도 (자신에게) 큰 타격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의대생은 일생일대의 실패가 될 수 있다. 전공의와 의대생에 대한 접근을 달리해야 하지 않을까. 또 의·정 갈등이 계속될 때에 대비해야 한다. 응급·중증 의료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이진우=초기에 정부가 말도 안 되게 밀어붙인 부분이 있다. 전공의·학생뿐 아니라 의료인 모두 상처를 많이 받았다. 여·야·의·정 제안이 왔을 때 저는 신뢰 회복을 하려면 정부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무리한 정책을 추진한 당국자의 사과와 책임자 문책, 2025년 학년도를 포함한 정원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다행히 복지부 장관이 얼마 전 사과를 표명했다. 조금 미약하지만, 유일한 정부의 태도 변화였다. 이어 총리가 2025년 정원을 포함해 논의 가능하다고 메시지를 냈다. 그런데 그 직후 대통령실 장상윤 사회수석이 “4000명 증원하려다 2000명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좀 대화가 될까 했더니 또 분위기를 흐린 것이다. 이런 불신 때문에 ‘협의체에 들어가 봐야 이용만 당한다, 들어가지 마라’는 압력이 굉장하다. 전쟁 중에도 대화한다는데, 대화의 물꼬는 터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윤성=이 시점에 좀 더 구체적인 안이 필요하지 않을까. 예를 들자면, 2026년 의대 정원을 다시 논의하되 의료계가 기왕에 어느 정도 수용한 숫자가 500명 정도이니 일단 그 정도로 결정한다. 그다음에 5년이든, 10년이든 장기간에 걸쳐서 기존 정원(3058명)보다 1500명 정도 늘어나는 것으로 의논한다. 전제조건은 한의과대 정원 800명을 흡수하는 것이다. 이런 안을 내면 양쪽(정부-의료계)에서 집중포화를 받겠지만, 그런 의견을 모아 조금씩 조정할 수 있다. 그다음 (전공의, 의대생에) ‘환자, 국민, 본인을 생각해서 들어오자. 이제 들어와서 다시 시작하자’고 설득하고, 정부에 대해서는 ‘2028년 이후는 현 정부가 책임지지 못하니 장기적인 플랜으로 가자’고 제안하고 싶다.
▶이진우=여·야·의·정 협의체에 참여하면서 내세운 조건이 2025년 정원 논의의 원칙을 정하자는 것이다. 1509명(증원 진행 중인 정원)으로 이미 정해졌으니 손 못 댄다고 하면 진전이 없다. 수시 입시에서 (충원 안 돼)정시로 넘어가는 정원을 줄이든지, 지역인재 선발 전형에서 최저 등급을 못 맞추는 수험생을 안 뽑거나, 가능한 방법이 있다. 2025학년도 정원도 정부가 성의를 보여줘야 한다. 2026년 이후는 추계기구에서 논의해 결정하면 된다.
▶이윤성=그렇게 하면 의료계는 뭘 내놓을 수 있을까.
▶이진우=전공의·의대생 설득을 시작해야 한다.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들어온다고) 보장할 수는 없지만, 2025년 정원에 대해서 정부가 성의를 보여주면 그들을 들어오게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명옥=이진우 회장이 제안한 대로 전체 입시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2025년 정원을 조정할 수 있는 방법이 실현 가능하다면 좋겠다. 그러려면 여·야·의·정 협의체가 속히 시작되어야 한다. 전공의·의대생들도 밖에서 투쟁만 하지 말고, 협의체에 들어와서 의견을 피력해야 한다. 야당도 전공의·의협이 없어서 협의체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하지 말고 민생을 위해 대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신영석=전공의·의대생 복귀 이후 의료개혁도 정말 중요하다. 너무 짧은 시간에 여러 가지 주장에 맞춘 정책이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가면 몇 년 뒤 또 다른 위기가 올 수 있다. 전공의도, 의협도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 들어와서 의견을 내야 한다. 의료 전달체계, 수련 교육도 여기서 논의할 수 있다.
▶김윤=환자·국민이 참여하는 형태로 여·야·의·정 협의체를 확대 개편해야 한다. 민주당을 포함한 여야가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책임 있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 정부가 지속적으로 정보를 숨기거나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라면 곤란하다. 협의체에서 내려진 결정은 반드시 수용하겠다고 선언하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정리=이에스더 기자, 목재경 인턴기자 rhee.es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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