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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 (토)

[모던 경성]이효석의 애독서 ‘어머니’는 왜 386 운동권 필독서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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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라이브러리 속의 모던 경성]1930년대 톨스토이 버금가는 인기누린 고리키…타계 특집 기사 쏟아져

조선일보

소비에트 작가 막심 고리키는 1930년대 젊은 지식인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대표작 '어머니'는 1980년대 대학가 의식화 교재로 활용됐고, 일반 학생들에게도 널리 읽혔다.


조선일보는 1933년 1월 유명 문인, 지식인들의 애독서와 그 이유를 꼽는 기고를 받았다. ‘내 심금의 현(絃)을 울린 작품’이란 제목이었다. 주요섭 김안서 박화성 이헌구 유치진 이하윤 이효석 이태준 양주동 이무영 오천석 박용철 등 13명이 참가했다. 이중 고리키와 투르게네프 작품을 꼽은 이가 각각 2명으로 전체 13명중 4명이다. 1930년대 조선을 휩쓴 러시아 문학의 힘을 엿볼 수있다. 특히 이효석(1907~1942)은 그리스 비극 소포클레스와 함께 고리키 소설 ‘어머니’를 완벽에 가까운 작품으로 꼽았다.

‘어머니가 점심 그릇 속에 삐라를 묻어가지고 공장으로 들어가던 장면, 아들이 가두에서 시위하다 붙들리는 장면 등등 수많은 장면이 언제까지든지 잊히지 않고 신선한 인상을 가지고 눈앞에 살아나오리만큼 감동깊은 작품이었다. 진실로 진보적인 문학, 일원적인 문학, 우리를 울리는 문학 그것을 나는 여기에서 찾아낸 것이다.’(‘소포클레스로부터 고리키까지’, 조선일보 1933년 1월26~27일)

조선일보

고리키 '어머니'는 1930년대 신문에 주요 내용이 연재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1931년 8월26일~9월1일 여섯차례에 걸쳐 '어머니'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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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울리는 문학’ 고리키

경성제대 법문학부를 졸업한 스물여섯살 수재 이효석은 현실에 굴복하지 않는 혁명적 모성(母性)을 재현한 고리키 ‘어머니’를 ‘진보적 문학’ ‘우리를 울리는 문학’으로 치켜세웠다.

이효석은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멤버는 아니지만 ‘동반자 작가’였기에 고리키를 높이 평가했다고 볼 수도 있다. 또 다른 독후감을 보자. 진주고보생 김인문이 월간지 ‘동광’에 기고한 ‘고리끼의 作 ‘母’를 읽고’(제31호,1932년3월)는 10대 고교생 눈높이로 읽은 ‘어머니’ 독법이다. ‘자기의 소신을 완전히 자식의 사상변천에 끌리어 자식의 감화의 권내(圈內)에 완전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자식의 母가 되었으며 더욱이 용맹한 동지애를 그의 명랑한 필력으로 그려낸 작품이 곧 골키의 ‘모’이다.’ 자식에 이끌려 혁명가로 성장하는 어머니의 변신을 주목했다.

1930년대 조선 문단에서 고리키는 톨스토이에 버금갈 만큼 인기를 누리던 러시아 작가였다.(김진영, ‘광장의 문학’ 217쪽) 사회주의에 동조한 청년은 물론 보통의 젊은 지식인들도 고리키를 통해 독립과 해방을 모색했다. 1936년 6월 고리키 타계를 맞아 신문, 잡지에서 쏟아낸 글을 보면 당대 지식인들이 얼마나 고리키에 심취했는지 알 수있다.

조선일보

1936년 6월18일 고리키가 타계하자 각 신문은 일제히 특집 기사를 쏟아냈다. 조선일보 1936년 6월21일자에 실린 고리키 특집 '빈곤과 고난의 작가' 첫회. 함대훈이 여섯차례에 걸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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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마다 한 페이지씩 털어 특집

1936년 6월 18일 고리키 타계 소식이 전해지자 신문마다 고리키 특집이 쏟아졌다. 일본에서 러시아문학을 공부한 함대훈은 조선일보에 ‘빈곤과 고난의 작가 고리키의 생애와 예술’(6월21~7월1일·총 7회)을 실었다. ‘나는 가난하고 불쌍하고 괴로워하는 계급을 위해 일생을 쓴 그의 작품속에 새겨진 그의 심혼은 다시금 내 문학적 생활에 커다란 충격을 주게 되는 것이다.’(조선일보 1936년 6월21일)

조선중앙일보는 한 페이지(6월22일자)를 털어 고리키 특집을 꾸몄다. 카프 작가 김남천 이기영과 이태준 고명자가 필자로 나섰다. ‘고리키를 곡함’을 쓴 김남천은 ‘20세기의 최고의 인간’ ‘억만대중의 최량의 僚友의 지조를 관철한 거대한 인간’으로 추앙했다. 동아일보도 6월20일자 한 페이지를 털어 고리키 기사를 전했다. 카프 출신 문학평론가 한식(韓植)의 ‘문호 막심 골키의 문학사상의 지위’를 비롯, ‘골키의 약력과 저작’이 실렸다. 한식은 6월26일까지 5차례 기고하면서 ‘그는 프롤레타리아 예술의 태조이고 그의 가장 위대한 대표자’라고 평가했다. 동아일보는 앞서 고리키 ‘어머니’ 주요 내용을 1931년8월26일부터 9월1일까지 여섯차례에 걸쳐 연재하기도 했다.

조선일보

조선중앙일보는 1936년 6월22일자에 한면을 털어 고리키 특집을 실었다. 김남천 이태준 이기영이 필자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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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운동권 입문서 ‘어머니’

고리키 ‘어머니’는 1980년대 대학 운동권에서 ‘의식화교재’처럼 읽었던 책이다. 당시 유포된 운동권 세미나 커리큘럼 중 하나인 ‘사회과학학습을 위한 도서목록’(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소장)에 따르면, ‘어머니’는 ‘강철은 어떻게 단련됐는가’와 함께 ‘혁명사’ 학습의 참고도서로 올랐다.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단순한 외부적 논리로 이들 알사(혁명사의 은어, Revolution의 첫 글자 R을 따서 R史라고 했다)를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적 상황에의 적용가능성을 진지하게 탐색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단서가 붙었다.

권위주의 정부와 맞서 싸우면서 일제 때 유행한 고리키를 다시 불러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이런저런 시국사건으로 투옥된 ‘운동권’ 대학생, 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어머니’는 이들의 가족이 자식들과 함께 ‘투사’ 대열에 합류하도록 각성시키는 역할을 떠맡았다.

‘어머니’는 운동권 교재를 뛰어넘는 대중성을 확보했다. 그 시절의 대학생들에게 ‘어머니’는 최소한 제목은 들어봤을 교양서 반열에까지 올랐다. 노문학자 김진영 연세대교수는 ‘80년대 독자들이 읽은 ‘강철’과 ‘어머니’는 광장의 문학이었다’며 ‘상상이나 낭만 따위와는 거리가 먼 현실 삶의 거울이자 돌파구로서 스스로 의미를 확정지은 문학이었다’고 지적한다. 한 시대를 풍미한 고리키 ‘어머니’가 2000년대 들어 서서히 잊혀진 것도 주목할 만하다. ‘혁명의 시대’가 저물었기 때문일까.

◇참고자료

김진영, 광장의 문학-격변기 한국이 읽은 러시아, 성균관대출판부, 2024

‘사회과학학습을 위한 도서목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효석 전집 7, 창미사, 2003

김인문, ‘고리끼의 作 ‘母’를 읽고’, 동광 제31호,19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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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철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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