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효율성은 규모에 비례한다.
그러나 혁신에는 반비례한다.
클레이턴 크리스텐센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 '혁신 기업의 딜레마', 1995
1976년 미국 미시간대 경영대학원 로버트 던컨 교수는 ‘양손잡이 조직(Ambidextrous Organization)’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양손잡이는 왼손과 오른손을 모두 사용한다. 학계에서는 ‘기업도 새로운 기회를 탐색하며 동시에 기존 역량을 활용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다그쳤다.
““한 손으로 기업 효율성은 높이고 리스크를 줄여라.
다른 한 손으로는 창조성을 높이고 리스크를 감수하라.”
마이클 투시먼 하버드대 교수
”
투시먼 하버드대 교수는 양손잡이 조직을 ‘한 손은 기존 사업 중심으로 안정성을 추구하면서, 또 다른 한 손으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처럼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조직’이라고 정의했다. 기업 규모가 크거나, 기존 사업이 잘될수록 혁신을 도모하기 위해 양손잡이 조직 경영 방식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전 세계 와이너리 가운데 열에 아홉 이상은 사업체다. 규모가 작은 양조장일지라도 엄연한 기업이다. 스스로 마시기 위해 와인을 만들지 않고, 팔기 위해 와인을 빚는다.
단일 제품만 파는 기업이 드물듯, 한 제품만 파는 와이너리도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와인을 만드는 포도 품종은 수천종을 웃돈다. 이탈리아는 토착 품종만 세어도 500여종을 넘는다. 여기에 밭고랑마다 성장 속도가 다르고, 품종별 수확 시기도 제각각이다. 자동차 등급에 따라 가격이 갈리듯, 같은 와이너리에서 만든 와인도 포도 품질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다.
미국 주류 전문작가 로저 모리스는 “와인업계에 기업이나 금융사를 앞세운 거대 자본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와이너리 경영 전략도 이전보다 세분화하고 있다”며 “한 브랜드 안에서도 돈을 벌기 위해 만드는 캐시카우 와인과 브랜드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엄격하게 관리하는 간판 와인이 각각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래픽=정서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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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프랑스와 전 세계 와인 생산량 1위 자리를 놓고 매년 엎치락뒤치락한다. 특히 북부 피에몬테 지방은 이탈리아 내에서도 고가 와인이 나오기로 유명하다.
이 지역을 상징하는 ‘바롤로’라는 와인은 네비올로라는 포도 품종으로 만든다. 네비올로는 다른 포도보다 늦게 수확하는 만생종 포도다. 포도 열매를 오래 키워야 할 뿐 아니라, 와인도 오래 묵혀야 한다. 고급 와인은 대체로 풍미가 절정에 달하려면 일정 시간 숙성해야 한다. 이 때문에 엄격한 규정에 따라 지하창고에서 3~5년 이상 숙성 후 시장에 내놓는다.
바롤로 이름을 달기 위해서는 최소 38개월을 숙성해야 한다. ‘특별히 더 좋은 등급’에 해당하는 바롤로 리제르바는 62개월을 묵혀야 한다. 이 기간 참나무통에서, 병에서 익어가는 와인 물량은 고스란히 양조장이 떠안는다. 규모가 작은 와이너리에는 상당한 부담이다.
이 지역 생산자들은 ‘돌체토’라는 포도 품종에 주목했다. 이 포도는 ‘조그맣다’는 뜻을 지닌 이탈리아어가 기원이다. 그만큼 알맹이가 작아 양조가도, 포도 농부도 주목하지 않았다. 이 지역 속담에 이르길 ‘가장 좋은 밭에는 네비올로를, 그 다음 밭에는 바르베라를, 나머지 3등급 밭에 돌체토를 심어라’고 할 정도였다.
다만 돌체토는 작아서 빨리 익는 조생종 포도였다. 10월에 수확하는 네비올로 품종보다 두 달 이른 8월에 거둔다. 단위 면적 당 수확량도 많았다. 피에몬테 지역 농부들은 곧 돌체토 품종 포도로 먼저 와인을 만들어 현금을 쌓기 시작했다. 돌체토 품종 와인은 오래 묵혀 마시지 않는다. 신선하고, 경쾌한 느낌으로, 그해 만들어 그다음 해 전부 마신다. 8월 무렵 수확을 마치면 겨우내 양조를 마쳐 이듬해 봄에 새 와인이 나온다. 많이 만들어, 빨리 팔 수 있으니 바롤로에 묶인 돈을 융통하기 좋은 효자 와인이다.
피오 체사레는 이 피에몬테 지역에서 5대째 내려오는 가족 경영 와이너리다. 1881년 체사레 피오가 설립했다. 성공적인 사업가였던 체사레는 취미로 와이너리를 시작했지만, 곧 와인 사업이 숙명임을 깨닫고 모든 일을 정리한 뒤 와인에 몰두했다. 1900년대 초 와이너리를 물려받은 외조부 주세페(Guiseppe)는 피오 체사레를 더 크게 성장시켰다. 지금은 1997년생 젊은 오너 페데리카 보파가 가업을 승계했다.
피오 체사레는 이 지역 와이너리 가운데 유난히 와인 생산량을 조절하는 곳으로 꼽힌다. 포도밭 크기가 비슷한 다른 와이너리보다 절반에서 3분의 1 정도 양을 생산한다. 이 와이너리 역시 돌체토와 네비올로 두 품종을 140년 넘게 이어지는 명성을 유지하는 양손잡이 경영 아이템으로 사용한다. 이들이 만드는 바롤로 와인은 말린 과일과 가죽, 담배, 장미 등 다양한 향이 어우러진 고급 와인이다.
피오 체사레 돌체토는 이보다 가볍게 마시기 좋은 레드 와인이다. 이 품종으로 잘 만든 와인은 경쾌한 제비꽃 향이 인상적이다. 다만 껍질이 두껍고 산도가 낮아 자칫 발효를 잘못하면 떫고 마시기 어려운 와인이 나오기 십상이다. 피오 체사레는 포도 껍질을 누르는 압착 과정을 섬세히 조절하고, 발효 시간을 짧게 해 부드럽고 신선한 돌체토 와인을 만든다. 이 와인은 2024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구대륙 레드와인 부문 대상을 받았다. 수입사는 씨에스알와인이다.
유진우 기자(oj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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