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삽살개재단 하지홍 이사장이 삽살개와 함께 앉아 있다. 사진작가 강형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삽살개 복원 연구에 평생을 바친 하지홍 한국삽살개재단 이사장의 이야기는 한국 토종개를 지키기 위한 헌신의 기록이다. 경북대 유전자공학 교수로 임용된 1985년 이후 그는 토종개 품종 복원과 함께 전공인 유전자 분석을 통한 토종개의 기원 연구를 시작해 퇴임한 2018년 이후 지금까지 경북 경산에 자리잡은 삽살개재단 일을 이어가고 있다.
품종 복원 시작에 의욕은 넘쳤으나 여건은 녹록지 않았다. 수의대 교수였던 부친조차도 “품종 복원은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해 넓은 정원과 일꾼을 거느린 영국 귀족들이나 가능한 일”이라며 의구심을 나타냈을 정도였다. 하지홍 이사장이 본격적으로 이 일에 뛰어든 계기는 당시 부친이 연구 목적으로 젖소와 돼지를 기르던 대구목장에 삽살개 10마리가 있어서였다. 당시 흔치 않았던 삽살개가 부친의 목장에 있었던 건 부친 하성진 교수와 제자인 탁연빈 교수가 1960년대부터 삽살개 보호 연구를 진행한 덕분이었다. 어릴 때부터 강아지를 좋아했던 하지홍 이사장은 미국 일리노이대학 유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뒤 전공인 미생물유전학 관점에서 토종개 연구가 개척자의 길이 될 수 있다는 연구자로서의 욕심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오전 강의 뒤 오후에는 시외버스를 타고 아버지의 목장으로 매일 오가려면 왕복 2시간이 넘게 걸렸고 당시 교수 봉급으로는 개 사룟값도 빠듯했죠”라며 “초기 30년은 죽을 고생을 한 것 같습니다”라고 회상했다.
특히 그때만 해도 삽살개는 길고 풍성한 털 탓에 외형이 일찌감치 토종개로 지정된 진돗개와 많이 달라 사람들로부터 “서양 개냐”라는 소리를 들을 때였다. 진돗개 외에는 토종개 인식이 희미했기 때문이다. 하 이사장은 진짜 토종개가 어떤 모습인지 확인하기 위해 옛 그림을 연구하고 토종개가 등장하는 그림 전시회를 쫓아다니며 삽살개의 옛 흔적을 찾았다.
“조선시대 그림에서 백이면 백 진돗개처럼 귀가 쫑긋한 경우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대신 부드러운 인상과 순한 외형을 가진 토종개만 등장했습니다. 삽살개가 전통적인 토종개 모습에 가까운 것을 알 수 있죠.”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1992년에 삽살개가 천연기념물 제368호로 지정됐다. “조선총독부가 ‘내선일체'를 위해 일본 토종개인 시바견, 아키타견 등과 가장 비슷한 외형인 진돗개를 한국 토종개로 지정한 것은 1938년인데 삽살개는 1992년이니 많이 늦었죠.”
하 이사장은 그해 삽살개보존협회를 설립한 뒤 2010년 삽사리테마파크 개장과 재단법인 설립, 2013년 경산의 삽살개육종연구소 설립 등으로 조직을 늘리며 삽살개 등 토종개를 지금까지 1천 마리 넘게 분양하고 일흔을 넘긴 지금도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약 40년간 삽살개 복원과 토종개 연구에 매진해온 하지홍 이사장은 ‘반려'가 중요한 최근 흐름에 삽살개가 잘 맞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서양 견종이 사냥, 감시, 경비, 양몰이처럼 특정한 기능을 위해 육종된 것과 달리 삽살개는 정서적 안정감, 사람과의 교감 능력, 그리고 뛰어난 사회성을 갖고 있어 이를 잘 살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장점을 살려 삽살개를 활용한 동물매개치료 프로그램을 1999년부터 대구 대동병원과 추진해 효과를 입증했다.
하 이사장은 “삽살개는 큰 덩치와 풍성한 털 때문에 사람들이 처음에는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으나 곧 친근한 성격을 드러내며 사람들에게 신뢰를 줍니다. 특히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삽살개가 환자와 교류하는 과정에서 환자들은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끼고, 이는 교감 중심의 동물매개 치료 효과를 입증하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죠”라고 말했다. 삽살개를 만지고 교류하는 것만으로도 환자들에게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삽살개의 심리치유 효과에 대한 확신은 1998년부터 독도에 삽살개 두 마리를 파견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독도 근무자들과의 정서적 교감을 통해 외로움을 달래도록 돕고 있다. 또한, 한국의 토종개도 근무자와 함께 독도를 지킨다는 의미를 가진다는 설명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하지홍 이사장은 주저 없이 “동물매개 치료와 심리치유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도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런 배경에서 그는 올해 4월 서울 자치구 중 처음으로 서대문구에 토종개 두 마리를 기증해 지자체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반려견 매개 프로그램을 시도하도록 했다. 앞으로 더 많은 자치단체가 주민, 특히 청소년을 위해 동물매개 치료에 나서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어느 지자체든 요청해주시면 기꺼이 도와드릴 예정입니다.” 칠순을 넘은 ‘삽살개 아버지'의 간절한 염원은 삽살개 복원을 시작했던 30대처럼 여전히 불타고 있었다.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한겨레 금요 섹션 서울앤 [누리집] [페이스북] | [커버스토리] [자치소식] [사람&]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