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살에 쓸려내려가 쌓인 발렌시아 지역의 차량들/사진=연합뉴스 |
스페인 발렌시아 등 남동부 지역에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쏟아진 기습 폭우로 최소 205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는 가운데, 이 같은 대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습니다.
스페인 기상청에 따르면 당시 발렌시아 서쪽 치바에선 29일 새벽부터 8시간 동안 1m²당 491L의 비가 쏟아졌습니다. 그로 인해 강물이 범람하고, 주택이 침수되면서 대규모 인명·재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이는 이 지역의 통상 1년 치 강수량이라고 기상청은 설명했습니다.
기상학자들은 이번 폭우가 '고타 프리아'(gota fria·차가운 물방울)라고 불리는 기후 현상이 지구 온난화로 증폭되면서 발생한 것으로 분석합니다. 이 시기에 이베리아반도의 찬 공기가 지중해의 따뜻하고 습한 공기와 만나 강력한 비구름을 형성하는데, 기후 변화로 인해 지중해 공기의 온습도가 예전보다 더 높아지면서 더 강력한 비를 뿌렸다는 분석입니다.
하지만 기후 변화만으로 이번 대참사가 설명되기 어렵다는 견해가 많습니다. 특히 현지에서는 주민들이 재난을 피할 수 있도록 적시에 경보 시스템이 발동됐는지를 놓고 거센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스페인 기상청이 폭우 '적색경보'를 발령한 때부터 지역 주민들에게 긴급 재난안전문자가 발송되기까지는 약 12시간이 걸린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기상청이 경보를 적색으로 격상한 시각은 29일 오전 7시 36분인데, 주민들에게 첫 안전문자가 간 시각은 같은 날 오후 8시 12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이 발렌시아 비상대응센터는 오전 7시 45분 보도자료와 SNS에서만 통해 폭우를 주의하라는 메시지를 게시했습니다. 휴대전화 경보 전송에 관한 결정은 비상대응센터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중앙정부 대표 등으로 구성된 상급기관이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폭우로 침수된 길 청소하는 발렌시아 주민들/사진=연합뉴스 |
발렌시아의 한 주민은 홍수가 그의 차를 덮친 뒤에야 휴대전화로 대피하라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현지 언론에 전했습니다. 그는 "8시쯤, 한 시간 동안 목까지 물에 잠겨 진흙을 삼키고 있을 때, 경보 소리를 들었다"며 재난 문자의 늦장 대응으로 주민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전했습니다.
바르셀로나 도시 환경정의·지속가능성 연구소 소장 이사벨 앙겔로브스키는 홍수가 거세고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뒤늦게 발송한 문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꼬집었습니다.
안전문자의 내용 또한 너무 모호했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오후 8시 12분에 전송된 첫 문자는 "어떠한 종류의 이동도 피하라"는 간단한 내용만 담겼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뒤 오후 9시께 전송된 두번째 문자는 집에 머물거나, 강이나 협곡에 가까운 곳에 거주하고 있다면 더 높은 곳으로 이동하라고 안내했다고 전해집니다.
스페인 알리칸태대 기후관측소장인 호르헤 알시나는 사업장을 폐쇄하라고 권고하거나, 대피소에 가야할 주민들을 특정하는 등 구체적인 지침을 제공할 필요가 있었다며 이같은 정보가 담긴 신속한 문자는 엄청난 도움이 됐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경태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dragonmoon20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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