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방의 교육정책으로
세상을 바꾸는 마법은 없어
사회구조부터 변화시켜야
학벌만능주의 부추기는
노동시장 경직성 완화하고
대기업·중기 격차 줄여가야
세상을 바꾸는 마법은 없어
사회구조부터 변화시켜야
학벌만능주의 부추기는
노동시장 경직성 완화하고
대기업·중기 격차 줄여가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내신과 수능 교육과정 안내 문구가 빼곡하게 적혀 있는 한 학원 앞을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김호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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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국회 원구성이 시작될 무렵 나름 야망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 한 국회의원과 나눴던 짤막한 대화 한 토막을 소개한다. 기자가 물었다. “상임위는 어디를 마음에 두고 계신가요?” 나름 경제, 금융 분야에서 전문가 소리를 듣는 인물이기에 내심 기재위나 정무위 등의 답변을 예상했다. 하지만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교육위를 지망하려고 합니다. 나라를 한번 제대로 바꿔보려면 교육을 바꿔야겠더라고요.”
최근 이 대화를 다시 떠올리게 한 건 바로 한국은행의 이창용 총재다. 이 총재는 서울대 입학정원을 지역인구비례로 하자고 제안하는 등 연일 파격적인 교육 관련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은행 사령탑인 이 총재가 왜 갑자기 교육제도 개혁을 화두로 던졌을까. 그의 발언 속에 힌트가 있다. 이 총재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강남에 몰려 있는 사교육 강사와 대학 입시 코치를 두고 부모 사이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 경쟁이 주택가격과 가계부채를 끌어올리고 지역 불평등과 지방 인구 감소를 가속화한다”고 주장했다. 이 총재는 교육개혁을 통해 경제 불평등 심화, 지방소멸과 같은 대한민국의 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교육을 바꾸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교육이 나라의 운명과 미래를 바꾸는 핵심 변수라는데 이견을 다는 이는 거의 없다. 정권이 새로 들어설때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며 교육개혁을 주창하는 이유다. 하지만 수많은 교육개혁 시도에도 불구하고 학벌만능주의, 대학 서열화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교육생태계는 요지부동이다.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의 전환, 학생부종합전형 도입, 정시 확대 등 다양한 시도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그렇다면 쾌도난마와 같은 교육개혁 해법을 찾기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교육개혁이 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기초공사부터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돌아가는 게 오히려 지름길일 수 있다. 교육개혁을 통해 당장 세상을 바꾸겠다고 섣불리 덤비기보다 멀리 보고 교육개혁이 가능한 사회적 토양을 만들기 위해 밭을 갈고 거름을 주자는 얘기다.
교육개혁이라는 싹이 자랄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을 만드는데 많은 노력들이 필요하겠지만 가장 시급한 숙제를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노동개혁을 빼놓을 수 없다. 대학서열화를 공고히 하는 일등공신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노동시장의 경직성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크다. 또한 양 시장간 이동 가능성도 크지 않다. 이처럼 고착화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학벌만능주의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소위 명문대에 입학해야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 정규직으로 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자녀들의 안정적인 삶을 바라는 부모들이 앞다퉈 ‘대치동 라이드’에 나서는 이유다.
이번엔 기업 입장에서 보자.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은 미국 등과 달리 해고의 문턱을 크게 높여놨다. 일단 채용하면 저성과자, 부적격자라는 이유로는 쉽게 해고하기가 힘들다. 그러니 기업들이 채용 단계에서 대학간판이라는 이미 검증된 기준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대학간판의 가격을 지나치게 부풀려주고 있는 것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아지면 학벌은 부족해도 능력이 있는 친구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생길 수 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깨트리고 노동유연성을 강화하면 철옹성 같은 학벌만능주의도 조금씩 금이 갈 것이다. 노동개혁이 교육개혁 성공의 자양분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10일 뒤면 대한민국 교육의 최대 이벤트인 수능이 치러진다. 교육이 세상을 바꾸고, 세상이 교육을 바꾼다면 수능장으로 향하는 수험생들의 어깨도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손일선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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