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램리서치 등
美당국 규제 강화 따른 움직임
中부품 가격대 대체품 찾기 어려워...비용 상승 우려도
ASML "美 통제 강화 지속 압박할 것"
미국 정부가 중국 반도체 산업 전반에 대한 견제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는 가운데 미국 반도체 장비 제조사들이 자체 공급망에서 중국 업체를 배제하기 위한 준비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반도체장비 제조업체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와 반도체 식각장비 1위 기업 램리서치가 자사 공급업체들에 “중국산 부품을 (다른 기업 제품으로) 대체하지 않으면 공급업체 지위를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이들 공급업체 관계자들은 투자자나 주주 명단에 중국인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통보도 받았다고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두 기업은 이 같은 지침을 비공식적인 구두로 통보했으며 공식 문서나 계약서에는 포함하지 않았다.
두 기업 외에 뉴욕주에 있는 반도체 처리 시스템 개발사 비코 역시 공급업체에 새로운 중국산 부품 사용을 즉시 중단하고, 내년 말까지 기존 중국 공급업체와의 관계를 끊으라는 서면 지침을 보냈다. 공급업체들은 비용 상승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가격의 중국산 대체품을 찾기 쉽지 않아서다.
기업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반도체 산업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억제하기 위한 미 당국의 개입 결과로 해석된다. 미 당국은 안보상의 이유 등으로 첨단 반도체뿐만 아니라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을 통제해 오고 있다. 미 상무부는 자국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가 중국 공급업체에 기술 세부 사항 및 계획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라이선스를 취득하도록 하는 규정을 지난해 도입했고, 내년까지 현재 공급업체를 유지할 수 있는 임시 라이선스를 부여했다. 올여름에는 모회사가 중국에 있는 중국 밖 공급업체도 이러한 규정이 적용된다고 명시했다. 미 의회는 반도체법의 지원 아래 건설된 미국 공장에서 중국산 장비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미 당국이 점차 규제를 강화하면서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는 최근까지도 수출 통제 제재를 위반했다는 혐의로 사법 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지난 5월에는 한국 자회사를 통해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중신궈지(SMIC)에 반도체 제조장비를 수출했다는 혐의로 지난해 11월에 이어 두 번째 소환장을 받았다.
동시에 미국은 한국·대만·일본·네덜란드 등 동맹국에 반도체 장비 수출은 물론 이미 판매한 반도체 장비에 대한 유지·보수 서비스도 중단하도록 압박하는 등 대(對)중 반도체 견제 전선에 끌어들이고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노광장비 기업 네덜란드 ASML의 크리스토프 푸케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한 행사에서 "지정학적 상황을 보면 미국이 동맹국들에 더 많은 통제를 가하라고 계속 압박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고 우려 섞인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중국 시장을 배제하면 반도체 장비 시장 전체가 불황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올해 2분기 ASML은 중국에서 전체 매출의 49%를 올렸고, 일본 도쿄일렉트론의 전체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9.9%에 달했다. 같은 기간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램리서치 중국 매출 비중 역시 각각 32%, 39%를 기록했다.
중국 매출 비중이 큰 것은 중국이 추가 제재에 대비함과 동시에 반도체 자립에 속도를 내기 위해 올해 들어 반도체 장비 구매를 대폭 늘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상반기에만 250억 달러(약 33조원) 규모의 반도체 장비를 사들였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90% 증가한 수준으로 한국과 미국, 대만 등 3개국의 장비 구매액을 모두 합한 것보다도 많다.
다만 중국 기업들도 곤경에 처한 건 마찬가지다. 선전 소재 푸촹(富創)정밀은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에 납품할 계획으로 올해 싱가포르 공장을 설립했으나, 아직까지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에서 공급 승인을 받지 못했다. 푸촹정밀 싱가포르 사업 담당자인 대니 로우 이사는 "공장의 (수출) 범위를 미국 장비제조업체를 넘어 전 세계 장비제조사로 확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중국 부품업체들도 3국에 합작회사나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등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한편 미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WSJ은 "미 정부는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점점 더 엄격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며 "두 대통령 후보 모두 중국과 무역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공약했고, 특히 반도체 산업은 국가 안보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중요하게 여겨진다"고 짚었다.
아주경제=이지원 기자 jeewonlee@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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