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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7 (목)

[김숨의 위대한 이웃]선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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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50분. 선희씨는 교실 문을 연다. 연필 냄새, 지우개 냄새, 나무책상 냄새, 책 냄새… 그녀는 어떤 고요한 의식을 치르듯 교실 안에 고여있는 냄새를 맡는다. ‘좋다!’ 그녀는 창가의 화분들에 눈길을 준다. ‘설렘’이라는 꽃말을 가진 겹카랑코에와 여러 다육이들. 그녀는 스무 개의 빈 나무책상들과도 눈맞춤 같은 의식을 치르고 나서야 마침내 교실 안으로 들어선다. 낮고 작은 나무책상마다 전날 아이들이 쓰고 지우던 연필과 지우개가 놓여 있다.

그녀는 교실에 고인 냄새를 한 번 더 깊이 들이마신다. ‘나의 교실’이자 그녀가 1년 동안 함께할 ‘아이들의 교실’. 그녀는 창문을 열고, 다육이들에게 물을 주고, 차분히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기다린다. 시간이 되면 아이들이 하나씩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와 빈 나무책상을 채울 것이다. 초등보육전담사인 그녀는 나의 교실이 ‘있는’ 게 무척 좋다. ‘내가 청소하고, 내가 아이들을 맞고, 아이들 간식을 챙겨주고,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면 귀가시키고….’ 그 교실을 학교에선 ‘돌봄교실’이라 부른다.

교실은 배움의 공간이다. 돌봄교실은 배움의 공간이자, 쉼의 공간이다. 배움에 쉼이 더해진 공간인 것이다. 아이들이 다투지 않고 잘 어울려 놀면 몇 시간이고 놀게 해주는 공간. 읽고 싶은 책을 몇 시간이고 읽을 수 있는 공간. ‘맘껏’을 추구하는 자유로운 교실. 그래서 그녀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과 장난감을 잘 살펴서 교실에 비치해놓는다. 학용품, 어휘력 문제집, 보드게임 등등도. 돌봄교실에 오는 아이들은 부모가 맞벌이거나, 한 부모 가정의 아이들이거나, 조손 가정 아이들이다. 방과 후 집에서 돌봄이 어려운 저학년 아이들이 돌봄교실에 들어온다. 집에 보호자가 있는 아이들은 집으로 가 간식을 먹고 투정도 부리며 온전한 쉬는 시간을 갖는다. 돌봄교실에 오는 아이들은 교실을 떠나 다시 (돌봄)교실로 온다. 그래서 돌봄교실 아이들에게 긴 쉼표 같은 쉼을, 이완의 시간을 주어야 한다.

1974년생인 그녀는 흔히 말하는 경단녀(경력단절여성)였다. 둘째를 낳고 내 일을 찾고 싶었다. 교원자격증과 보육교사자격증이 있고, 아이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자신에게 적합한 일을 찾다 보니 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그때 나이가 이미 마흔중반. 초등보육전담사가 돼 하루에 2, 3시간 수업을 진행했다. 그 시간 안에 그리기와 만들기 같은 수업을 진행하고, 간식을 먹이고, 귀가지도를 했다. 귀가시간이 다 달라 5분 수업하다 간식 먹이고, 또 5분 수업하다 귀가시키고, 간식 먹이고, 귀가시키고, 학부모 전화 받고…. ‘다시 찾은 내 소중한 일’을 즐겁게 했지만 돌이켜보면 ‘압축노동’이었다. 정부의 일자리 창출로 만들어진 직업이고, 그녀에게 딱 맞는 직업이었지만, 불합리한 노동이었다. 초등보육전사들이 함께 목소리를 낸 덕분에 노동시간은 주 20시간이 되고, 40시간이 됐다. 무엇보다 안정적인 ‘내 교실’이 생겼다.

그녀에게 가장 만족감을 주는 시간은 ‘귀가하는 학생이 없는 골든타임’이다. 아이들과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뭔가를 집중해서 함께할 때 행복하다. 20명 아이들의 귀가시간과 간식시간이 다 달라 골든타임은 한 시간 남짓.

그녀가 생각하기에 좋은 선생님은 권위가 있어야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권위는 아이들이 주는 것이다. 선생님이 갖고 싶다고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밀착해서 아이들을 세심히 관찰하다 보면 엄마도 모르는 걸 알게 된다. ‘저 선생님은 우리 엄마도 모르는 걸 알고 있네.’ ‘저 선생님은 날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네.’ 그런 것들이 모여 아이들에게 신뢰를 주고, 신뢰가 깊어지면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권위를 주는 것 같다.

그녀에게 학부모와의 소통은 무척 중요하다. 모르고 있는 아이의 기질과 행동을 학부모에게 이해시키려 노력한다. 그녀는 마음속에서 샘솟는 사랑을 일부러 안 보여주곤 한다. 교실의 질서를 위해, 예의를 가르치기 위해. 선생님은 때로는 아이에게 ‘미움을 살 자세’도 돼 있어야 한다. 어느덧 시간은 낮 12시30분, 정규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떠난 아이들이 (돌봄)교실로 올 시간이다. 빈 나무책상들은 하나씩 저마다의 색깔로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들로 채워질 것이다.

경향신문

김숨 소설가


김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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