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03 (화)

중국에선 35세 정년퇴직, 소비 여력이 없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시장 잡아먹는 ‘공동부유’ 정책이 중국 경제 망쳐


# 베이징 톈안먼 앞 도로를 따라 펼쳐진 대형 상권 ‘전문대가’. 청나라 시기 조성된 이곳은 오랜 역사와 함께 뛰어난 미관을 자랑해 베이징 관광의 ‘필수 코스’로 꼽히는 지역이다. 특히 전문대가 주변 서양식 근대 건물들은 중국 정부가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상당한 공을 들이는 곳이다. 스타벅스, 무지호텔 등 외국인이 선호하는 브랜드로 건물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중국 정부 노력이 무색하게 상권 인근에서 외국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코로나19 유행 여파, 반간첩법 시행 등으로 중국 내 외국인이 상당수 빠져나간 여파다. 상권 대부분이 사람이 없어 썰렁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전문대가 일대에서 사람이 붐비는 곳은 중국인 자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점포가 많은 중심 상권 외에는 없다. 베이징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국인 자영업자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베이징 내 외국인이 눈에 띄게 줄었다. 한국 사람이 많이 모여 살던 ‘왕징’ 일대도 한국인이 쫙 빠졌다. 각종 규제가 강화된 탓에 (중국에) 돌아오려던 외국인들도 포기하는 모양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중국 경제가 부침을 겪는 배경으로 현지에서는 3가지 원인을 제시한다. 시진핑 주석 3연임과 함께 도입된 ‘공동부유 정책’, 반간첩법 시행 등으로 인한 외국인 투자 축소 그리고 사회 불안 기조 강화다. 세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며 침체가 길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매경이코노미

중국 베이징 톈안먼 인근에 위치한 ‘전문대가’ 상권. 외국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중국인이 찾는 점포만 사람이 붐빈다. (베이징 = 반진욱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원인 1 성급했던 공동부유

부동산·플랫폼 등 성장동력 죽여

경기 침체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받는 요인은 단연 ‘공동부유론’이다. 2연임까지만 해도 ‘중국몽(夢)’을 내세우며 외연 확장에 집중하던 시진핑 정부는 3기 시작 후 ‘다 같이 잘 살아야 한다’는 뜻의 공동부유 정책을 본격 도입하기 시작했다.

중국 당국은 시진핑 3기 정부 출범 전인 2021년부터 공동부유론의 분위기를 잡았다. 언론 등을 통해 공동부유를 저해하는 공공의 적을 셋 지목했다. 부동산과 플랫폼 그리고 사교육 업체다. 부동산 업체는 투기를 조장해 인민이 잘 곳을 뺏는 탐욕스러운 사업자로 몰렸다. 알리바바, 바이트댄스 등 플랫폼 업체는 독과점을 무기로 떼돈을 버는 적폐로 낙인찍혔다. 사교육 업체들은 공교육을 위협하는 불량 산업으로 전락했다. 3년에 걸쳐 철저히 규제했다.

결과는 처절한 실패였다. 수요가 급감하며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가는 자금이 막혔다. 이는 곧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이어졌다. 중국 증시를 이끌던 플랫폼 업체 성장을 막자 중국 증시는 성장세를 멈췄다. 공동부유 정책을 실시한 3년간 부동산 가격과 주가 하락 여파로 중국 GDP의 48%에 달하는 시가총액이 날아갔다. 중국은 금융 시장 발달이 늦어 부동산이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됐다. 중국 중산층 대다수가 부동산에 자산이 묶여 있다. 부동산 가격 하락은 중산층 자산이 급감하는 효과를 불러왔다.

중국 정부도 ‘공동부유’의 실패를 인정하는 모습이다. 2024년 들어 모든 정부 정책 문서에서 ‘공동부유론’ 단어가 사라졌다. 중국 정부는 부동산 규제를 모두 풀었다. 알리바바 독점 규제도 해제했다. 내수 진작을 위한 각종 정책을 도입하고 있지만 반등 속도는 느리다.

원인 2 빠져나가는 외국 자본

미국과의 분쟁, 반간첩법 여파

중국 경제에서 외국 자본이 차지하는 기여도는 상당하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중국 외자 기업의 중국 전체 GDP에 대한 기여도 비중은 10%에 달한다. 때문에 오랜 기간 중국 정부는 외국 자금 투자 유치를 위해 상당한 공을 들여왔다.

그러나 2023년부터 중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액(FDI) 증가액이 줄어들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갈등 심화, 반간첩법 시행 등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상당수 외국 기업이 중국을 떠난 여파다.

중국 국가외환관리국(SAFE)은 최근 국제수지 잠정치를 발표하면서 외국 기업의 2023년 대중국 FDI가 330억달러(약 44조원) 증가했다고 밝혔다. 1993년 275억달러(약 36조6000억원) 이후 최저 수준이다. 2022년 대비 82% 줄어든 수준이고, 2021년(3440억달러)과 비교하면 10분의 1도 안 된다.

2023년 3분기에는 중국에 대한 FDI가 1998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하기도 했다. 4분기에 소폭 증가세로 돌아섰지만, 이 기간 유입된 신규 자금은 175억달러에 그쳤다.

원인 3 커지는 미래에 대한 불안

저축만 하는 중국 MZ

부실한 사회안전망도 도마에 오른다.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지만, 기업 시스템만 따지고 보면 한국보다 더 자본주의에 가까운 국가다. 정년이 확고하게 보장된 회사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국영기업이 유일하다. 민영 기업은 법의 보호가 무색할 정도로 유연성이 높다. 일례로 ‘따이창(대장·大場·큰 공장이라는 뜻)’이라 불리는 텐센트, 샤오미, 화웨이 등 테크 기업은 평균 퇴직 연령이 35세다. 일부 임원을 제외하면 상당수 직원이 35세쯤에 회사를 나온다. 중국 금융권은 일정 목돈을 지원하는 희망퇴직 같은 제도가 없다. 과거 경기가 좋을 때는 이른 퇴직이 큰 문제로 작용하지 않았다. 창업이나 재취업을 통해 문제없이 생계를 해결했다. 공동부유 도입 이후 경기가 죽으며 상황이 바뀌었다.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중국인은 ‘소비’ 대신 ‘저축’을 택했다. 고착화된 불안을 해소해주지 않으면 아무리 돈을 풀어도 내수 진작은 어렵다는 게 현지 중론이다.

인터뷰 | 정영수 코트라 상하이 무역관장
“중국 과거와는 달라…부양책 이후 회복세 기대”
매경이코노미

정영수 코트라 상하이 무역관장은 중국에서 오랜 기간 활동한 ‘중국통’이다. 2022년부터는 상하이 무역관장으로 취임, 중국 현지에서 한국 기업인을 적극 돕고 있다. 정 무역관장을 상하이에서 만나 중국 경제의 현황에 대해 물어봤다.

Q. 중국 현지에서 체감하는 경기 분위기는 어떤가.

A. 중국 경제가 한창 성장하던 2008~ 2011년 상하이 무역관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활력이 떨어진 느낌이다. 전체적으로 도시가 차분하고 조용하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부양책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조금씩 살아나는 모양새다.

Q. 중국 부동산 상황이 좋지 않다는데.

A. 몇 달 전만 해도 전반적으로 좋지 않았다. 상하이의 경우 집값이 많이 빠졌고, 부동산 거래 자체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다만, 최근 중국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부동산 시장이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가 생기면서, 거래량도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중국 정부의 추가 대책에 따라 부동산 시장의 회복세가 더 빨라질 수도 있다고 본다.

Q. 외국 기업의 중국 투자가 줄었나.

A. 15년 전 상하이에 근무할 때는 중국에 투자하고자 하는 한국 기업이 줄지어 있었지만, 현재는 그때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코로나 이후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 상담은 급감했다. 중국을 둘러싼 다양한 외적 요소들 때문에 기업들은 투자에 더욱 신중해졌을 것이며, 더불어, 중국 기업의 경쟁력이 성장한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한국 투자에 관심을 보이는 중국 기업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 역시 중국 기업의 경쟁력이 성장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흥미로운 점은, 예전에는 값싼 노동력 등 생산 요소가 한국 기업의 주요 중국 진출 요인이었다면 최근에는 중국 소비력, 한류 등 소비 요소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시장으로써 중국의 포지셔닝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Q. 향후 중국 경제를 어떻게 바라보나.

A. 위기는 있지만, 나라가 휘청거릴 수준이라고 보기 힘들다. 그동안 중국은 숱한 위기를 넘겨왔다. 5% 성장이 어렵다고 하지만, 4% 성장만 해도 연 8000억달러가 넘는 성장 규모다. 우리가 중국 시장을 지속적으로 중요하게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만, 기존의 경제 발전 방식과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한 시기라 중국 당국도 고민이 많을 것이다.

[상하이·베이징 =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3호 (2024.11.06~2024.11.12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