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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7 (목)

“고려아연 유상증자 신고서 다시 써와라” 금감원의 초스피드 정정 요구 속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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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10월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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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묘수’인 줄 알았던 유상증자가 금융감독원에 막혔다. 고려아연은 구조를 일부 바꿔 재차 유상증자 계획을 보고할 수는 있으나, 금감원의 지적 사항이 워낙 방대한 탓에 정정해도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7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고려아연의 증권신고서에 대해 이달 14일까지 검토할 수 있었으나 예상보다 빨리 결론내렸다. 유상증자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10거래일 동안 금감원의 정정 요구가 없으면 회사는 계획대로 유상증자를 단행할 수 있다. 고려아연이 지난달 30일 신고서를 제출한 터라 이달 14일까지 지적을 받지 않으면 유상증자를 진행할 수 있었는데 금감원은 6일에 제동을 걸었다.

통상 금감원이 정정 요구를 할 때는 증권신고서의 효력이 발생하기 1~2일 전에 이뤄지는데, 고려아연의 경우는 6거래일 전이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시장의 관심도가 높다 보니 최대한 빨리 심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올해 들어 코스피 상장 기업 중 유상증자를 하겠다며 금융당국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곳은 14곳으로 이 중 고려아연, 금양, 미래산업 등 3곳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지당했다. 유상증자로 코스피 상장사가 금감원으로부터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를 받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고려아연은 유독 지적받은 사항도 많다.

◇ 지금 유상증자한다고? 왜?… 현시점 필요성 설명해야

금감원이 고려아연의 증권신고서에서 첫 번째로 지적한 건 ‘유상증자 추진 경위 및 의사결정 과정’이다. 고려아연은 유상증자를 하게 된 이유와 결정하기까지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자세히 공시하지 않았다. 다만 유상증자로 조달한 자금을 차입금을 상환하는 데 쓰겠다고 밝혔다.

고려아연은 이번 유상증자가 성공하면 2조5009억원의 자금 중 빚을 갚는 데에 2조3000억원, 온산제련소에 대한 시설 투자 1351억원, 해외 풍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지분 투자로 658억원을 쓰겠다고 했다. 대부분의 자금이 차입금 상환에 쓰이는 만큼 결국 부채를 줄이기 위해 유상증자를 하겠다는 얘긴데, 이는 당장의 필요성을 설명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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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장형진 영풍 고문,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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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선 고려아연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경영권을 두고 분쟁 중인 만큼 이들의 지분율을 희석하기 위해 유상증자를 결정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양측의 지분 다툼은 공개매수에 대항 공개매수까지 이어질 정도로 치열했다. 공개매수란 주주가 회사의 경영권 확보 등을 이유로 일정 기간 그 외의 주주에게 매력적인 가격을 제시하고 주식을 장외 매입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MBK파트너스 측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38.47%로, 현 경영진인 최 회장 측(35.97%)보다 2.5%포인트(P) 높다. 공개매수로도 둘 다 과반을 차지하지 못해 지분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금감원이 유상증자의 타당성을 판단하진 않는다.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고 투자 위험을 공시하면 금감원이 고려아연의 증권신고서를 거절할 명분은 없다.

◇ 공개매수 끝난 후 유상증자 계획했다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

주관사의 기업 실사 과정은 금감원의 두 번째 지적 사항이다. 고려아연은 유상증자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면서 대표모집주선회사인 미래에셋증권으로부터 지난달 14일부터 29일까지 실사를 받았다고 했다. 실사란 ▲증권의 주요 권리 내용 ▲투자 위험 요소 등 증권신고서에 기재된 항목이 법과 절차에 따라 제대로 기재돼 있는지 증권사가 확인하는 과정이다.

고려아연의 문제는 실사 시기다. 회사는 자사주에 대한 공개매수를 진행했는데 그 시기가 지난달 4일에서 23일로 미래에셋증권의 유상증자 실사 기간과 겹친다. 이럴 경우 고려아연이 공개매수를 진행하면서 제출한 증권신고서는 거짓이 된다. 고려아연은 해당 증권신고서를 작성하면서 “공개매수 후 회사의 지배구조, 재무구조, 사업 내용 등에 변경을 가져오는 구체적인 장래 계획은 수립하지 않고 있다”고 공시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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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용일 금융감독원 부원장이 10월 3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고려아연, 두산 등 관련 현황 및 향후계획 브리핑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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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은 뒤늦게 날짜를 착각해 공개매수신고서의 실사 기간을 잘못 적었다고 밝혔다. 실제 실사 기간은 공개매수가 끝난 23일 오후부터 시작됐다는 게 회사의 입장이다. 설사 그렇더라도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과정이 매끄럽지는 않다는 게 금감원의 시각이다. 고려아연이 유상증자 신고서를 제출한 게 지난달 30일이기 때문에 넉넉히 잡아도 5거래일간 전체 주식의 20%에 달하는 대규모 증자를 결정한다는 게 합리적이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금감원의 ‘자본시장 현안 관련 브리핑’에서 함용일 자본시장·회계 부원장은 “이사회가 (공개매수 진행 후 유상증자 등을) 다 아는 상태이고 순차적으로 일을 진행만 한 것이라면 공개매수신고서에 중대한 사항이 빠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 이례적 수준의 청약 ‘캡’… 공모 방법 정정 요구로 이어질 수도

금감원의 세 번째 지적 사항은 청약 한도 제한 배경에 대한 설명 미흡이다. 고려아연은 유상증자를 하겠다면서 청약자마다 한도를 뒀는데, 특별 관계자를 포함해 총 공모주식 수의 3%(11만1979주)다. 청약자별로 청약 한도를 설정하는 건 간혹 있었으나 고려아연처럼 특별 관계자까지 포함해 제한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고려아연은 증권신고서에서 청약 한도를 정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청약자와 그 특별관계자의 합산 청약 수량이 3%를 넘을 때 청약 수량을 기준으로 안분해 계산하겠다는 통보가 전부다. 다만 언론 등을 통해서는 “국민주가 되기 위해”라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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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로고/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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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은 특수관계자까지 포함한 청약 한도 제한은 투자자의 신주인수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소지가 있어 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과거 법원에서도 비슷한 판결이 있었다. 2003년 현대엘리베이터는 KCC 등으로부터 경영권을 위협받자 유상증자를 단행했는데, 이때 1인당 청약 한도를 300주로 제한했다. KCC가 유상증자를 통해 지분을 높이는 걸 막기 위해서다. KCC는 법원에 현대엘리베이터의 신주 발행을 막아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KCC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지적 사항에서 공모 방식은 빠졌는데, 추후 고려아연이 정정 신고서를 제출할 때 지적될 소지도 있다. 이 역시 청약 제한 배경 때문이다. 유상증자는 기존 주주의 지분이 희석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 주주배정이 원칙이다.

하지만 고려아연은 일반 공모 즉, 주주가 아닌 투자자도 유상증자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뒀다. 금감원은 이사회의 결의로 일반 공모를 택할 순 있지만 청약 한도를 씌운 것이 공모 방법의 취지에 부합하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청약 제한 한도 배경과 관련해 (공모 방법이 적절한지) 볼 것”이라며 “당장 (공모 방법이 잘 됐다, 아니면 안 됐다) 판단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 상폐 가능성 없다고 했다가 13거래일 만에 바뀐 고려아연의 의견

마지막 지적 사항은 유상증자 증권신고서와 공개매수신고서와의 차이점이다. 지난달 11일 고려아연은 자사주 공개매수를 진행하면서 회사가 상장폐지 요건에 해당할 가능성이 없다고 공시했다.

하지만 같은 달 30일 제출한 유상증자 증권신고서에선 “(경영권 분쟁의 상대방인 MBK파트너스 측의) 공개매수가 종료된 후 소액주주 지분이 축소될 위험이 있다”며 “거래량과 및 유동주식 수 감소로 인해 주식 분산 요건 및 거래량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관리종목 또는 상폐 종목으로 지정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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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이 10월 11일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자사주 공개매수신고서에서 회사가 상장폐지 요건에 해당할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전자공시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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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거래소 규정에 따르면 최근 사업연도 말 기준 ▲일반주주 수 200명 미만 ▲일반주주가 보유한 주식 수가 유동주식 수의 5% 미만(200만주 이상인 경우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 등 2가지 조건 중 하나를 2년 연속 충족하거나 ▲2개 반기 연속 월평균 거래량이 유동주식 수의 1% 미만일 때 상폐 종목으로 지정된다.

고려아연은 자사주 공개매수 기간 “자사주 공개매수에 실질적으로 응할 수 있는 유통주식 물량은 (발행주식의) 15% 안팎으로 추산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리고 고려아연·베인캐피탈의 공개매수 목표 물량이 20%였다. 유통 중인 것으로 추정되는 주식 전부를 사들이겠다는 것이라, 거래량 미달에 따른 상폐 가능성은 이때 이미 언급됐어야 한다. 당시에는 공개매수신고서에 상폐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가, 유증 신고서에서는 이를 뒤집은 것이다.

또 앞서 언급한 재무구조 변동에 대해서도 유상증자 증권신고서와 공개매수신고서의 설명이 다르다. 공개매수신고서엔 재무구조 변동을 일으킬 만한 장래 계획은 없다고 했지만 곧이어 2조5000억원의 유상증자를 발표해서다.

이에 따라 시장의 관심은 고려아연이 유상증자를 밀어붙이기 위해 금감원의 지적을 모두 수용해 정정신고서를 낼지에 쏠린다. 금감원 업무에 정통한 관계자는 정정신고서의 통과 가능성에 대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그간 신념으로 밀어붙인 사안이 많다”며 “고려아연도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고려아연이 충분한 설명을 갖췄더라도 금감원의 문턱을 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고려아연이 3개월 이내에 수정한 증권신고서를 금감원에 제출하지 않으면 유상증자는 없던 일이 된다.

문수빈 기자(bea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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