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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7 (목)

尹 정부 외교 실력, ‘트럼프 2기 활용법’으로 진짜 성적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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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동맹과 가치외교에 기반을 둔 윤석열 정부 외교에 동맹조차 거래주의적으로 인식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의 재선은 커다란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트럼프 1기에서 얻은 ‘학습효과’를 기반으로 하되, 한층 치열해진 미·중 경쟁 등 달라진 대내외적 환경을 고려해 높아진 한국의 가치를 각인시키는 게 현명한 ‘트럼프 2기 활용법’의 핵심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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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새벽(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 팜비치 컨벤션센터에서 연설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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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문재인 정부는 북한 문제를 중심에 둔 대미 외교를 펼쳐 미 행정부 당국자들로부터 “북한 문제만 다루면 다른 불만이 없는 나라(one policy country)”라는 평가를 듣곤 했다. 하지만 트럼프 2기에서는 미국도, 한국도 달라졌다. 미·중 간 전략 경쟁의 차원이나 미국의 대중 압박 강도가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고, 윤 정부는 일찌감치 ‘안미경미(안보와 경제 모두 미국을 중심에 둠)’로 노선을 설정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동맹과 우방을 규합한 연대의 형태로 중국을 압박하는 방식을 택했다면, 트럼프는 강력한 관세 정책을 무기 삼아 직접적으로 중국에 제재를 가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동맹의 팔을 비트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 게 트럼프다. 1기 때도 중국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의 장비를 사용하는 한국 기업들을 집요하게 압박했다.

다만 향후에도 첨단 분야에서 가장 강도 높은 미·중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큰 가운데 ‘K반도체’ 등 한국의 산업 역량이 실리주의자인 트럼프를 상대로 협상력을 높이는 키가 될 수 있다. 트럼프가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지원법(칩스법)을 비판하면서 한국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등이 축소될 우려도 나오지만, 중국과의 경쟁에서 압도적 우위를 지키려면 한국은 필수적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이 ‘트럼프의 미국’에 도움이 되는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건 북핵 문제 등에서 한국을 배제하지 못하도록 지렛대 역할을 하는 등 주요 외교 현안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트럼프 1기 때 외교부 장관 특보, 차관보 등을 지낸 김건 국민의힘 의원은 “중요한 것은 트럼프의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달성하는 데 한국이 꼭 필요한 존재라는 점을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트럼프는 첫 입장은 무리하게 내세우지만 결국은 실용적인 사업가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지, 지나치게 좌불안석하거나 노심초사하면 오히려 협상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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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열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외교부에서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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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비 문제도 마찬가지다. 한·미는 지난달 타결한 12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통해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년짜리로 첫해 총액을 전년에 비해 8.3% 인상한 뒤 매년 물가에 연동해 분담금을 올리기로 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선거 기간 내내 한국을 ‘머니 머신’ 등에 비유하며 방위비 대폭 증액을 주장한 만큼 12차 SMA를 파기하고 재협상을 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재협상을 하더라도 11차 SMA 때보다 한국 측 부담을 줄인 12차 SMA를 기준점으로 삼는 게 한국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측면이 있다. 국내 비준 절차 등을 끝마쳐 일단 12차 SMA를 빨리 발효하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7일 국회에서 "(미국 측의) 재협상 요구가 설사 있다 하더라도 마무리 지은 협상 결과를 토대로 논의를 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재임시 외교 현안에 깊숙하게 관여했던 전직 정부 고위 당국자는 “가장 우려되는 게 방위비 문제인데, 우리 절차가 늦어져서 트럼프가 꼬투리잡을 빌미를 주기 시작하면 해결하기 굉장히 어려운 현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방위비 증액 압박과 관련,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은 “한·미 동맹과 한·미·일 안보 협력이 트럼프가 중시하는 대중국 견제에 필수불가결하다는 점을 이해시켜야 한다”며 “방위비분담금 인상 대신 국방예산의 대폭 증액을 통해 북핵 대응을 위한 독자적 역량을 확보하는 등 창의적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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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7일 대통령실 관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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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행정부를 거치며 공고해진 한·미·일 간 안보협력 구도는 트럼프 2기에서도 자산이 될 수 있다. 트럼프 1기 때도 미국은 3국 협력에 대한 의지를 보였지만,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아 무산됐다. 하지만 윤 정부 들어 한·일관계가 좋아지며 3국 협력이 동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첫 통화에서 "한·미·일 협력이 캠프 데이비드 3국 협력 체계로 구축될 수 있었던 데에는 1기 재임 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기여도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한·미·일 협력은 트럼프 당선인이 기업 위주로 해서 먼저 시동을 걸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8월 캠프 데이비드 3국 정상회의 이후 3국 협력은 북핵 문제 등 전통적인 안보 이슈를 넘어 공급망 등 경제안보나 인적 교류 등 사회 분야로 확장됐고, 실질적 제도화의 수순을 밟고 있다. 이는 미국으로서도 활용할 가치가 큰 소다자 동맹이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한·일이 방위비나 북핵 대응 등 현안에서 같은 입장을 견지하며 트럼프의 ‘폭주’를 막을 상호 우군이 될 수도 있다.

손열 동아시아연구원장(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은 “소다자 협력의 틀 안에서 트럼프의 불확실성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나라들이 힘을 합쳐 미국을 결속(binding) 내지는 길들이기(taming)하려는 시도가 가능할 것”이라며 “트럼프 행정부가 지나치게 자국 중심적으로 선회하지 않도록 묶어두기 위한 동맹 간 협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트럼프의 귀환으로 오히려 ‘외교의 시간’이 더 절실해진 가운데 정부 외교안보라인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미 대선을 불과 채 석 달도 남기지 않은 지난 8월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을 새로 임명했다.

외교보다 안보에 방점을 찍을 시점이라는 설명이었지만, 신원식 국가안보실장-김용현 국방부 장관으로 이어지는 강경파 군인들의 전면 배치가 주는 함의는 컸다. 트럼프 2기에서 이런 진용으로는 대미 외교에서 한계가 드러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의회까지 공화당이 석권한 가운데 공식·비공식 라인을 모두 동원해 워싱턴 조야를 상대로 적극적 대미 외교를 펼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미 대선을 앞두고) 정부는 양 후보 측 진영 인사를 100번 넘게 접촉했다"며 이날 윤 대통령과 트럼프 당선인의 통화에 대해 "많은 불확실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도 관계를 안정화시키겠다는 의지가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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