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부산 해역에서 인양선이 폐어구를 끌어올리고 있다. 이홍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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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
선장의 신호가 떨어지자 인양선의 모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모터는 천천히 도르래에 걸린 쇠줄을 감아올렸다. 모터 소리와 쇠줄이 도르래와 마찰하는 소리가 섞여 30t 크기의 선박 전체를 울렸다. 배는 마치 거대한 낚싯대처럼 바닷속에서 무언가를 건져 올리고 있었다.
인양선이 굉음을 내기 시작한 지 5분쯤 지나자 잠잠하던 바다 표면이 하얗게 부글거리기 시작했다. 수확물이 표면 근처까지 올라왔다는 신호로, 어획물이 많을수록 흰 거품이 많이 생겨 어부들에겐 ‘좋은 징조’로 불린다. 잠시 뒤 쇠줄 끝에 달린 갤로스(끌개)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자 흰 거품이 금세 검은 펄로 뒤덮였다. 배가 건져 올린 것은 물고기도, 문어도, 조개도 아닌 폐어구였다.
인양선이 폐어구를 건져 올리고 있다. 이홍근 기자 |
지난 8일, 부산 강서구 천성항에서 고기잡이배를 타고 10분 정도 나가자 인양선에 탄 인부들이 한창 폐어구를 수거하고 있었다. 폐어구는 인간이 바다에 버린 그물, 통발 등 어업 도구를 말한다. 쓸모가 다해 버려졌지만, 폐어구는 바닷속에 잠기고서도 일을 쉬지 않는다. 물고기가 갇혀 그대로 썩어들어가고, 썩은 사체가 미끼가 돼 다른 해양생물을 끌어들인다. 바닷속에 방치된 폐어구가 늪처럼 근처의 생명을 빨아들이는 것이다.
통발 사이에 낀 채 죽은 볼락. 이홍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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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자연기금(WWF)은 이런 ‘유령 조업’을 막기 위해 2021년부터 한국어촌어항공단과 협약을 맺고 전국 곳곳에서 해양쓰레기 수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1년 연평도 어장에서 105t, 2022년 제주도에서 41t, 지난해 양양에서 약 40t을 수거했다. 올해는 오는 25일 열릴 플라스틱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5)를 앞두고 부산이 사업지로 선정됐다.
이날 하루동안 인양선이 수거한 폐어구는 약 3t이다. 플라스틱과 썩은 어패류로 가득한 통발, 로프, 그물이 썩은 오니(오염물질이 섞인 진흙)와 뒤엉켜 비릿한 냄새를 풍겼다. 인양선을 운영하는 한길해양 윤성구 대표는 “표층에 있는 생물이 폐사해서 썩어 오니 펄이 된 것”이라면서 “시간이 갈수록 역한 하수구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폐어구에 걸린 사체가 바닥을 덮어 산소를 차단하고, 통째로 썩어들어가면서 ‘바다의 고름’과 같은 오니 펄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인양선이 건져 올린 해양쓰레기. 통발, 로프, 오탁방지망이 어지럽게 얽혀있다. 이홍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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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어구를 정리하는 인부. 이홍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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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버린 다른 해양쓰레기들도 눈에 띄었다. 윤 대표는 폐어구들 사이로 오니를 잔뜩 머금은 천을 가리키며 “가거대교 공사에 쓰인 오탁방지막”이라고 말했다. 공사 과정에서 오니를 포함한 탁수 확산을 막기 위해 설치하는 천막인데, 그대로 바다에 버려 오니를 생성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윤 대표는 “현장에서 오탁방지막이 꽤 나왔다”면서 “토가 쏠릴 정도의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WWF와 한국어촌어항공단이 올해 부산 해역에서 수거한 쓰레기는 약 50t 정도로 추정된다. 쓰레기는 항구로 옮겨진 뒤, 수거 업체를 통해 처리된다. 공단 관계자는 “재활용, 소각, 매립 등의 방법으로 처리한다”면서 “재활용과 소각·매립 비율은 약 10대 9정도”라고 말했다.
WWF 관계자는 “매년 약 1000만t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바다로 유입되면서 해양 오염 문제가 날로 악화되고 있다”면서 “특히 바다에 방치되거나 유실된 폐어구가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WWF는 앞으로도 지속 가능한 바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통발에 갇혀 폐사한 해양생물들. 이홍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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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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