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대법원. /조선일보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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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끼리 이혼 및 재산분할 청구...양측 모두 대리인 선임
사건의 배경은 이렇다. 소송당사자인 A씨(남성)는 2021년 6월 별거 중인 배우자를 상대로 이혼 및 재산분할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에 맞서 배우자도 이듬해 7월 A씨를 상대로 반소(反訴)를 제기했다.
1심은 지난해 4월 양쪽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고 재산분할을 명령했다. 이후 배우자 쪽에서 항소해 사건은 2심 판단을 받게 됐다. 2심은 지난해 10월 변론을 종결하고, 같은 해 11월 배우자의 항소를 기각했다. 배우자가 상고했지만 대법원 역시 올해 4월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두 당사자는 1심부터 시작된 소송 과정에서 모두 대리인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남편 측 소송 도중 사망...아들은 이 사실 숨겨
여기까지는 통상 벌어지는 이혼 소송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문제는 2심 도중 A씨가 숨지면서 발생했다.
A씨 아들 B씨는 이달 초 A씨의 시신을 1년 넘게 김치냉장고에 보관했다며 경찰에 자수했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작년 9월 혼자 사는 아버지(A씨)의 집을 방문했다가 숨진 것을 확인했으나, 사망 신고를 늦춰야 할 필요가 있어 시신을 비닐에 감싸 김치냉장고에 넣어 보관해왔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경찰은 현재 B씨를 시체은닉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타살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이혼 및 재산분할 사건에선 판결 확정 전 당사자 중 한쪽이 사망하면 소송 종료가 선언된다. 그러나 B씨는 아버지의 사망을 법원에 알리지 않고 소송을 계속했다. A씨 배우자는 B씨의 의붓어머니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사자 없이 재판이 계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가사 등 여타 민사 소송에선 형사 소송과 달리 당사자의 출석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가사소송법 7조는 ‘변론기일 등에 소환을 받은 당사자는 본인 또는 법정대리인이 출석해야 한다’고 정한다. 재판장은 본인이 대리인과 함께 출석할 것을 명할 수 있지만, 대리인이 선임돼 있다면 굳이 본인의 출석을 요구하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결국 B씨가 아버지의 사망 사실을 숨기면서 법원은 ‘망자’를 상대로 2심과 대법원 최종 판결을 내린 셈이 됐다.
경찰 로고. /조선일보DB |
◇대법원 “당사자 사망 사실 인지할 방법 없어...법 개정은 신중해야”
경찰은 A씨가 사망하면 배우자와 이혼이 성립되지 않고 여전히 법적 부부로 간주되기 때문에 B씨가 자신에게 재산상 불이익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이 같은 행위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혼 소송 도중 한 쪽이 사망한 때에는 이혼 소송은 종료된다. 이혼 소송과 함께한 재산분할청구도 마찬가지로 종료되는데, 재산분할청구는 이혼이 성립함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이혼 소송이 종료돼 재산분할청구를 유지할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법정상속인들과 상속재산분할을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대법원은 “이런 사건이 있었던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면서도 “항소심 법원과 대법원이 A씨의 사망 사실을 인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대법원은 또 “법원으로서는 당사자에 대한 주민 조회 권한이 없어 직권으로 판결 선고 전 당사자의 생존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며 “특히 이 사건의 경우 소송대리인이 변론을 이어가는 사건에서 A씨의 생존 여부를 확인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통상 상대방 당사자가 사망 사실을 법원에 알려 소송 종료 선언으로 사건이 끝나는 사례는 많이 있으나, 이와 같이 범죄가 연루된 사건을 찾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향후 법 개정을 통해 당사자의 출석 의무를 강화하거나 판결 선고 시 당사자가 반드시 출석해야 한다는 조항을 마련하는 것을 상정해 볼 수 있으나, 이 사건을 염두에 두고 모든 사건에 적용되는 조항을 개정하는 것은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아울러 “(A씨) 배우자의 재심청구에 따라 재심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법원이 직권으로 판결의 효력을 없앨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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