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생산 벽 넘기’ 연구 활발
그래픽=김하경 |
◇데뷔 20년 차… 성과는 기대 이하
그래핀은 구리보다 전자 이동성이 100배 이상 높고 강철보다 200배 강한 물질로 분석되면서 큰 기대를 모았다. 구부리거나 늘려도 전류가 변함 없이 흐르고 빛의 약 98%를 투과시켜 투명성도 탁월하다. 이런 특성을 활용하면 두루마리처럼 돌돌 말아 쓰는 디스플레이를 만들 수 있고, 실리콘을 대체하는 반도체 소재로 쓸 수 있다는 전망이 쏟아졌다. 우주 엘리베이터와 태양광 우주 범선의 필수 소재로 그래핀이 지목됐다. 심지어 그래핀으로 투명 망토도 만들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가임과 노보셀로프는 그래핀을 발견한 공로로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연구 결과를 발표한 지 6년 만에 초고속으로 노벨상을 거머쥔 것이다.
유럽연합은 2013년 연구 컨소시엄 ‘그래핀 플래그십’을 출범시키며 향후 10억유로(약 1조5000억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했고, 영국도 2015년 국립 그래핀 연구소를 열고 1조원 이상 투입했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최근 그래핀 20년 분석에서 당시에 대해 “각국 경쟁으로 수십억 달러 이상 연구 개발 자금이 그래핀 분야로 투입됐다”며 “그래핀의 잠재력이 지나치게 부풀려진 ‘과대 포장’ 시기였다”고 평가했다.
그래핀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스카치 테이프로 붙였다 떼었다 하는 식으로는 그래핀을 대량생산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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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처럼 혹한기 견디고 꽃피울 것”
금속을 촉매로 활용해 고온에서 반응시키는 ‘화학적 증기 증착법’으로 그래핀을 합성할 수 있게 된 이후에도 천차만별인 그래핀 품질이 상용화의 걸림돌이었다. 이에 과학기술계는 여러 층으로 쌓은 그래핀 나노플레이트, 산화 그래핀 등을 개발해 산업에 적용하고 있다. 단층 그래핀의 유연성과 강도 등 고유 특성에는 맞먹지 못하지만 선박 코팅, 강화 콘크리트, 바이오 센서, 전기차 배터리 등에 쓰고 있다. 전자파 차단, 오염수 정화로도 용도를 확대 중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은 단층 그래핀을 약 1.1도 비틀어 2층으로 쌓아 올렸더니 전기가 저항 없이 흐르는 ‘초전도 현상’이 나타났다고 발표했고, 올 초 미 조지아공대 연구진은 실리콘보다 전자 이동성이 10~20배 높은 ‘그래핀 반도체’를 최초로 개발해 관심을 모았다.
투자 열기가 차갑게 식었던 ‘겨울’을 두 차례 견디고 화려하게 꽃피운 인공지능(AI)처럼 그래핀도 폭발적 성장을 앞뒀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리콘 트랜지스터가 첫선을 보인 뒤 인텔의 반도체 출시로 본격 상용화까지 20년 가까이 걸린 점을 예로 들며, 올해로 스무 살이 된 그래핀의 전성기도 곧 온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경북 포항시가 지난 6월 이 지역에 그래핀 공장 착공을 계기로 ‘그래핀 밸리’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내년 하반기부터 그래핀 필름을 본격 생산할 계획이다.
반면 그래핀이 상용화되기까지는 품질 균일성, 대량생산 비용, 환경 문제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장밋빛 전망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품질 단층 그래핀 대량생산이 어려운 상황에서 사실상 흑연에 가까운 ‘가짜 그래핀’으로 현혹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곽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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