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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연금과 보험

“공부 자세 2400만원·출산 후 교정 230만원”…도수치료에 줄줄 새는 실손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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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치료 실손보험금 1년새 11% 급증
소규모 의원은 비급여 비중 90% 육박
자격·횟수 제한 없어 ‘규제 공백’ 지적


매일경제

실손보험 비급여를 주제로 AI가 작성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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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세 A군은 최근 허리 통증으로 경기 과천의 한 소아청소년과를 찾았다. 진료 후 의사는 A군에게 “공부할 때 자세가 좋지 않을 것”이라며 자세 교정 목적의 도수치료를 권했다. 이후 A군은 해당 병원에서 4년 동안 회당 20만원이 넘는 도수치료를 받았다. 병원에 다니는 4년간 A군의 부모님이 낸 도수치료비만 2800만원에 달했다.

# 36세 B씨는 출산 6개월 후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한방병원에서 ‘자세가 틀어졌으니 체형 교정이 필요하다’며 도수치료를 권유받았다. B씨는 근골격계 질환이 없었지만 이 병원은 어깨 통증과 요통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후 B씨는 이 병원에서 12회짜리 산후 도수 패키지를 받으면서 4개월간 230만원을 치료비로 썼다.

# 29세 C씨는 부종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 강남구의 한 의원을 방문했다. 상담실장은 C씨에게 실손보험 가입 여부와 한도를 물었다. C씨가 실손에 가입돼 있다고 답하자 상담실장은 비만 패키지 프로그램을 안내하면서 비용 걱정은 말라고 했다. ‘두통’으로 기록을 발급하면 실손보험금 청구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최근 의원급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생애 주기별 도수치료나 비만 관리처럼 치료 목적이 아닌 패키지 상품을 파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성장기의 중・고등학생에게 성장 촉진 목적의 도수치료를 권하거나 수능을 친 수험생을 대상으로 체형 교정을 위한 도수치료 할인 이벤트를 여는 식이다. 비만 환자에게 기계치료를, 발기부전 환자에게 체외충격파 치료를 추천한 사례도 있다.

이는 대부분 비급여 시술로, ‘실손 청구가 가능하다’며 환자를 설득해 상품을 판매하는 의원이 많다. 이로 인해 실손보험금 낭비가 심각해지면 결국 보험료가 올라 소비자가 최종 피해를 입게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손해보험 5개사(삼성화재·DB손해보험·메리츠화재·현대해상·KB손해보험)에서 물리치료에 대해 지급된 보험금은 총 8934억8000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7% 늘었다. 물리치료는 도수·체외충격파·증식치료를 포함한다.

이 중 의원급 의료기관인 1차 병원 몫은 3671억6100만원으로 집계됐다. 비급여에 해당하는 금액은 3160억9700만원으로 전체의 86.1%에 달했다. 1차 병원 물리치료 보험금의 비급여 비율은 2차 병원(79.5%), 3차 병원(56.7%)보다 훨씬 높았다. 대형 병원보다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의원에서 실손보험 제도를 악용해 ‘비급여 장사’를 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는 의미다.

환자에게 물리치료 패키지 결제 유도가 가능한 것은 규제 공백 때문이란 지적도 나온다. 의료기관 규모가 작을수록 감시망을 피해 느슨한 규제의 틈을 파고들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산재보험과 자동차보험은 도수치료의 횟수, 치료 기간, 실시 주체를 규정하고 있다. 반면 비급여는 별도의 규제나 기준을 두고 있지 않다.

이로 인해 무자격자가 도수치료를 하거나 성형·미용 치료를 도수치료로 둔갑시키는 불법이 난무하게 됐다는 목소리가 크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소비자의 실손보험 가입 여부와 가입된 보험상품의 유형을 파악해 한도를 넘지 않도록 교묘하게 도수치료 계획을 짜는 등 의료기관의 비윤리적 행태가 만연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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