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막힌 일이다. 그가 평생 벗어나고자 발버둥 친 ‘미등록’ 문제는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풀려갔다. 그런데 그가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일자리는 그를 죽였다. 입사 후 8개월 만에.
그에게 취업은 영주권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외국인’ 자격을 얻고, 주위 여러 사람의 도움과 조언으로 거주 비자 취득이 가능한 전주의 특수장비차량 생산 기업을 찾아 입사하게 됐을 때 그는 비로소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곧 보통의 한국인들처럼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다. 그 직장은 그에게 ‘연구원’이라는 직함을 주었고, 소속감을 주었고, 수백억 국가 예산이 들어간 개발사업의 일원이라는 책임감도 주었다. 그러나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은 주지 않았다.
그의 죽음을 전한 여러 기사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언급됐지만 합당한 처벌이 내려질진 의문이다. 기업이 책임 회피할 방법은 많고, 고용노동부는 늘 미온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어려운 건 “사업주 개인을 꼭 형사처벌해야 하느냐”는 사회적 반감이다. 최근에도 처벌 수준을 낮추고 사업주 처벌은 지양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계속 보도돼왔다. 법 시행 이후로 중대재해가 줄지 않았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되기도 한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익히 알고는 있을 것이다. 입법 당시 발의자들이 사업주의 처벌을 중심에 둔 것은 그렇게 해야만 근로환경을 근본적으로 재편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현재 구조에서는 현장에 명백한 위험 요인이 있어도 중간관리자는 이를 없애기보다 이윤을 더 내는 결정을 해야 높은 평가를 받는다. 특히 하청 현장의 위험은 원청의 의사결정에 닿지 못한다. 이런 고질적 구조를 깨뜨리기 위해 “현장의 위험을 그대로 두는 것은 사업주를 위협하는 일”이라는 도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법 시행 이후 중대재해가 줄지 않은 것은 정부의 미온적 태도 때문에 진짜 재편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일 뿐이다.
그렇게 보면 태완씨의 소원 중 하나가 어떻게든 이뤄지기는 했다. 보통 한국인들처럼 일하고 싶다는 소원이다. 일하다 죽을 위험 속에 있기는 한국인들도 마찬가지니까. 위험이 지방으로, 하청기업으로, 저학력 일자리로 몰려 있어 겉에서 잘 안 보일 수 있지만 말이다. 분명한 것도 하나 있다. 일하는 사람들의 목숨보다 사업주들의 편안한 생활이 몇배, 몇십배 중요한 나라라는 것이다. 태완씨가 간절히 살고 싶었던 나라, 이 대한민국은.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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