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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수)

[경제직필]트럼프 귀환과 다극화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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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계경제는 중국을 위시한 신흥 경제의 성장과 영향력 확대로 빠르게 다극화되고 있다. 그러나 주류 경제학은 다극화를 배태한 내생적 역사 과정에 대한 예측과 설명에 사실상 실패하고 있다. 그 실패는 경제 영역에서 국가 역할의 중대성을 강조하고 세계경제의 역사적 진화를 불균등 결합 발전으로 파악하는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지정학적 정치경제학이 동시대 역사를 분석해내는 모습과 대비된다. 후자의 접근법에 따르면 한 계급사회 내에는 물론이고 서로 다른 사회들 간에도 지배와 경합의 관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사회들 간의 (격차를 키우는) 불균등 발전보다 (격차를 좁히는) 결합 발전이 우세했던 역사적 계기마다 다극화로의 경향성이 출현했다.

그런데 전쟁이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는 곳을 제외하면 다극화가 빚어내는 국제적 긴장의 강도는 기실 한반도가 위치한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높다고 볼 법하다. 주지하다시피 동북아시아 국제 지형에 있어 갈등의 중심축은 한편이 패권 국가 미국과 그 역내 대리인 일본의 동일체적 연합이고 맞은편이 다극화를 주도해온 중국이다. 동서 냉전이 해체된 뒤 소강상태를 거쳤다가 다시 역내 지정학이 급변하면서 휴전선과 동중국해, 남중국해에 걸쳐 안보 위기가 고조된 것은 2010년대의 일이었다. 북한의 핵무장 완성도 그즈음이었다. 2017년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출범하던 당시 배경이 그랬다.

트럼프 1기는 안보 차원에 머물던 중국 봉쇄를 경제와 통상의 차원에까지 확대하는 과정에서 실로 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가 몰고 온 반세계화와 보호무역주의의 물결은 양극화로 밀려난 중하층 노동자들의 선택이었지만, 동시에 제국으로서의 패권적 지위가 다극화로 인해 위협받는 것이 두려운 지배층의 선택이기도 했다. 대외경제정책 기조에 있어 바이든 행정부가 전임 정부와 차별화할 수 없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온갖 진보적 수사에도 불구, 막상 다극화에 맞설 국제질서 비전이 없었던 바이든의 제국은 그렇게 아프가니스탄에서 패주하고 이스라엘의 전쟁에 명분 없는 나홀로 지지를 보내면서 남은 품위마저 잃어왔다.

그렇다면 4년의 공백 끝에 귀환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어떨까. 적어도 당분간은 더 매워진 민낯의 트럼프가 될 공산이 크다. 역사상 가장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그는 중국을 상대로 한층 더 파괴적인 관세전쟁에 돌입할 태세이고 당장 불법이민자 강제추방부터 확대할 작정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수입 물가가 오르고 저임금 부문의 일손이 부족해져 물가상승 압력을 키우기 마련이다. 이른바 ‘트럼플레이션’이 그것이다. 더욱이 관세전쟁은 틀림없이 교역 위축과 성장 둔화를 초래한다. 어느 정도는 실패가 예견되는 정책들인 셈이다. 대외 의존적인 한국경제가 입을 피해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한편 바이든 행정부에 의해 복원된 우방들과의 안보 협력 관계는 미국 우선주의를 다시 전면화할 트럼프 2기 들어 몇 차례 더 혼란을 겪게 될 소지가 크다. 방위비 부담을 둘러싼 진영 내 균열이 점쳐진다. 그 과정에선 신보수주의 매파인 ‘네오콘’ 중심으로 사고되어온 양극적 군사 동맹도 어떻게든 그 전망이 약화되기 쉽다. 트럼프 2기는 그러나 동맹의 첨단 제조 역량과 일자리 기반을 자국 내로 이전시켜 경제적 희생을 강요하는 전임 정부의 정책만큼은 폐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약속만 믿고 투자한 유수 한국 대기업들은 보조금 삭감 등의 낭패를 볼 수 있지만 말이다.

이상 제시한 예측들은 모두 제국주의 미국의 리더십 약화 추세가 트럼프 2기에 더욱 가속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극화의 진전 속도 역시 그만큼 빨라질 것이다. 다만 경제정책은 초기 국면이 지나고 나면 엘리트 관료들의 영향력이 점증하면서 트럼프만의 색깔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다듬어질 수밖에 없다. 외교안보정책 또한 결국 어느 시점에는 네오콘과의 거리를 좁히게 될 수 있다.

트럼프는 국제 문제 개입을 줄이려는 태도로 인해 미국의 대외정책에 있어 그 자신이 하나의 변수였고 이단아에 가까웠다. 하지만 우리는 2019년 당시 ‘하노이 노딜’을 선언하면서 회담장을 유유히 빠져나가던 밉상의 트럼프도 같은 트럼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트럼프와 네오콘 사이의 거리가 앞으로 어떻게 관리되는지가 중기 시계에서 트럼프 2기 대외정책의 향방에 중요한 결정 요인일 수 있다. 다극화의 진전이 동북아시아에 불러올 지정학적 긴장의 수준도, 한반도 평화 체제의 가능성도, 바로 그 거리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영향받을 것이다.

경향신문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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