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인기투표로 변질된 법원장 보임 절차 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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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판사 눈치에 신속 재판 독려 못 해 국민 피해
대법원이 재판 지연의 원인으로 지목돼 온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사실상 폐지하기로 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그제 법원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법원장 보임에 법관의 의사를 반영하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대내외적으로 여러 문제와 부작용이 지적됐다”면서 새로운 절차를 설명했다. 2019년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시행한 이 제도의 핵심은 판사들의 투표로 법원장 후보를 추천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도입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많은 문제가 속출했다. 법원 전반을 이끌어 가야 할 법원장 자리에 능력과 인품을 갖춘 인사보다 인기에 영합한 인물이 오를 우려가 커졌다. 법원장 인사를 앞두고 표를 얻기 위한 일부 법관의 행태는 정치판을 연상케 했다. 더욱 심각한 폐해는 국민의 고통을 가중하는 재판 지연 사태다.
국정감사 첫 날인 7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이 인사말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2024.1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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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효율을 높이기 위해선 법원에도 선의의 경쟁과 선배 법관의 지도가 필요하다. 재판 지연을 최소화하려면 성과가 부진한 판사를 독려하고 뛰어난 결과를 내는 법관을 인정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인기투표처럼 돼버린 법원장 후보 선출 때문에 악역을 기피하는 현상이 역력해졌다. 2017년 293.3일이던 민사합의 사건 1심 평균 처리 기간이 지난해엔 473.4일로 60% 넘게 늘어나는 등 날로 악화하는 재판 상황을 들여다보면 김 전 대법원장이 추진한 급진적 변화가 원인으로 드러난다. 판사들이 일주일에 판결문을 3건만 쓰기로 합의하고 그나마 쉬운 사건만 골라 처리하는 바람에 장기 미제 사건이 폭증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지난해 12월 취임하면서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지는데 법원이 이를 지키지 못해 국민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인정한 만큼 전임자의 과오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법원장 후보 투표를 5년 만에 폐지한 조치가 법원의 변화와 쇄신의 계기가 돼야 한다.
다만, 지난 정부가 밀어붙인 사법부의 과격한 변화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벌어진 ‘사법 농단’ 사태가 원인을 제공한 측면도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사법부의 관료화에 대한 우려가 커진 만큼 무작정 과거로 돌아가선 곤란하다. 새 법원장 보임 과정에서 투표는 없앴으나 사법부 구성원으로부터 적합한 인물을 추천받는 방식을 채택했듯이 권한 집중을 경계하는 노력만은 견지해야 한다.
지방법원장 자리를 일시적으로 고등법원 부장판사에게 열어주는 변화도 합리적이다. 2심 경험을 축적한 고법 인사가 지방법원장으로 보임해 1심을 관리하는 관행은 장점도 많다. 이를 갑자기 차단하는 바람에 극심해졌던 법관 퇴직 문제를 해소하면서 점진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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