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해킹’ 공저자이자 서울 공공병원 의사로 일하는 문호진씨가 지난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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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치러졌다. ‘킬러 문항 없이도 역대급 불수능’이라는 지탄을 받았던 지난해에 견주면 올해 수능은 상대적으로 난이도와 변별력 논란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의대 증원으로 더 강력해진 의대 쏠림 현상과 역대 최다 규모의 엔(n)수생, 갈수록 높아지는 사교육 의존도 등은 수능으로 상징되는 대입제도가 처한 암울한 현실이다. 오죽하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과열된 입시경쟁이 집값과 가계부채를 끌어올리고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사람들이 서울을 떠나도록 만드는 과감한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나섰을까.(지난 9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
‘수능 해킹’의 공저자 문호진씨는 “교육당국과 학원가가 이권 카르텔을 맺고 있으므로 문제를 유출하는 교사를 잡아내면 수능이 정상화된다는 식의 접근은 구태의연하다”고 주장한다. “문제풀이 요령이 과도하게 강조되면서 수능 시험의 퍼즐화가 진행됐다”는 핵심 문제를 비켜간 처방이라는 것이다.
지난 7월 출간된 ‘수능 해킹’은 수능을 둘러싼 구체적이고 생생한 현실 진단으로 교육계 안팎의 이목을 끌었다. 문씨는 의대 진학을 위해 엔수를 하고 수능 대비 문제집을 출제했던 과거 경험을 계기로, 교육문제에 대한 관심을 이어왔다. 현재는 서울의 한 공공병원에서 일반의로 일하고 있다. 수능 다음날인 지난 15일 그를 만나 사교육이 수능에 대한 장악력을 어떻게 키워왔는지 들어봤다.
2025학년도 수능이 실시된 지난 14일 오전 인천 동구 동산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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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수능에서 주목한 점이 있다면?
“탐구가 어려웠다는 반응이 많더라. 국·영·수를 쉽게 내라는 압박이 있고 그럼에도 난이도 조절을 해야 하니까 탐구가 어렵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탐구는 언론 주목도도 덜하다. 특히 과학탐구의 경우, 올해 자연계열 응시자 중 상당수가 사회탐구를 선택하면서 빠져나간 점 등을 감안해 난도를 더 높인 것 같다. 탐구가 어려우면 엔수생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왜 그런가?
“오히려 국영수가 학교 수업과의 연계가 더 많다. 탐구는 학교 울타리에서 벗어나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학원에서 문제풀이를 많이 해본 엔수생들이 더 유리하지 않겠나.”
―수능 출제위원장은 ‘사교육 도움 없이 풀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역대급이었던 지난해와 비교해선 쉽지만 그렇다고 평년 대비로 수월한 것만은 아니었다. 지난해부터 수능에서 ‘매력적인 오답’이라는 말이 많이 회자됐다. 정답으로 오인할 수 있는 치명적 함정을 파놓은 것이다. 더 나아가 기존에 굳어진 패턴을 벗어나 의도적으로 수험생에게 혼선을 주는 기제들도 늘고 있다. 수학의 경우 지난해 초고난도 문항이었던 22번보다 20번을 더 어렵게 낸다거나 답 갯수의 분포를 바꾼다거나 하는 식이다. 킬러 문항을 없애고 변별력이 문제가 된다고 하니까 수험생을 헷갈리게 만들어서 등급을 조절하는 것이다.”
위 설명의 예시로, 문씨는 올해 수능 국어 영역 7번 문항을 들었다. 과학기술의 수용에 대한 여러 사상가들의 견해를 담은 지문을 읽은 뒤 푸는 문제인데, 정답은 ②이다. 원래는 ‘㉠은 주체인식의 준거가 서양 근대 문명의 주체라는 인식에 반대하는 입장이고, ㉡은 철학이 과학의 방법에 근거한다는 생각에 찬성하는 입장이다’로 내야 하는데, 의도적으로 문장을 몇번 더 비틀어서 실수와 긴장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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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문제를 ‘루빅스큐브’ 퍼즐 장난감에 비유했다. 어떤 의미인가?
“루빅스큐브를 계속 맞춰온 이들이 흐트러져 있는 퍼즐을 원상 복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1분을 넘지 않는다. 수능도 출제 원리를 추론하고 공식을 익히면 복잡한 문제도 손쉽게 풀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2025학년도 수능 생명과학Ⅰ 14번(아래 문항)은, 복잡한 문제를 만들어 놓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여러 경우의 수를 시간을 들여 따져봐야 풀리는 대표적 퍼즐형 문항이다. 생식세포 분열과 대립 유전자 개념을 이해하는 정도면 이미 교육과정에서 요구하는 역량을 충분히 갖춘 것인데, 이런 학생들도 풀기 어려워 좌절하게 만든다. 이런 점을 공략해, 사교육 학원들은 퍼즐형 문제에 자주 등장하는 패턴을 외우도록 하고 빠른 시간 내에 기계적으로 풀이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2025학년도 생명과학 Ⅰ14번 문항. 정답은 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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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문제가 나오는 걸까?
“수능 출제기관(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안전한 출제’를 고집해서 그렇다. 2011학년도 수능까지만 해도 난이도가 매우 들쑥날쑥했다. 그러다가 그해 ‘불수능’ 논란으로 평가원장이 물러났고 이후 평가원의 보신주의가 심화되는 과정이 있었다. ‘안전한 출제’란, 복수 정답 시비가 붙는 출제 오류가 없어야 하고 난이도가 일정해야 한다. 하지만 등급 조절을 위한 변별력은 갖춰야 하니까 문제 풀이에 걸리는 시간이나 문제의 복잡도를 조절하게 된다. 이같은 문제 유형의 고착화가 사교육의 ‘수능 해킹’을 초래했다.”
―퍼즐형 문제가 사교육 의존도를 높였다고 보나?
“그렇다. 과거 학력고사가 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잘 암기하고 있는지 봤다면, 초중기 수능은 암기한 내용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앞서 설명한 평가원의 문제와 함께, 수능 체제가 안정화되면서 수능에 출제될 문항을 예측해 이를 미리 대비시키는 사교육의 콘텐츠 역량 역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수험생이 풀이를 스스로 떠올려서 적용하는 대신, 미리 반복해서 숙달한 문제풀이 기술을 이용해 정해진 시간 내에 풀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10년 전에 이런 퍼즐형 문제 풀이 대비에 가장 먼저 뛰어든 곳이 ‘시대인재’(대치동 입시학원)였다. ‘수능 기출 위주로 공부를 하던 시대는 지났다. ‘N제’(기출을 변형시킨 자체제작 문제집)와 ‘실모’(실전 모의고사 문제집)를 많이 풀어 실전 감각을 유지해야 한다’는 식의 마케팅을 펴온 것이다.”
왼쪽은 2023학년도 수능 세계지리 3번 문항. 오른쪽은 수험생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디시인사이드)에서 수능 출제의 퍼즐화 경향을 패러디한 가상의 문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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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학원들도 같은 방식을 쓰나?
“이미 대치동의 유명학원들이 이런 방식을 벤치마킹했고, 이는 다시 미디어와 수험생 커뮤니티를 타고 전국으로 확산되는 구조다. 재수학원에 등록하면 국어 한 과목에 대해 교재 11권, 주간지 28권, 일간지 80회, 모의고사 35회를 기본 제공한다. 대입 시험 한 과목을 준비하는데 이렇게까지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할 이유가 뭐가 있나. 시험 준비를 통해 유의미한 교육적 성취를 얻기도 어렵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은 ‘킬러 문항’을 배제하고 ‘사교육 카르텔 잡기’로 대응했다. 어떻게 봤나?
“피상적 진단이 제대로 된 정책 대응으로 이어질리 없지 않는가. 단순히 난도가 높다고 없애야 하는 건 아니다. 어렵더라도 교육상 필요하다면 충분히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킬러 문항을 박멸했다고 자평하지만 학생들의 사교육 의존도는 전혀 낮아지지 않았다. 개선된 것이 아무 것도 없지 않나.”
―책에서 이른바 ‘원서 영역’의 사교육 팽창이 더 우려스럽다고 했는데.
“대학에 큰 책임이 있다. 대입 전형 계획을 학생들이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3년 전에 예고한다고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정시 전형은 원서 마감 3주 전에 혹은 1주 전에 대학별 반영식이 나온다. 각 대학들은 수능 성적표에 적힌 표준점수를 그대로 갖다가 쓰는게 아니라 대학별로 과목 반영 비율과 가중치, 가산점 등을 넣어 자체 계산식을 만든다. 예컨대 사회탐구 응시자가 과학탐구 응시자 대비 어느 정도의 감점을 받게 될지 원서 접수 직전까지 알 수가 없는 식이다. 올해는 자연계열 수험생의 사회탐구 응시가 본격화됐기 때문에 더 큰 혼선이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개별 지원자가 대응하기 어려워지고 사교육 컨설턴트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다. 오죽하면 수능의 한 과목(영역)처럼 비중이 크다고 해서 ‘원서 영역’이란 말이 나왔겠는가.”
―대학들은 왜 그러는건가?
“선발 자율권이라는 미명 아래 ‘경쟁 대학보다 더 높은 합격 커트라인’이라는 허상을 쫓는 거다. 표준점수 동점자를 변별하고 각 대학 특성을 살린다는 것은 명목에 지나지 않는다. 각 입시기관들이 누적 백분위를 활용해 대학 배치표를 작성하는데 여기서 지위를 지키기 위한 용도로 쓰는 것이다. 반영식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누적 백분위상 합격선을 끌어올리는 식이다. 결과적으로 수험생 입장에서는 한줄 세우기가 아니라 수백개, 수천개의 줄세우기에 대응해야 한다. 큰 비용을 들여 사교육 컨설턴트를 찾지 않더라도, 모든 수험생 가정에서 진학사와 같은 모의지원 사이트와 환산점수 분석 프로그램을 돌려보고 있는 이유다.”
―수능 최저학력기준도 비슷한 맥락으로 봐야할까?
“대학들의 자존심 싸움이다. 다양한 경험을 쌓은 학생, 다면적 역량을 갖춘 학생을 선발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수능 등급이 낮은 학생은 선발하지 않겠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평가원이 출제한 수능 문제의 난이도와 변별력에 관심이 집중되는데 비해, 대학의 책임을 묻는 이들은 왜 없는지 모르겠다.”
―교육당국은 왜 가만히 있나?
“대학들이 파편화된 입시 전형을 던져 놓고 있고 그에 대한 해석은 입시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킬러 문항만 안 나왔다고 하면 그만인가. 제도권 교육의 당사자들은 학생들이 실제로 겪고 있는 어려움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현실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걸까?
“사실 10년 전만 해도 대입제도가 지금처럼 복잡하진 않았다. 사실상 교육당국이 방치해둔 결과다.”
―수능 도입 30년이 지나면서 개선 방안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수능의 폐해만 강조하면서 악마화하는 것도, 공정하다는 믿음에 사로잡혀 신비화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수능은 결국 평가 도구에 불과하다는데서 출발해야 개선책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오지선다형 객관식 문제와 수능 상대평가 9등급제가 바뀌지 않는 현실에서 수능 출제 유형 변화가 가능할까?
“치열한 대입경쟁과 상대평가 제도가 문제라는 식의 거시적 진단만 내리고 있다가는 당장의 현실이 더 악화할 수도 있지 않나. 절대평가냐 상대평가냐를 논하기 전에 수험생들을 고려하지 않은 무신경한 입시제도 설계, 그리고 학생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불통 정책이 더 극단적 경쟁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과거 수학에선 하나하나의 문항이 지금처럼 어렵지는 않았다. 그런데 교과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던 ‘기하’에 비판이 집중되는 사이, 미적분 문항만 갈수록 어려워졌다. ‘우리는 기초적인 수열의 관계식도 못 세우지만 별별 삼차함수 문항은 귀신같이 풀어낸다’는 이야기가 수험생들 사이에서 나올 정도다. 너무 협소한 대안이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수능 출제 경향을 개선하는 것도 미뤄둘 일만은 아니다.”
문호진씨가 지난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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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종합전형을 기반으로 수시 확대냐, 수능 위주의 정시 확대냐를 둘러싼 논쟁도 여전하다.
“정시와 수시를 모두 사교육이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비중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은 학교 생활에 충실한 학생들도 수능 공부와 내신 공부를 따로 해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내신과 수능이 통합적으로 연계될 수 있는데 정부가 좀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아울러 대학이 신입생을 선점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된 생기부 중심의 진로 교육도 돌아봐야 한다.”
―의대 열풍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지.
“단순히 의사의 소득이나 사회적 지위와 연관된 의대 열풍을 넘어선 진단을 해볼 필요가 있다. 학생들은 적성과 무관하게 또래집단에서 인정받으려면 의대를 지망해야 하고 학부모들은 의대생 부모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학교도 의대를 지망하는 상위권 학생들에 대한 특별 관리가 공공연하다. 일단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학생들은 생기부에 의학계열 지망을 쓰고 본다는 말까지 나온다. 엔수생이 계속 양산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어쩌다 교육 현장이 이렇게 획일화된 것인지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문호진씨가 지난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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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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