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박상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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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목숨을 금전 가치로 따진 것은 기원전 18세기 함무라비 법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군인은 대부분 용병이었는데 대가를 지급하지 않으면 고용인을 처벌한다는 조항이 있다. 고대 지중해 섬나라 크레타는 활 잘 쏘는 군인을 그리스 도시국가들에 보내 돈을 벌었고 북아프리카 누미디아 왕조는 로마와 전쟁 중인 카르타고에 기병을 팔았다.
▶유럽 선진국 스위스도 근대 이전엔 군인이 주요 수출품이었다. 1527년 신성로마제국이 바티칸을 침입했을 때는 교황을 지키다가 전멸에 가까운 인명 피해도 겪었다. 그러다가 고부가가치 산업 위주로 경제가 바뀌고 용병으로 버는 돈보다 우수한 청년 인재를 지키는 것이 나아지면서 170여 년 전 비로소 용병 수출이 법으로 금지됐다.
▶우리도 베트남전 파병 덕에 경제가 일어섰다. 대한항공의 모태가 된 한진상사가 당시 한국군의 보급품 수송을 맡으며 회사를 키워 10대 그룹에 들었다. 현대건설 등 여러 건설 회사도 전 세계 미군 기지 관련 공사를 수주하며 성장했다. 국가 산업의 근간이 섬유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바뀌었다. 대미 수출이 크게 늘었고, 미국에서 배운 군수산업 기술은 오늘날 K방산의 토대가 됐다. 경제는 그 덕에 성장할 수 있었지만 젊은이들 희생이 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군 전사자가 60만명을 넘어섰다. 그런데 전사자가 늘어날수록 러시아 경제가 성장한다는 분석이 나왔다고 외신이 보도했다. 35세 군인을 기준으로, 입대 후 1년 만에 전사하면 유족에게 1450만루블(약 2억900만원)이 지급된다. 이는 35세인 일반 시민이 60세까지 벌 수 있는 기대 소득의 총액보다 많다고 한다. 지금까지 지급된 사망 위로금만 우리 돈 41조원에 이른다. 군수산업 활황으로 실업률이 떨어지며 소비는 증가했다. 돈이 풀리면서 빈곤층 거주 지역 예금이 150%까지 폭증했다. 러시아의 한 경제학자는 이를 죽음이 불러온 활황이란 의미로 데스노믹스(deathonomics·죽음의 경제)라 명명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는 데스노믹스가 러시아 경제에 장기적으로 해롭다고 본다. 풀린 돈이 산업 생산에 재투자되지 않고 물가만 올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의 올해 인플레이션이 10%에 육박할 전망이다. 전쟁에 동의하지 못하는 엘리트 젊은이들이 조국을 등지는 것도 러시아 앞날을 어둡게 한다. 이런 나라에 군인 1만여 명을 파병한 북한도 데스노믹스를 기대한다고 한다. 데스노믹스가 러시아와 북한 젊은이들의 고난에 찬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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