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의 플랫폼 규제가 미국의 반발을 초래한 것은 매출액·이용자수·시장점유율 등이 일정 규모 이상인 플랫폼에 대해 현저히 불리한 규제를 적용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수치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국내 시장을 상당 부분 장악한 구글·애플 등이 규제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됐다. 이 같은 규제 방식에 대해서는 한국 기업들도 거세게 반발한다. 네이버, 카카오 등 미국 빅테크에 맞서 시장 점유율을 지키는 국내 플랫폼들도 규제 대상에 포함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준에 따라서는 배민·쿠팡 등도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정부는 플랫폼법 입법을 포기하고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는 것으로 방향을 돌렸지만 이것 역시 규모가 큰 플랫폼에 불리한 규제를 가하는 방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의 반발이 그치지 않는 이유다.
우리의 플랫폼 규제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꼭 나쁜 소식인 것만은 아니다. 미국의 압박은 오히려 플랫폼 경쟁법을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회다. 단지 플랫폼 규모가 크다고 해서 불리한 규제를 가하는 방식으로는 국익을 극대화시킬 수 없다.
우리나라는 빅테크가 점령하지 못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다. 빅테크와의 경쟁 속에서도 토종 플랫폼들이 검색(네이버), SNS(카카오), 쇼핑(배민·쿠팡) 등 주요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 구글(검색), 페이스북·왓츠앱(SNS), 아마존(쇼핑) 등 미국 빅테크에게 주요 시장을 완전히 점령당한 EU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EU로서는 대규모 플랫폼에 현저히 불리한 규제를 도입해도 피해를 볼 토종 플랫폼이 전무하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공정위가 단지 정량적 기준에 따른 규제를 도입할 경우 애꿎은 토종 플랫폼의 발목만 잡을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플랫폼의 행태를 꿰뚫어 옥석을 구별할 수 있는 변별력 있는 규제다.
변별력이야말로 우리 플랫폼 정책의 키워드가 되어야 한다. 독점적 플랫폼은 엄단하면서도 혁신적 플랫폼은 육성할 수 있어야 한다. 국익을 위한 최선의 정책은 나라마다 다를 수 있다. 빅테크 종주국인 미국은 혁신적 플랫폼의 육성에 치중한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반면 시장 대부분을 빅테크에 장악당한 EU는 독점적 플랫폼의 제재에 치중한 정책을 통해 국익을 극대화하려 한다. 이에 반해 우리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 우리는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공정하고 균형 잡힌 플랫폼 정책을 통해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러한 목표에 맞게 플랫폼 규제의 변별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방법이 ‘핵심시장 접근법(core market approach)’이다. 가령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개발하여 핵심 시장인 운영체제(OS) 시장을 장악하였으며, 이 힘을 이용하여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스마트폰 제조사들에 구글 검색 엔진과 크롬을 설치하도록 강제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목표 시장인 검색 엔진 시장과 웹브라우저 시장의 경쟁을 제한했다. 이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며 핵심 시장을 장악한 플랫폼은 목표 시장의 경쟁자를 다각도로 공격할 수 있다. 따라서 목표 시장에 대한 사건을 심사할 때 핵심 시장이 미치는 영향도 반드시 고려하도록 공정거래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공정위와 플랫폼 사업자 사이에 입증 책임을 공평하게 배분해서 독점적 플랫폼은 엄단하고 혁신적 플랫폼은 육성해야 한다.
공정위가 지금이라도 핵심 시장 접근법을 포함하여 플랫폼 규제의 변별력을 높일 방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한다면 미국도 시비를 걸 수 없는 공정한 플랫폼 경쟁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플랫폼 경쟁법은 향후 더욱 거세질 빅테크의 공세로부터 우리 시장을 지키는 무기가 되어줄 것이다. 트럼프 1기 때 공정위가 퀄컴 같은 빅테크의 반경쟁 행위를 엄단한 사례가 있다. 트럼프 2기에도 우리나라 공정위가 독점적 플랫폼으로부터 시장을 지키고 혁신적 플랫폼을 육성할 수 있도록 플랫폼 경쟁법의 업그레이드에 박차를 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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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종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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