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
미국 체류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인도계 미국인의 압도적 머릿수와 존재감이었다. 인도계 미국인은 2020년 기준 약 440만명으로 중국계(413만명)를 처음 추월했다. 미국 전체 인구(약 3억4500만명)의 1% 남짓에 불과하지만 통계가 무색하리만큼 체감상 인도계 비중이 유독 크게 느껴진다. 유명 관광지에선 인도에 와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관광객의 절반 이상이 인도계다. 팬데믹(코로나 대유행)을 지나면서 인도계가 더 빠르게 늘고 있다고 한다.
실리콘밸리는 이미 인도계가 완전히 점령한지 오래다.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IBM의 아르빈드 크리슈나, 어도비의 산타누 나라옌 등 인도계 최고경영자(CEO)들이 넘쳐난다. 미국 빅테크에서 일하는 한 지인은 팀내 반도체 설계 인력의 90%가 인도계라고 했다. '인도인이 미국을 먹여 살린다', '인도인이 없으면 혁신도 없다'는 말이 허투루 생긴 게 아니다.
인도인들의 '아메리카 러시'가 본격화한 건 1990년대 이른바 '테크 붐' 때부터다. 인도계 IT 엔지니어와 과학자, 의사·교수 등 고학력 전문 인력들이 미국으로 대거 옮겨 오면서 인구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인도계 미국인의 약 60%는 2000년 이후 미국으로 유입됐다. 현재 미국 정부가 발급하는 고숙련 외국인 대상 비자(H1B) 신청자 4명 중 3명(75%)이 인도계다.
인도공과대학(IIT)을 나온 이공계 엘리트들이 미국 대학 석·박사로 학업을 이어가는 건 일종의 공식처럼 굳어졌다. 대다수가 졸업 후 굴지의 미국 IT기업에 고연봉자로 취업하고 시민권을 얻는다. 본국의 직계가족들을 모두 불러 들여 미국 주류사회의 일원이 되는 게 '아메리칸 드림'의 마침표다. 지난 2021년 인도 시민권을 포기한 16만 여명 중 절반인 8만 여명이 미국 국적을 택했다.
미국의 포용적 이민정책과 인도계의 남다른 미국 사랑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은 작지 않다. 이공계 기피 현상과 저출생·고령화로 한국은 첨단산업 분야 고급·기술 인력이 태부족인 '인재절벽'에 처해 있다. '외부 수혈' 외엔 딱히 답이 없어 보이지만 최근 10년간 국내 체류 해외 전문인력 수는 4~5만 명대로 답보 상태다. 서울시는 첨단산업 인재 부족 규모가 2027년이면 35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해외 고급인력 유치를 위한 지방자치단체와 개별 정부 부처의 노력이다. 올해 5월 서울시는 2029년까지 이공계 석·박사급 인재 1000명 유치, 해외 100대 타깃기업 유치를 골자로 하는 '외국인주민 정책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법무부는 첨단 분야 고급 인재 유치를 위한 '톱 티어(top-tier) 비자'를 내년에 신설한다. 연초 인도공과대학에선 중소기업벤처부가 현지 채용박람회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분절적 접근과 대책만으론 부족하다. 정책적 의지와 노력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해 보인다. 촘촘한 인센티브 설계와 함께 외국인 친화적 국내 정주 여건을 마련해 가는 게 핵심 과제 중 하나다. 인도계 고급 두뇌의 미국 유입엔 언어(영어)와 생활·문화적 이질감이 상대적으로 덜한 영향이 크다.
오상헌 기자 bborira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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