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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주민 없이 살 수 없다면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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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22년 3월20일 오후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2022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기념대회에서 이주노동자 및 참석자들이 인종차별 근절과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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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욱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지난 칼럼에 이어 한번 더 출장 얘기다. 이민 정책을 주제로 한 국민통합위원회(통합위) 출장에 자문 역할로 동행했다. 5박6일간 베트남, 캄보디아에 방문해 인력송출 담당 정부 관료부터 귀환 이주자, 한국어과 학생들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연구자에게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는 언제나 귀하다. 글로만 알고 있던 내용을 체득할 수도 있고, 생각지 못했던 사실을 새로이 배우기도 한다. 한국에 머물다 본국으로 돌아온 이민자들과의 면담에선 익히 알고 있던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부당한 대우, 인권침해의 문제를 다시 확인했다. 언어와 직무 능력이 같아도 외국인은 내국인과 공정하게 경쟁하지 못한다. 더 위험한 환경에서 더 높은 강도의 업무를 감당하면서도 임금은 낮고 승진의 기회는 적다. 근로자의 삶은 고용주에 의해, 결혼이주자의 삶은 배우자에 의해 좌우된다. 부당해도 부당하다고 말할 수 없으니 삶의 개선이 더디다.



그럼에도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은 가장 인기 있는 이주 희망국으로 꼽힌다. 미국, 유럽에 비해 지리적으로 가깝고 아시아권에서 임금 수준이 최상위다. 케이팝과 케이드라마를 앞세운 한류 열풍도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한몫했다. 출장 중 방문한 하노이국가대에선 한국어학과의 입시 경쟁률이 의대보다 높다는 얘길 들었고, 베트남 해외인력센터에선 지난해 한국에서 일할 사람 1만5천명을 뽑는 데 4만5천명이 몰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시험에 붙어도 대기 인원이 많아 한국에 오기까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3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귀국한 이주자들도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좋은 점이 더 많았다며, 한국에 다시 가기를 희망한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연애할 때 더 좋아하는 쪽이 손해 본다고 했나. 어쩌면 한국이 인기가 많으니 이주민 인권 개선에 신경을 덜 쓸지도 모르겠다. 적당히 대우해도 오고 싶어 하니까, 그게 싫으면 다른 사람 구하면 되니까, 우리가 갑이니까, 그런 마음 아닐까.



그러나 이 힘의 불균형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한국에선 이미 제조업, 조선업, 농축산업 위주로 노동 공급 부족 문제가 심각하고, 저출생 고령화로 점점 더 일할 사람이 없어져가는 중이다. 상대적으로 젊은 동남아 쪽에서 노동자를 보내주지 않으면 우리 경제 많은 부분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못할 위기다. 게다가 인구구조 변화는 선진 경제권 전반의 문제라 수용국 사이 인재 유치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우리가 방문하기 직전 유럽연합과 베트남 사이 노동 협력 논의가 이뤄졌고, 독일과 핀란드는 이미 베트남과 숙련인력 관련 협정을 추진 중이다. 다들 우리나라에 오고 싶어 한다며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 정도 얻고 온 것만도 큰 성과지만 출장에서 진짜 인상적이었던 건 따로 있다. 경계인으로만 생각했던 이주민들이 우리나라와 송출국 사이 교류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캄보디아 총리 면담에선 이주 근로자들이 보내는 송금액뿐 아니라 그들이 한국에서 습득한 기술이 국가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한다고 언급했다. 베트남에선 한국에서 일하다 본국에 돌아온 사람들이 경험을 살려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례와, 한국어교육·직업훈련 센터를 열어 한국에 가고자 하는 사람을 추가로 양성하는 사례를 보았다. 한국어학과를 졸업한 우수한 학생은 현지 한국 기업에서 일하거나 유학, 취업 등으로 한국에 들어와 우리 경제에 기여한다. 이주민들은 이미 우리나라와 자기 출신 국가를 잇는 가교 구실을 하고 있었다.



통합위원장은 베트남의 한국어학과 학생들을 격려하며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익히는 건 하나의 세상을 더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용국과 송출국의 언어, 문화와 관습을 모두 이해하는 이주 배경 인구는 양국의 상호 이익을 위해 일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인구 위기로 일할 사람이 사라지고, 대외적으로는 물리적, 경제적 전쟁의 위기로 우방을 늘려나가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기에, 두개의 세상을 가진 이주민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들을 어떻게 잘 모시고 어떻게 잘 대우할까 고민하는 것은 곧 우리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여러 배움을 남기고 올해의 마지막 출장이 마무리됐다. 출장의 성과를 정책에 반영해내는 게 이제 다음 과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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